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되어야 할 당신의 시장자유 by 젊은노인

수정되어야 할 당신의 시장자유 -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고

수요와 공급만으로
자기를 조정하던 시장이 자유롭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경제학자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이 책은 김수영의 시에 대한 대단히 독특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시장경제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와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혁명'에 대한 우리의 경제학적 시각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느 오로지 그것들이 인간을 '고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97년, 이른바 IMF사태가 한국에 벌어졌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생전 만져본적도 없을 만큼의 빚더미를 등에 지고 있다고 했다. 매일 아침 집에 오는 신문엔 그날 그날 급등하는 환율이 일면에 찍혀나왔다. 구조조정이란 말에 대한민국의 수많은 가정은 무너졌다. 너나 없이 죄인이었고 금을 모았다.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경제광풍에 온 나라는 잔뜩 긴장했다. 그 후 10년이 지났고 우리는 IMF를 졸업했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에게 자유주의는 없었지마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이 좌파대통령에 의해서 선포됐다. 노동은 유연화 됐으며 땅값은 올랐다. 사는것은 인간의 필수 조건이고 노동은 우리의 권리라 하지만 자기 살 땅이 없고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넘쳤다.
 
캉드쉬 총재가 한국에 왔던 97년의 겨울 나는 막 5학년으로 올라갈 때였다. 친구들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중에 많은 숫자가 명퇴라는 것을 겪었고 가정이 무너졌다. 나에게 그 광풍은 직접 몰아치지는 않았다. 고대했던 수학여행이 취소됐고 이런 저런 행사들이 취소됐다. 그러한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낙오되면 저렇게 되는 것이라 배웠다. 사회는 냉정하다 했다. 우리가 봐라봐야 할 곳은 인간이 아닌 경제였으며 낮은 곳이 아닌 보다 높은 곳이었다. 우리는 숱한 꿈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 시기를 겪으며 우리의 꿈은 성적순과 소득순을 맞춰나가며 보정되어야 했다. 우리는 배웠다. 보이지 않는 손을.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많아지고 그럼 다시 가격이 떨어진다는 그래프를 배웠다. 경제는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 사장님이나 CEO보다는 노동자가 많을텐데도 경제와 경영은 배웠지만 노동은 배우지 않았다. 사회는 배웠고 국가는 배웠지만 우리의 삶과 권리에 대해서 배우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상품으로서 자라났다.

IMF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그 변화의 폭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100년 평화에 이은 두차례의 세계전쟁에 대해서 얘기한다. 인류 최대의 재난. 그러한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그것도 연거푸. 히틀러가 나쁜놈이라 배웠다. 아마도 우리가 배운 나쁜놈들 가운데 히틀러만한 나쁜놈이 있을까? 히틀러가 선거로 뽑혔단다. 독일 국민들은 왜 그런 사람을 뽑았을까. 집단적으로 어떠한 최면에 걸렸던 걸까?

한번은 부모님께 질문을 했었다. 나치시대의 독일인이라면 당신도 유대인 친구를 멀리하고 히틀러의 명령을 들었을까요. 아버지의 대답은 그렇다였고 나는 크게 상심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는 중요한 맥락이 감춰져 있었다. <거대한 전환> 2장을 읽으며 나는 상상해보았다. IMF사태라는 경제 위기속에서 한국사람들은 크게 변했다. 그렇다면 나치시대의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많은 성인들이 전쟁을 겪었다. 패전국의 국민으로서. 그들의 재기는 너무나 아득했다. 한국국민들은 2배 오른 환율에 온 나라가 들썩였지만 독일의 물가는 1조배까지 뛰었다. 지금 우리는 빨갱이라는 모함을 비웃는 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그 때엔 하나의 유령처럼 아직 미래를 알 수 없는 공산주의가 물밀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경제를 살려주고 공산당을 쫓아내어 국격을 높여줄 이명박을 뽑았던 것 처럼, 독일 국민들은 그보다 더 큰 공포속에 그보다 더한 히틀러를 뽑았다.

독일 국민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의 책임만으로 2차대전을 설명할 수 없다. 왜 그러한 재앙은 나타났을까.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거대한 흐름이 있었고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1차대전이라는 비극의 전 100년에는 나름의 평화와 균형이 있었다. 그러다가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엔 '거대한 전환'이 있었다고 한다. 세계는 그때 결정적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것고 거대하게. 물론 그 변화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건 아니다. 오스트리아에 살던 폴라니는 파시즘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러한 그의 삶처럼 그의 책 또한 이 거대한 전환을 설명하기 위해 산업혁명의 고향 영국으로 돌아간다.

