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으로서의 선악과 by 젊은노인

야만인은 아노미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는 이기적 존재기는 하지만 아노미적 존재는 아니다. 이는 어린아이의 욕구들이 한정된 생물학적 한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사회화된 존재가 되어감에 따라서 이기적 충동들의 범위도 넓어지며, 그가 아노미적 상태에 처할 가능성도 커진다. "사회적 생활이 모두 소멸한다면 그와 함께 도덕적 생활도 소멸할 것이다. 왜냐하면 도덕적 생활의 목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철학자들이 상정한 자연상태는, 부도적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몰도덕적'(amoral)이다.

-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 p.414

태초에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셨다. 이내 하와를 만드셨다. 이들은 선악과를 먹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선악과는 도덕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옳은 것 그른 것을 구분하는 것이 도덕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근원적 불행일지도 모른다. 옳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를 박해하는 것이 인간이다. 또 옳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맞써 싸우기도 한다.

어찌하랴. 비록 그 답이 없을지라도 끊임없이 옳고 그른것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에덴동산에 살고 있지 못한 인간으로서의 숙명일 것이다. 아니 신을 믿는다면 그대 인간으로써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에덴동산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에겐 천국이 저희것이리라. 하지만 그 어린아이들에게 우리는 젖을 먹이고 선악과를 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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