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메모장 정리 by 젊은노인

가끔씩 떠오르는 생각들. 난 다이어리나 노트북이 없기에 핸드폰 메모장을 애용한다. 내 핸드폰은 메모장 면에서 탁월한 강점을 갖고 있다 1000자 가량의 메모가 20개까지 저장된다. 내가 문자 치는 속도가 매우 빠르기에 쓰는 속도도 꽤나 빠르다. 조명이나 안정된 장소도 필요없다. 인도여행때 흔들리는 차 안에서, 걸으면서, 어두운 방에서 요긴하게 사용됐다. 번뜩일 때 당시엔 굉장히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기록했지만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게 태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할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며 종종 정리를 위해서 블로그를 통해 비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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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가 문제되는 것은 언제나 공공의 이익과 충돌할 때이다.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이익에 부합한다면 굳이 권리라는 이유를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권리를 말할 때에는 많은 경우 전체의 이익에는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경우이다. 물론 권리를 지키는게 이익에 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알 수 없을 때도 우리는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권리는 권리 그 자체로 어떠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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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같은 국수주의자도 그의 조국이 더 강한나라가 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했다. 똑같은 국수주의자라 하더라도 어떤이는 무력적으로 더 강하고 경제적으로 강한나라가 되길 원하겠지만 어떤이는 그 나라가 더 옳은 나라 더 정당한 나라가 되길 원한다.
우리는 어릴 적 난 사람보다는 된 사람이 되라고 배운다. 윤리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이 된사람을 우리가 따라야 할 가치로서 생각한다면 왜 우리는 난 나라보다는 된 나라가 될 것을 추구할 수 없을까. 애국자들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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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과 국내법이 우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내정책내에서라는 것이다. 타국과의 관계를 다루는 사안에서 국내법만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국제적인 문제가 빚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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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안이든 국제적 시각과 국가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자국의 사안에 대해 자국인으로서 자국의 입장을 우선시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국가주의자가 된다. 국가주의자는 서구에서는 경멸적인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미국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대부분 다 눈치채고 있지만 적어도 미국의 정부 관계자들은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이라크의 인권을 위해, 대량 살상무기의 파괴를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전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라는 수사는 그래서 나온다. 독일에선 총리가 아프간 전쟁에 파병하는 것이 독일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온다는 말을 했다가 총리직을 사퇴했다. 속내가 어떠하든 적어도 독일에선 파병이 정당해야 하는 것이지 이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일게다. 적어도 공적영역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상식이다.

헌데 한국에서는 국익을 위해서라는 말이 너무도 노골적이다. 예의와 명분을 강조한다는 동아시아의 유교적 전통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의 슬로건은 국제무대에서만큼은 온데간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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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는 자연발생했을까?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 공동체 중앙의 권위가 화폐를 발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똑같은 권위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동체 사이에선 현물거래가 우선시됐다. 서로 공유하는 권위의 단위가 생겼을때 또 그 권위를 신뢰할 때 우리는 화폐를 보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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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걸 대우하는 사회 문화가 싫다고 해서 센티미터라는 단위를 싫어하는 것은 일단은 힘든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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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것은 사고팔기를 허용하고 어떤것은 사고팔기를 금하는가. 그것들은 어떠한 기준에서인가. 생각해보자.
인간의 장기. 성. 마약 술 담배, 물 공기,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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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떠한 기계를 사용할 때 그 단점과 부작용을 알고 사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전기톱을 쓸 때 그 톱의 위험성과 단점을 알고 조심해서 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본론을 읽으며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그러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빙산의 일각만으로 타이타닉은 침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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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를 새로이 이해할 때 밝혀낸다라고 한다.

이성은 손전등과 같다. 어두운 밤길에서 손전등이 없으면 어둡지만 익숙해진다면 눈이 익어서 어느정도 길을 찾아 갈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손전등을 켜면 손전등이 비추는 곳을 제외하고는 식별이 불가능해진다.  일단 이성의 불이 켜진 순간 우리는 어두운 곳은 볼 수 없게 된다. 아니 볼 수 없어야 한다고 한다. 적게 아는 헛똑똑이보다 시골무지랭이농부가 더 깊이있고 조화로운 삶을 살수도 있는 것은 그래서이다. 우리가 일단 이 이성이라는 불빛에 의존하기 시작한 이상 가능하면 더 밝고 넓게 비출 수 있게 확장해가고 훈련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기억할 것은 여전히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둠은 거대하며 우리의 이성은 완벽한 태양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나빠진 자신의 기억력에는 탓을 하며 의심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성과 판단이 흔들리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대단히 인색하며 자신의 생각이 매우 이성적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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