사실상 이 책의 본론인 2부 시장경제의 흥망에서는 그 '거대한 전환'의 주범인 시장경제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시장이라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개념이 인류에게는 꽤 낯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폴라니는 길게는 고대사회나 원시 부족의 경제에까지 손을 뻗친다. 폴라니는 시장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의 2부, 3장에서 18장까지를 거치며 우리는 거대한 시장역사의 숲을 바라볼 수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영국의 봉건지주와 농민들, 그리고 성직자와 학자들의 삶이 펼쳐진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온 제도들, 사상들, 갈등들이 주마등처럼 우리 눈앞을 펼친다. 인클로져 운동이라는 꽤 익숙한 발단에서부터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사상가들, 애덤스미스, 멜서스, 토마스 모어, 벤담, 밀, 마르크스 등이 하나의 나무로서 우리 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들은 우리에게 매우 거대한 무게를 줬던 이들이지만 장구한 역사의 흐름 앞에 그리고 폴라니의 거대한 시야 앞에선 하나의 명멸하는 점 들이다. 경제개발에 의한 인간진보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에서 볼 때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시장이라는 사탄의 맷돌이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사회를 황폐화시킬 때 그에 저항하는 움직임으로서 미국의 뉴딜과, 파시즘과, 사회주의 혁명은 동일선상에 위치한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여주는 책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고 세월을 거스르며 살아남는 고전이라는 점을 보면 폴라니의 이 책은 굉장히 큰 시야로 숲을 조망하게 함으로서 이 책이 고전임을 증명한다. 그것은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하며 긴 역사와 거대한 사회 속에서 우리들 개인의 시야는 얼마나 좁을까를 새삼 느끼는 섬뜩함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인류학적으로, 경제적으로, 역사적으로 이 책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내용과 영향을 다 다루기에 나의 지식은 너무나도 얕으며 굳이 다 다룰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고전적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들이 담고 있는 시장의 자유에 대하여 시각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인류의 시작부터 무언가 인간은 교환했으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세계시장이라는 거대한 체제로 발전해왔다고 배웠다. 따라서 시장의 법칙은 일종의 자연법칙이며 인간은 거기에 순종하고 적응할 뿐 그를 제어하긴 힘들다고. 하지만 폴라니의 견해는 다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결코 시장이, 경제가 아니라 인간사회이다. 경제는 그 사회를 이루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여러 원동력과 도구중에 하나이다. 경제와 거의 동격으로 생각하는 시장원리는 상호성과 호혜성과 함께 그 경제를 구성하는 여러 원리중에 하나일 뿐이다. 생산하고 분배하고 소비하는 것은 인류가 탄생한 후로 언제나 있어왔지만 우리가 언제나 그 방법을 시장에 의존한 것은 아니다. 개개인이, 부족이, 가족이 필요에 의해 생산하고 공급하기도 했었고, 왕이, 부족장이 분배하기도 했었다. 오늘날에 와서 그 분배의 역할을 시장이 하기도 하지만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것 처럼 사회적 정치체제가 담당하기도 하고 민주적인 정치체제하에서 정치적인 합의가 담당하기도 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고 절대적인 방법이라 주장하지만 우리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복잡하며 다양하다. 반드시 이거여야 한다는 원칙도 없고 우리가 아는 수단들을 적절히 절충하며,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방법들을 상상하며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자기조정시장은 환상이다. 시장은 결코 스스로를 조정하지 못하며 국가와 사회의 간섭과 규제를 필요로 한다. 설령 많은 도움들을 받아 시장이 자기를 조정할수 있다 해도 보이지 않는 손이 수요와 공급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동안 시장의 한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은, 사회는 몰락해간다. 수요가 없는 노동, 즉 인간은 버림받는다. 상품화된 토지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살 곳이 없어져간다. 상품화된 토지에서 나오는 식량도 요동친다. 인간은 사회는 절대 시장화될 수 없다. 노조, 사회주의, 파시즘, 뉴딜, 스피넘랜드법, 챠티스트운동, 공산주의 등이 요동치는 시장의 자기조정에 저항하는 움직임들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인 자유시장이 사회를 덮칠때 그 반작용으로서 저항이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을 폴라니는 이중운동이라 했다. 이러한 이중운동은 영국을 필두로 해서 모든 산업사회에서 그 형태와 방법을 달리하면서 나타났다. 언급되진 않았지만 아마 오늘날의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IMF때 우리는 황금구속복을 입을 것을 강요당했다. 그것이 세계화시대에 제일 잘 맞는 옷이라고 했다. 불편해도 입으라고 강요당했다. 그것만 잘 입으면 우리는 성공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폴라니에 따르면 결코 누구에게나 맞는 황금구속복은 없다.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태초의 인간에겐 옷이 없었다. 인간은 옷을 발명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다양한 옷들을 만들어왔고 또 만들어갈 것이다. 억지 옷을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강요하는 것은 거대한 폭력이다. 옷에 사람을 맞추라고 하는 것은 잔인하다. 사람을 위해 옷이 있지 옷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람과 그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경제가 있지 경제를 위해 사회가 사람이 있지 않다.

