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안녕, 메리 크리스마스. by 젊은노인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목발을 놓자 마자 찾아온 감기 외엔 특별한 일은 없다. 들뜨거나, 외롭거나 하는 일도 없다. 다만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날이 의미가 없지 않다. 예수님은 왜 세상에 오셨고 그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을까를 생각해보며 자연스럽게 복음서를 펼쳐보게 되었다.

 

굳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인류 역사에 한 개인으로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예수를 꼽는데에 큰 이의를 제기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또 다른 한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또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반대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으로 죽어갔고 또 그의 이름으로 선행을 행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체제의 정신/역사/문화적 토대이기도 하다. 그에게 반대했든 그에게 찬성했든 그에게서 자유로운 사람은 그의 생후에 거의 없었다. 그가 죽은지 2000년이 넘었음에도 말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왜 오셨을까. 예수가 40일간의 광야생활을 하고 돌아와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의 회당에서 말씀을 읽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포로된 자(prisoner)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sight)"을, 그리고 "눌린자(oppressed)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자신을 보냈다는 이사야서의 말씀이었다. 그리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셨는데 이는 곧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첫 설교에서 예수는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을 선포했다.

 

그는 갈릴리 일대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전한 복음은 대체로 이렇다. 그는 나병환자들, 귀신들린자들, 백부장의 종, 세리, 여자, 이방인과 이단(사마리아인)들을 치료하고 교제하고 제자삼았다. 나열된 사람들은 기존의 율법과 전통에 따르면 죄인이었고 벌받은자들이었으며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이었다. 예수는 이러한 자들을 억압하는 율법과 전통을 파괴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제 1계명을 선포했다. 이것이 그가 율법을 완전케하는 방식이었다. 그럼으로서 그는 새 술을 새부대에 넣었다.

 

안식일에 사람들을 치료하고 이삭을 잘라 먹은 제자들을 옹호함으로써 율법이 정해 놓은 규율이 사람을 위해 있음을, 즉 규율로 사람을 정죄해선 안된다는 것을 거듭 천명하였다. 그는 부요한 자들에게 이미 위로(comfort)를 받았다며 화 있을 것이라고 경계했고 가난한자, 주린자, 우는자, 그리고 핍박받고 욕먹는 자들을을 감싸 안으셨다.

 

이번 성탄절을 맞아 내가 가장 눈여겨 보는 예수님의 말씀은 새삼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라는 구약의 율법을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며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고 하셨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 그저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라고 외치시며 그러한 가르침을 실천에 옮길것을 요청하셨다.

 

 기독교인은 영어로 Christian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라는 뜻이다. 또한 개신교는 영어로 Protestant이다. 저항하는 자들이다. 물론 종교개혁때 기존의 정통 교회에 저항하는 자들로부터 이 이름이 나왔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무엇일까.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는 부당한 권위앞에 저항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초대교회의 정신이 진정한 protestant의 정신이 아닐까. 그런의미에서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종교개혁가였다. 예수님은 세상에 (겉으로의)화평을 주려고 오시지 않았다. 분쟁(division)을 주러 오셨다. 겉으로 강제하는 규율이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것은 수많은 토론과 논의일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라면 "이 시대를 분간"하려고 노력하면서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공부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아직도 편견과 복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예수님이 태어나신지 200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세상은 구약의 율법에 머물러 있다. 죄지은 자를 죽이고 개인의, 국가의, 집단의 이익 앞에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수많은 법적, 도덕적 규범들은 단순히 타인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서 편견을 부채질하고 복수심을 키운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 안에서 없애가고 이러한 벽들을 무너뜨리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거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입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고백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보다도 먼저 이러한 실천에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성탄절을 맞아서 다시금 예수님이 오신 목적과 의의를 살펴보았다. 우리가 해야 할일은 트리에 불을 켜고,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분쟁하지만 또한 시대를 분간하고 화해하기를, 또 그를 행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하늘에선 영광이, 땅에선 평화가 있기를 눈물과 기도로 바라며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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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거의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예수를 보는 내용으로 쓰게 되었다.
역사적으로도 예수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이 들어가 있는데 사실은 BBC에서 만든 JESUS the real story라는 3부작 다큐를 본 것에 대해 쓰려다가 이렇게 됐다. 이 다큐는 역사적으로 예수에 대해 고증하려는 노력이 담긴 다큐인데 매우 재밌다.

이 다큐에서 볼 수 있는 예수의 특징은 비폭력이다. 수많은 메시아와 수많은 반란자 저항자가 유대에도 있었지만 예수는 철저하게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폭력에 저항해 나갔다. 그는 평화주의자였으며 편견과 차별에 저항한 운동가이기도 했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일들, 즉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 부터 성전을 뒤집고 논쟁을 벌인 일 등은 모두 상당히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그 시절의 대제사장과 유대인 기득권의 사회 구조에서 대단히 혁명적인 발언들을 했고 뜨거운 이슈가 될 수 있도록 행동했다.

뭐 이런것들에 대해서 끄적 거릴려고 하다가 내친김에 성경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고 복음서를 읽고 읽을때마다 새삼 놀라는 예수님의 혁명성에 놀라서 결국 이런 글이 나왔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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