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가르기와 편없음 by 젊은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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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 꽤나 많이 들어본, 심심찮게 논쟁거리가 되는 익숙한 질문이다. 술집이든, 교실이든, 찻집이든 이 논쟁의 결론은 어떠한 목적도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쪽과 수단보다는 목적이 중요하다는 쪽으로 나뉘는 것 같다. 이러한 결론을 내 놓기 위해서 멈추지 못하는 열차와 인부의 목숨숫자가 비교되기도 하고 부수적 피해 없이 무기 공장만 폭발시키면 어떻겠냐는 질문도 제기 된다. 어떠한 목적도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명제는 이상적이면서도 결연한 느낌을 나에게 선사해 주지만 결국 난 목적도 목적나름이고 수단도 수단 나름이라는 애매모호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어떠한 목적인가. 어떠한 수단인가. 수단의 대안들은 어떠한가. 그 수단과 목적은 어떠한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현실은 이러한 것들을 다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하다. 명료하지 않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샌델의 책을 보고 지적 유희라고 하는 것이다. 비판적일 필요는 없다. 성적 유희, 가상현실에서의 폭력, 킬링 타임등이 주류가 되는 세상에서 지적 유희정도면 바람직하지 않을까.

#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오늘 엄마가 KBS뉴스를 보길래 KBS보단 MBC가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니까 엄마가 KBS가 그나마 제일 객관적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잠깐 티격태격했다. 차라리 KBS가 좋다고 하면 좋을걸 객관적이기 때문에 본다는 건 뭐랄까..


한국사람들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나도 거기에서 예외가 아닌듯 싶을 때도 있다. 보수라고 하는 것은 교양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는 프랑스는 둘째 치더라도 미국이나 유럽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공화당원, 민주당원이라는 말이 들어가는게 어색하지 않다. 미국의 이분법적인 양당체제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선 자신의 정치성향을 소개하는 것은 서로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는데 편견과 동시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러한 풍경은 상상하기 힘들다. 낯선 사람과 얘기할 때 자신을 소개하며 한나라당 지지자입니다, 전 민주당 지지자입니다. 하는 것은 매우 어색해보인다. 대신 한국사람은 나이와 학교 고향 직장등을 소개하고 대부분 자신을 직함으로 부르기를 원한다. 아무개 씨, 아무개 님이라고 하기보다는 김팀장님, 이박사님, 박뭐뭐교수님 등 말이다.

낯선사람하고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의 정치색깔을 표현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정치적인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와는 놀지 말라고 부모님께 교육 받으며 주변의 친구들이나 가족들도 위험한 사람으로 경계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사회적인 논쟁이 발생해도 자신의 의견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이쪽은 이렇게 주장하지만 이런 문제점이 있고 저쪽은 저렇게 주장하지만 저런 문제가 있다. 따라서 나는 어떤 쪽을 지지하기 힘들다. 정도의 양비론 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경우가 잦다.

객관적인, 제 3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려는 노력은 좋다. 또 반드시 양자 중 한 편의 입장을 들어줘야 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하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평가만 하고 자신의 의견을 갖지 않는, 혹은 가진다 해도 노출시키지 않는 태도는 어떠한가.

나는 결코 중립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쪽으로의 편을 만들어놓고 그 쪽이라면 무조건 지지하는 교조주의적 태도를 취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어떤 사안에서 반드시 찬성과 반대만 있을 뿐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를 취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이 있을 곳이 반드시 중립이라는 애매모호한 공간일까?

회색인과 기계적 중립은 다르다. 기계적 중립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말려들지 않겠다는 귀차니즘과 무사 안일주의의 산물이다. 회색인은 많은 문제들에 대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시각으로 접근해 보려고 애쓰며 편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신중하게 접근하지만 확고하게 행동한다. 자신의 생각이 매우 어렵게 도출 된 것임을 알기에 다른 이들의 생각도 그 나름으로 존중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판단에 대하여, 끊임없는 의심과 깊은 자기 신뢰를 동시에 지닐 것이다.

이른바 쿨 하다는 기계적 중립은, 양비론은 무관심의 다른 말이기 십상이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오른 여러 언론사 기사의 제목들만 보고 각 언론사의 지점을 확인하고 자신은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 선다. 아무도 맞는 이도 없고 아무도 틀린이도 없다. 하지만 다 비판은 받아 마땅하다. 그렇기에 지지할 곳 도 없다. 정체 없이 떠도는 요즘 우리의 정체성이여.

난 편가르기는 너무 싫다. 그렇지만 무조건 중립은 더더욱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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