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무엇인가. by 젊은노인

일년쯤 전인가. 평화주의자라면 전쟁을 실질적으로 일으키는데 큰 영향을 끼치고 수많은 폭력을 낳는 사회갈등의 구조와 원인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경제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면 안된다고 어디엔가 썼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고도 정작 나는 여전히 경제라면 재미 없는, 경제라면 왠지 보수적인 느낌을 준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그 독서를 게을리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확실히 요새 나의 주된 관심은 자본주의이다. 물론 경제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는 매우 다른 무게를 나에게 주고 있다. 여전히 나는 매일 아침 한겨레 신문의 얇디 얇은 경제 섹션을 훌렁훌렁 넘기고 있기에 딱히 내 관심사가 경제로 이동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시대의 경제를 이해하는데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뤄뒀던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필두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었고 <자본주의와 현대사회 이론>을 오늘 다 읽었다. 나름대로는 쉽고 어려운, 낡고 새로운 책들을 고루 읽으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들로만 자본주의라는것을 이해했다고 보기 힘들다. 여전히 내 책상에는 제어라는 키워드로 자본주의를 풀어놓은 <컨트롤 레벌루션>, 베블런의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비롯해 내년에는 마르크스의 <자본>과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제대로 읽어볼 예정이다.

오늘 다 읽은 <자본주의와 현대사회 이론>은 자칭 입문서이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책이었다.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이라는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자본주의의 세계를 바라보는 틀을 나름대로 세웠던 사람들에 대해 살펴본 이 책은 그 세명의 사회학자를 읽기에 앞서 더할나위 없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개인의 유사한 행위들은 각기 다양한 동기의 결과일 수 있으며, 역으로 동일한 동기가 서로 다른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p.289

나는 마르크스와 뒤르켐과 베버를 굉장히 다른 사람으로 생각해 왔지만 이 세사람의 동기는 매우 유사했다. 그들이 살고 있던 당시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그 세사람 다 조금씩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자본주의시대에 들어 새로이 부상한 문제들이었다. 그들이 살았던 자본주의체제의 연장선상에 살고 있는 우리 또한 그 문제에 대해서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비슷한 문제들에 대해서 뒤르켐은 아노미라는 도덕적 유대의 붕괴를 그 원인으로 보았고, 베버는 극도로 합리화 된 관료제에서 그 원인을 보았으며, 마르크스는 생산과정에서 사람들이 소외된것에 그 근본원인을 찾았다. 이들이 근본원인을 다르게 파악한 이유는 그들의 세계관이 달라서일 것이며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분석은 때로는 일치하고 때로는 달라졌다. 그 주된 원인에 대한 해석이 달랐던 만큼 제시된 해결책도 달랐다. 처음엔 그 차이가 크지 않았거나 현실적인 문제들에 적용되지 않았지만 그들 자신에 의하여, 또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하여 체계가 발전하고 이론이 실천되면서 그들의 차이는 엄청나졌고 몇세기 뒤에 태어난 우리는 그 차이들을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됐다.

이 책이 단순한 입문서 이상인 것은 이 책의 저자 또한 우리시대의 걸출한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이기 때문일것이다. 그는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에 대한 해석중 상당부분이 오해로부터 비롯됐음을 거듭 말하고 있다. 문외한인 까닭에 오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나로서는 그 의미를 크게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입문을 현재 가장 신뢰받고 있는 사회학자의 친절한 설명덕분에 오해로 그 사회학자들에 대한 입문을 하지 않게 되는 것에 감사해야 할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마르크스 철학의 초창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헤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고 베버가 그 철학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신칸트주의에 대해서도 나는 알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위력이 세계를 바라보는 그 명쾌함과 선명성 그리고 그의 문학적 수사들에 있다고 한다면 그에 비해 뒤르켐과 베버는 때로는 너무도 미묘했고 딱딱했다. 특히 막스베버의 사회학적 방법론과 그 기초개념에 대한 구절들은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진행하려고 했지만 결국 어설픈 훑어보기로 넘어가야 했다.(연평도 포격 사건이 나를 더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눈이 번뜩 뜨이는 구절들이 있었고 나를 빠져들게 하는 분석들이, 또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생각들이 이 책에 담겨 있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은 정말 예리했고 통찰력있었다. 그가 제시한 답이 비록 정답이 아니었을지라도, 혹은 그의 답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었던 것이라 해도 그의 틀과 그 틀을 풀어내는 역량은 놀라웠다. 또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나에게 있어 베버와 뒤르켐의 종교에 대한 분석들은 흥미로웠다. <상식을 넘어서는 사회학>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이기도 했기에 뒤르켐의 이러한 능력이 더욱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뒤르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접한다면 종교, 도덕, 개인주의, 이기주의등의 상식적인 용어들에 대해 우리는 조금 더 엄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살에 대해 풀어나가는 과정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베버를 읽으면서도 재미있는 구절이 많았는데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라면 상식적인 내용들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다 이해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이들의 이론은 사실 매우 낡았다. 이들의 이론을 잇는, 또 뒤집는 학문적인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들이 비판했던 자본주의의 모순 또한 해결됐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나에게는 오늘날 이 세계는 불가해한 모순덩어리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그럴 것이다. 사회학의 세 거두라 할만한 이들이 제기한, 아니 이들이 맞섰던 모순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이후의 많은 학자들이 많이 오해해왔고, 그들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많은 오용이 있어왔다. 그렇기에 여전히 그들은 우리에게 새롭다. 돌아가야 할 고전인것이다.

