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를 읽고(스포 있음) by 젊은노인

서평은 아니고 몇가지 남는 점을 적어보고자 한다. 기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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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건 문학동네에서 펴낸 판이다. 톨스토이에 있어서 예전부터 쭉 번역을 해온, 이제는 굉장히 권위자가 된 박형규교수가 번역을 했고 2009년 12월 나왔으니 아주 최신번역본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민음사버전도 나왔고 나중에 다시 읽을 기회가 된다면 민음사 버전을 읽어보고 싶다. 비교해서 읽은 적이 없으니 정확한 설명은 아니지만 몇가지 트집을 잡아보겠다.

우선 이름이 워낙 복잡하여 나름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물과 잘 연결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소설은 방대하고 등장인물은 굉장히 많다. 특히나 러시아식 이름은 복잡해서 정식 이름과 성이 있고 별명이 있으며 부르는 사람이 친하냐, 예의를 차리는 자리냐, 신분이 어떠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걸 쫓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비슷비슷하기도 해서 더욱 그러하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레빈이 코스티아라는 별명으로 (키티에게) 불리기도 하고 콘스탄틴 드미트리치라고 (농민들에게) 불리기도 하는데 또 어떤이름으로 불렸는지 그 이름들이 다 뭔지 설명하기 힘들다. 여기에 공작이니 백작이니 공작영애니 지위가 들어가고 친척관계가 들어가면 참 힘들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앞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대한 정리가 되있는게 독자의 편의를 위해 좋을 듯 하다. 꼼꼼한 독자는 노트에 적으면서 읽어보시길.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으면서도 이름때문에 고생하진 않았는데(그책엔 가계도도 나온다. 연신 들춰봤던 기억이)

초판이라 그런지 몰라도 단순 오타와 비문들이 꽤 보였다. 그때그때마다 적어두진 않았기에 예를 들순 없었지만 그런거에 무딘편인 나도 몇번 발견했으니 꽤 있는 거 같긴 하다. 읽는데 큰 지장은 없다.

박형규 교수의 번역이 젊은 세대에겐 조금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시대적 배경이 150년 정도 전이기에 일부러 이렇게 번역한 것일까? 민음사껀 어떨지 궁금하다.

책의 디자인이나 제본상태, 가독성은 매우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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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연대를 흥미롭게 읽어봤다. 나의 이상과 꽤 가까운 사람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젊었을때 방탕한 사교생활을 하기도 하고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전쟁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됐고 방탕한 시절에 대해 반성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유년시절>이라는 소설도 데뷔한 그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걸쳐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 두 장편을 집필했다. 그의 소설은 그의 삶과 생각을 별 여과 없이 드러내는데 농민들의 삶에 매우 관심이 많았으며 가족을 매우 중시 여기는 한편 제도와 철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 같다. 그의 평화와 신앙에 대한 신념은 <안나 카레니나>에도 비치며 <전쟁과 평화>는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는 점점 국가라는 체제에 대해서 회의를 느꼈고 사유재산에도 회의를 느껴서 아내와 마찰을 겪기 시작하게 된다. 이후 그의 삶은 평화와 그의 확고한 신앙을 점점 키워가며 수많은 집필활동을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집필한 글들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노년에 그는 병역거부자들을 물적으로 사상적으로 지원하는데 힘썼고 평화주의와 아나키즘을 위해 헌신했다. 노년기의 그의 대작 <부활>은 그 자금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썼다고 한다. 귀족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민중, 특히 농민들을 위해 헌신했고 자신이 가진 특권을 점점 버려갔으며 국가에 대항하며 평화와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대로의 신념을 위해 헌신하며 인생을 불태운 톨스토이의 삶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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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작가들은 그 시대의 어떠한 점을 반영한다. 그 급은 다르겠지만 7~80년대의 이문열이 한국의 유신체제와 군부정권과 더불어 가부장적 전통질서를 대변한다면 민주화운동당시 황석영은 또 어떠한 집단과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한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라는 위대한 문호를 갖고 있던 러시아, 그리고 그들이 당시에도 큰 명성을 누렸다는 점을 살펴보며 러시아의 어떤점이 그들에게 반영됐을까 궁금해졌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이러한 사상적 기반과 관련이 없는 것일까? 그들의 소설은 왜 아직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을까. 오늘날의 세계에서 그들의 가치는 어떠한 세계를 반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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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체적으로 잘 녹아들을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시대와 공간이 달라서이기도 하겠지만 귀족 중심으로 전개되는 주변분위기가 조금은 불편했다. 물론 중간중간 하인들과 농민들이 언급되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주변인이다. 귀족 중심의 문화와 탁상공론들이 썩 탐탁치는 않았다. 저자는 그러한 모순을 부인하지 않는다. 중간에 평등에 대해서 논의하는 장면에서 레빈의 그러한 고민이 드러난다. 불평등한게 싫은데 그 이유를 잘 설명하긴 힘들며 자신도 분명 그 특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버리기는 싫다는 고민이다.