2부를 쭉 읽다 보면 역사의 흐름에 재미를 느끼면서 다음의 흐름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각 장의 서술이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있다. 결과를 뻔히 알고 있어도 그 과정들을 궁금해하며 몰입감을 더해가는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처럼 이 책도 2차세계대전이라는 뻔한 결말을 향해서 치닫는 과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사람들과 사회와 치고받던 자기조정시장은 숱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점점 그 아귀를 넓혀가며 인간과, 자연과, 생산조직을 파괴하며 결국 17장에 가서 망가져버린다. 그러면서 18장에 가면 드디어 체제가 붕괴될 듯한 긴장감이 넘쳐 흐른다. 빵.

3부는 폴라니의 시점에서 현재와 미래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저술한게 40년대이므로 우리에겐 과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여전히 이 책의 현재와 미래가 우리의 현재이며 미래라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자기조정시장이라는 환상을 교과서에서 정론으로 배운다. 우리는 여전히 친기업적인 정부를 갖고 있으며 이 정부의 구성원들은 우리의 경제를, 사회를 기업에, 시장에 개방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린다. 우리의 현재에 여전히 인간은 소외되고 있으며 자연은 더욱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노동이 유연화되고 사대강은 殺려지고 있는 지금의 우리가 이 폴라니의 책에서 얻을 것은 무엇인가.

얼마전 서울에서 G20회의가 열렸다. g20때 쓰는 건배주나 저녁 식사 메뉴는 들었지만 G20의 의제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나 룰라대통령과 포옹하는 장면은 보았지만 장관들이 정상들이 어떤 내용을 토론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G20을 중심으로 요즘 치열하게 논의되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환율이고 하나는 자유무역협상이다. 1차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2차대전 이후 금본위제체제하에서나 워싱턴 컨센서스하에서나 국가의 수장들은 만나서 서로의 화폐에 대해서 논한다. 또 자유로운 무역을 겉으로 추구하면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할 방책을 고심한다. 나는 세세산 내용들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폴라니가 서술한 세계대전 전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서로의 화폐가치에 대해서 신경전을 벌이는 나라는 영국과 독일에서 미국과 중국으로 바뀌었다. 자유무역 협정을 두고 여러 잡음이 오간다. 한국에서는 촛불이라는 저항이 일어났었고 미국에서도 의회라는 정치적 합의가 저항한다. 시작부터 난항인 이 자유무역은 과연 두 나라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까? 

서울에서 정상들이 웃으면서 포옹하고 함께 같은 술로 건배한다. 그 주변을 서울의 경찰은 탱크와 트럭을 동원해서 안전하고 평온하게 봉쇄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세계는 평온할 것인가? 폴라니에 의하면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2차대전에 대해서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1차대전이 너무나 악몽같았기에, 많은 교훈들을 얻었기에 그러한 재난이 다시 닥칠 줄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세계는 거대한 수렁으로 한걸음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떠할까. 예전보다 더 무대는 넓어졌고 여러 국제기구들이 존재한다. 경제이론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수십년 수백년 뒤의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의 현재도 악몽의 수렁으로 한걸음 한걸음 착실하게 전진하고 있었다고 보이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 곁을 스치는 수많은 제도와 뉴스와 사상과 이념중에 무엇이 분기점이 되고 어떤것이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인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가 가졌던 거대한 자유라는 환상은 이미 무너졌고 우리 인간은 깊이 체념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러한 체념을 딛고 우리는 용기와 힘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다. 인간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실재 앞에서 우리 개개인은, 또 시장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는 가질 수 없다. 수많은 개인들이, 수많은 체제들이, 수많은 생각들이 사회를 구성한다. 이러한 복합 사회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자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분명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동료들, 즉 모든 인류가 누릴 수 있는 무언가 풍족한 자유를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폴라니의 책을 읽고 무언가 세계가, 아니 세계를 인식하는 우리의 틀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그 틀은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는가. 글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진 않았다. 다만 시장이라는 환상이 허구로 만들었던 상품인 인간과 자연과 토지, 그리고 화폐를 다시 우리 사회로 가져와야 한다는 힌트이자 전제가 나왔을 뿐이다. 폴라니의 책이 나온후 60년이 넘게 흘렀다. 그 동안 많은 대안들이 제시되고 실천되고 전진하고 있다. 인간을 상품으로 보지 않을 것을 요구하며 제시된 노조, 협동조합, 공동체들. 자연을 상품으로 보지 않을 것을 말하는 자연주의, 생태주의, 환경주의자들. 토지를 매매의 대상으로 보지 않을 것을 원하는 토지 공개념을 비롯한 많은 이론들. 그리고 화폐에 대한 개념을 바꿔보기를 원하는 대안 화폐들. 또 아직 누구에게서도 말해지지 않은 상상들, 아직 이론화 되지 않은 아이디어들, 아직 힘을 얻지 못한들에 대한 주장들에 대해 검토해보고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훌륭한 인문학 책이 그러하듯이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질문과 두둑한 고민을 던져줄 뿐이다. 그 대답과 고민은 우리 모두의 몫이며 우리는 그 고민과 더불어 실천이라는 과제까지 떠 안아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들이 몇가지 있었다. 그것은 나의 부족이기도 하고 이 책의 숙명적 한계이기도 하다. 먼저 글에서 언급된 애덤스미스, 벤담, 마르크스 등의 현대 자본주의 이론에 대해 내가 너무 무지해서 더 넓은 이해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특히나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체제인 자본주의에 대한 나의 부족한 배경지식이 아쉬웠다. 내가 몸과 마음을 언고 있는 거대한 틀의 대략적인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몇가지 책을 읽으며 공부할 생각이다. 현대 사회에 대한 저명한 이론가 마르크스, 뒤르껨, 막스베버의 이론을 잘 정리해 놓은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을 시작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최고의 비판서인 마르크스의 <자본> 그리고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등이 그 계획선상에 있다.

