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계급 by 젊은노인

부르디외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데에 반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가장 인기있는 지적과시의 기회 가운데 하나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음악에 관해 말하는 것은 자신의 교양의 폭과 해박성을 표현하는 훌륭한 기회인데, 그는 그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기호만큼 그 사람의 '계급'을 확인시켜 주는 것도 없으며, 또한 그것만큼 확실한 분류 기준도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강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 II>(인물과 사상사, 2004)

이 구절을 읽고 장정일의 <구월의 이틀>이 떠올랐다. 클래식을 듣는 자는 우파일 수 밖에 없다는 말.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의 저자이기도 한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보면서 재즈에 대한 생각에 대해 읽으면 강준만의 책의 위 구절이 오버랩된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잘한다 하는 학생들이라면 클래식, 국악, 팝송에 대한 기호를 드러내는 것이 낯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나 또한 그 무리 가운데서 '클래식'을 좋아해보려고 했었지만 이건 실패했고 '팝송'은 어느정도 좋아하게 됐다. 물론 음악에 대한 취향을 이러한 '구별짓기'나 '티내기'로만 다 설명할 순 없겠지만 뭐랄까 팝송을 따라 부르면서 느꼈던 허세가 어느정도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중학교 때 내가 다녔던 학원은 나름 그 지역의 최고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원이었고 팝송을 듣는것을 권장하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학원 수업시간 틈틈이 선정된 팝송이 흘러나왔고 학생들은 그 팝송의 가사를 익히도록 했다. 일년에 한번 학원 축제로 팝송콘테스트란 것도 열었다.(대전에 산다면 어느 학원인지는 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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