또 하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심적인 변화이다. 나에게 있어서 '연애감정'이라고 통칭되는 질투, 시기, 집착, 구속, 의심 등이 나에겐 너무나 불편했다. 더군다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겪어야 했던 실재에서의 여자의 난해한 심리는 나에게 큰 불쾌감을 선사한다. 그러한 심리는 인간보편의 심리로 어느정도 정당화 되고 있는듯하다. 심지어 레빈에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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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레빈의 결혼과 카레니나의 결혼을 두 축으로 전개된다. 한 축은 레빈의 깨달음과 행복으로 이어지고 한 축은 팜므파탈, 안나 카레니나의 몰락으로 귀결된다. 안나 카레리나의 불륜과 질투와 같은 팜므파탈적인 요소가 그녀를 파탄에 이르게 했고 그 과정은 당연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안나 카레니나의 죽음은 온전히 그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억압된 여성의 사랑과 행복에서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했던 안나 카레니나에게 돌아오는 남편과 사회의 반응은 잔인하리만큼 냉담했다. 사교계의 꽃이었을 안나, 그리고 사랑했던 자식의 엄마였던 안나, 그리고 브론스키의 연인이었던 안나는 사교계에서 철저히 매장됐고 자식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으며 친척들간에도 꺼려지는 그리고 나중엔 애인의 사랑도 식게 되는 거의 완전한 고립상태에 이른다. 그녀의 죽음에 이러한 잔인함들은 어느정도의 책임이 있을까. 이 소설의 주인공을 절대 레빈으로만 볼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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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신앙은 어떠한가. 그는 러시아 정교회와 많은 마찰을 빚었다. 오늘날 내가 그러하듯이 주류 교회의 많은 부분과 그는 어긋난다. 그런 교회와의 마찰은 <안나 카레니나>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그는 그의 삶의 의미를 하나님으로부터 찾았고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그러나 존재하고 있던 신의 존재에 감격한다. 그에게 있어서 어려서부터의 기독신앙은 축복이었고 그의 삶을 형성한 무엇인가였다. 하지만 그는 왜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신을 섬기며 저마다의 선을 추구할까, 왜 자신은 그에 대해 설명하지 못할까 고민하지만 결국 그는 그것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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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굉장히 지루했다. 도합 1700~1800페이지에 이르며 권수로는 세권이다. 특히 1권은 매우 지루했으며 2권과 3군 중반까진 나름대로의 끈기가 없다면, 고전을 읽는다는 뿌듯함이 없다면 읽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읽는데 꽤 오랜 날이 걸렸다. 이러한 늘어짐은 어쩌면 나의 시간적 여유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 밀고당기기나 질투 등의 연애감정때문에 재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3권 중반(7부)부터는 전개가 급물살을 타며 급속한 재미를 느끼게 했고 순식간에 읽어내려가게 됐으며 종장(8부)에 이르러서는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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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다음 작품으로 <전쟁과 평화>를 읽게 될 것 같다. 인디북출판사의 2004년판으로 도서관에 신청해놨다. 그리고 나서는 민음사버전의 <부활> 그리고 그의 노년기와 중년기의 사이에 썼던 중단편들을 읽어볼 것이다. 소설과는 별개로 <국가는 폭력이다>를 비롯한 그의 에세이들과 그의 흥미로운 인생에 대한 책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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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뭔가 남겨야 한다는(글 말고 어떤 깨달음이나 설명할 수 있는 의미. 즉 누가 이 책을 읽고 뭘 느꼈냐고 물어봤을때 나름대로의 대답? 고전이기에)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평생에 몇번 읽지도 모르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필독서'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말이다. 읽는 중에 그런 '느낀점'아 없었다. 소설에 잘 몰입도 못했는데 말이다. 읽어나가면서 읽는데 의의를 두고 즐겁게 읽기로 했다. 굳이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그리고 지금 당장 무언가 의미를 드러내놓지 못하더라도, 지적인 성장이 현격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체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편히 읽어내려갔고 재미있는 7,8부를 읽으면서도 나는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잔잔한 여운을 즐기고 있던 나는 머릿속이 좀 복잡해졌고 끄적끄적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길게 무질서하게 끄적이면 결국 나만 읽게 될거라 웃으며 한참을 끄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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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젊은이들을 민족주의적 열정에 힘입어 전쟁으로 내몬 힘은 무엇이었을까. 신념? 사상? 형제애? 사명감? 소설에 묘사된 데 따르면 그저 그 사회 내부의 모순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 같다. 방탕했던, 사랑에 실패했던, 집안이 망했던, 경쟁에서 낙오된 자들이 자신을 위해서 혹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민족주의적 열정을 덮어 쓰고 터키군인들을 죽이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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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호흡도 빠르고 흡인력이 있다. <죄와벌>도 그렇고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도 그렇고 무언가 격정적이고 열렬한 구석이 있는데 반해 <안나 카레니나>는 평탄한, 그러면서도 도저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전자는 젊은이, 후자는 노인의 풍모가 느껴지게 하는 소설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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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많이 궁금했던 건 대체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이걸 읽었을까? 특히나 여가시간이 부족하고 책을 잘 안읽는다는 오늘날의 한국 대학생중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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