며칠전 가디언지 홈페이지에서 장하준에 대한 인터뷰를 보았다. 장하준교수가 푸념하듯이 자기보고 사람들이 막시스트냐, 케인지언이냐, 하면서 묻는다고 했다. 실제로 장하준의 신간을 읽어보면 마르크스나, 케인즈를 인용하는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를 어느 한곳의 분파로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장하준 교수가 주장하는 바가 모두 옳다고 할 수도 없고 그것을 검증할 능력도 나에게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쾌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정답은 없거나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하이에크, 케인즈 그리고 장하준 혹은 아직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의 이론과 사상 그 사이 어디쯤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고민에 동참하기에 앞서 그러한 좌표들을 확인해보고 흐름을 확인해보려는 준비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그 도구가 사회학이 됐든 경제학이 됐든 말이다.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은 나온지 40년이나 된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40년밖에 되지 않은 책이다. 모순되는 두 문장이 이 책을 읽은 내 감상이다. 무엇보다 재밌었고 유익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의 94번째이지만 내가 재밌게 끝까지 읽을 수 있던책은 이책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밖에 없었다. 

사실 책을 읽은 '후기'는 내일 쓰려고 했는데. 오늘은 그냥 책을 다 읽었다 정도만 끄적이고 자려고 했는데 길어졌다. 내일 다시 읽어보고 덧붙일 내용이 있을지 생각해봐야겠지만 나의 게으른 특성상 아마도 더이상의 끄적임은 없지 않을까. 반드시 다시 읽을 것을 기약하며.

덧글

  • 아르 2010/12/02 11:52 # 답글

    고전 사회학의 거장 3인은 모두 한 가지 질문에 천착했지. "근대란 무엇인가?" 그리고 근대를 묘사하며 자본주의를 함께 말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우리가 지금도 살고 있는 이 세계 역시 여전히 자본주의와 뗄레야 뗄 수 없듯.

    그러고보니 예전 여자친구가 툭하면 자본주의에 대해 말을 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학적 상상력을 지니고 현재를 바라보면 많은 것들이 자본주의와 엮여 보일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많은 것들이 자본주의와 엮여 보였던 내 사고는 그러한 관점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싶네.

    그나저나 벌써 다 읽었다니! 채원이가 자극 좀 받겠는걸?

  • 젊은노인 2010/12/02 13:19 #

    채원누나처럼 꼼꼼하게 읽지는 못하니까요.ㅎㅎㅎ

    형이랑 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뒤르켐의 구절들이 쏙쏙 박혀오더군요.ㅎㅎ
  • 맑은영혼 2011/01/11 21:56 #

    내 이름이 언급되는 글을 이제야 보다니. 한달도 다 지났는데. 나 혼자 퇴화되는 기분이군.
    난 언제 정신차리고 공부하나.... 맨날 놀기만 하고. ㅜ.ㅜ

    아르, 혹은 젊은 노인.
    타인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내 블로그(?) 에서도 볼 수 있는 방법을 좀 가르쳐 주시지요. RSS 뭐 그런거? 어찌하나요?
  • 젊은노인 2011/01/12 16:16 #

    음 한RSS라는 프로그램을 받고 설치한다음에
    블로그 주소를 입력하면 그 블로그에 새글이 올라오면 표시가 되고 클릭하면 내용을 볼 수 있어.ㅎ
  • 아르 2010/12/02 12:05 # 답글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그 녹색평론 출판의 작은 책이지? 그거 재밌다.
  • 젊은노인 2010/12/02 13:15 #

    네.ㅋㅋ 녹색평론 문고판 시리즈들 20% 할인하길래 이번기회에 사려고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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