또 하나는 보다 구체적인 대안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경제성장이라는 환상을 깨고 그 자리에 대신 놓아야 할 우리의 지향과 목표는 무엇일까. 또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어떠한 것들인가에 대해서 폴라니와 같은 탁월한 사상가가 몇가지 힌트를 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글라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아니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가 떠올랐다. 또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나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과 협동조합 체제에 대한 이론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대안은 결코 이론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삶에서의 경험과 대화, 그리고 많은 통찰을 주는 예술과 활동에 대해서도 소흘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아쉬웠던, 혹은 궁금했던 부분은 국가라는 기본 단위는 결코 변할 수 없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폴라니는 세계경제체제 하에서도 국가라는 주체가 그 완충작용과 분배작용을 담당해야 한다고 봤다. 국가단위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이다. 물론 경제는 점점 세계화 되고 있고 IMF나 UN등의 국제기구들이 있다. 하지만 그 기본 단위는 여전히 공고하게 국가가 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그 너머를 상상하고 고민할 수 없을까. 경제라는 것이 사회의 묻어있다면 시장이라는 것이 사회에 의해 통제되고 조절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세계시장을 통제하고 제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국가를 넘어서는 또는 국가를 벗어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

파시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원체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탓인지 나름 집중해서 읽었으나 여전히 파시즘에 대해서 명료하게  정리를 하지 못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독일과 한국은 나름 유사한 점이 꽤 있는 사회이다. 패전국이며 후발국가이며 분단국가였다. 나는 지금의 한국 현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유사한 파시즘적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파시즘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는 막막해지는 만큼 파시즘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개인적으로 필요할 것 같다.

폴라니는 2차세계대전 전에 영국등의 승전국들의 안일한 태도와 빈약한 무장이 전쟁을 일으키는 한 원인이 됐음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같이 무장을 한다면 평화는 올 수 있을까. 견제 세력들이 생겨서 균형을 이루면 우리는 평화로울까.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세력균형체제에 의해 100년 평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여전히 전쟁과 살상은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단순히 세계대전같은 거대한 비극이 아니면 사소한 비극정도는 괜찮은 것일까? 물론 거대한 비극을 막는 것이 우리의 급선무임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당장 모든 국가의, 아니 우리 국가의 무장을 해제하자는 주장을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를 우리의 미래의 목표로 놓고 그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 숙고하는 것은 불필요할까? 우리시대에 여전히 담겨있는 전쟁의 위험성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감시하고 분석하려는 학문적인 노력과 또한 그러한 역사의 흐름에 저항하는 많은 사람들의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이 오버랩됐다. 읽은지가 꽤 돼서 정확하진 않지만 유러피안 드림도 중세시대의 유럽의 역사의 흐름을 짚어가며 어떻게 경제와 사회가 마찰을 빚었는지 서술하며 결코 경제가 사회 위에 설 수 없음을 말했다. 경제, 즉 자본주의라는 근대적 현상을 이겨내고 평화를 지향하는 공동체로서 유럽이 꾸는 꿈을 서술하고 있는데 많은 부분 폴라니의 서술과 닿는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고 아쉬웠던 대안에 대한 하나의 좋은 참고로서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읽고 싶어지는 이유이다.

끝으로 정말 편하게 읽히는 번역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고전이라는 어떤 두려운 편견을 이 책에서는 잠시 접어둬도 될 것 같다. 그리고 풍부하고 성실한 주와 해제, 서문등도 큰 도움이 된다. 길 출판사의 고전은 비싼 가격만 아니면 흠잡기가 힘들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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