전쟁 - 한국과 일본 by 젊은노인

지리산을 읽고 있다. 제목만 보면 태백산맥과 비슷한 내용일 것 같은데 작품의 초반부에 비교적 자세하게 해방 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마도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 될 사람들의 성장기인데, 이들의 학창시절의 사건이나 생각들을 굉장히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나 일본 유학생이 접하는 일본 사람들의 분위기, 추축국의 분위기를 자세히 전하고 있다.

해방 후 한국의 이념충돌 문제나 친일감정등을 이 때의 연장선상에서 보려는 소설의 관점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한국사람들의 심리를 살필 때 일본과 절대 동떨어져서 볼 수 없는 점들이 많이 보일것이기에 그러하다.

원전문제, 헌법9조문제, 자위대와 한국의 군대, 두 나라의 정치, 북한과의 관계, 조총련, 독도문제 등 현재 굵직한 이슈들이 한일이라는 양 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근데 읽는 책이 그래서 그런지 문체가 왜이리 고풍스러운지)


나는 그들의 나약한 행동(월급이 나오면 집창촌에 탕진하는)의 원인이 내년이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자면 그들은 군대에 갈 날을 죽음을 기다리는 공포감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뛰쳐나와 우유 배달을 하는 것은 장남이 아닌 처지도 있었지만, 군대에 가기까지의 한동안을 마음대로 지내야겠다는 속셈 탓도 있는 것 같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천황 폐하를 위해 희생한다."
라고 흔하게 쓰이는 말들이 얼마나 공소하고 허무한가를 나는 그 청년들의 행동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중략

자기 자신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하자는 자각도 목적도 없이 전쟁터에 죽으러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지금 일본이란 국가가 국민에게 엄청난 악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나라를 위해서, 라는 말은 사실은 자신의 피해와 고생, 상처를 위로하는 말이다. 우리가 그 위로를 비웃을 때, 즉 나라는 허상이야, 개고생이야 라는 말을 하면 그 위로는 분해되고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나게 하는 말이다. 그 믿음이, 우리가 비록 그것이 공허하다고 믿을 지라도, 쉽게 직설적으로 파괴 할 만한 성질의 것인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러한 믿음에 기반해 모든것이 허용될 수는 없는 노릇. 개인들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사회적으로 그 상처를 드러내서 논의될 수 있게 하는 것.

사실 학술 논문들의 딱딱한 말투, 무미건조한 말투가 편치 않은 건 사실이지만 위의 상처와 관련해서는 어느정도 감정을 배제하는데 (적어도 즉각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이건, 엘리트주의인가?

덧글

  • 젊은노인 2012/01/13 02:46 # 답글

    - 명분, 상처, 딱지, 새살, 위로, 감정 등등의 단어들이 스쳐지나감.
    - 아 나는 어린시절 얼마나 애국심이 투철한 아이였던가. 길을 지나가다가도 싸이렌이 울리면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했던, 그러다가 비웃음도 당했던, 그런 아이였지.
    - 내겐 쓸모없는 믿음이라도 비웃어선 안된다. 어떤 이가 상처를 위로하는 믿음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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