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관대함을 by 젊은노인


오늘날의 한국을 살아가는데는 과연 얼마만큼의 관대함이 필요한 것일까.

4월,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다가 한켠에 치워뒀다. 인도와 네팔을 다녀와서 맑아진 정신에 삼성얘기를 듣기엔 너무도 머리가 아팠다고 해두자.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나도 꽤 무뎌진건가. 다시 삼성을 생각한다를 꺼내 읽었다. 그리고 어제부터 난 굉장히 까칠한 상태이다.

검사출신의 삼성 임원이었던 자가 쓴 이 책. 저자는 자식들에게 돈을 잘 벌어주는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10년가량을 삼성 최고위층의 일원으로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그들의 불법과 비리에 참여했다. 그 자신의 스스로가 사치를 즐겼다고 하며 뇌물을 가져다 준 사실, 불법 행위에 가담한 사실 등을 털어 놓는다. 그러한 그가 비웃을정도로 타락한 불법의 온상인 삼성얘기를 읽으면서 나는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대체 나와 같이 이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너그러운 것이기에, 얼마나 관대하기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갈까. 뿐만 아니라 더 마음이 넓은 어떤 자들은 이러한 삼성이란 곳의 일원이 되지 못해 안달이며 자신이 삼성을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또 삼성맨이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때 삼성캠프에 갔었다. 돈 한푼 내지 않고 용인의 삼성 연수원에서 잘 먹고 잘 놀며 캐리비안 베이에 삼만원의 용돈을 받고 가는 호사를 누리면서 역시 삼성은 좋은 곳이구나를 뼛속 깊이 배웠다. 당시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조별 활동이 있었고 우리 조의 이름은 LG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삼성캠프에서 무슨 LG냐고 주저했지만 난 강력히 밀어붙였고 의외로 조 이름에서 1등이 됐다. 잠시 무용담이 됐었는데 이게 삼성에 대한 구체적인 첫 기억이라 할만 할것이다.

유럽여행때 루브르박물관에 갔었는데 삼성에서 한국어 카탈로그도 만들어놓고 한국관도 만들어놨었다. 나름 자부심 비슷한걸 느끼기도 했었다. 마침 내가 들고 있던 디카도 삼성 카메라였다.

2007년인가 2008년 엑스파일 사건을 시작으로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지고 뇌물에 비리에 불법에 온갖문제가 다 터졌고 난 그 이후로 삼성을 쳐다도 보지 않게 되었다. 한국에 살면서 삼성의 돈줄이 안들어 간 구석이 찾기 힘들만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난 비교적 최선을 다해 삼성을 피했다. 애니콜은 절대 쓰지 않았으며 삼성 컴퓨터 등 전자제품도 쓰지 않았고 CJ 푸드빌에서 운영하는 대부분의 레스토랑에도 가지 않으려 했으며(물론 돈도 없었다) 에버랜드나 케리비안베이도 가지 않고 홈플러스나 이마트도 가지 않으며 웬만하면 CGV도 가지 않으려 하며 스포츠경기도 삼성팀은 응원하지 않았다. 삼성 혐오증이라 할 만 하다.

사람들은 삼성을 감싸기도 한다. 삼성이 그래도 한국을 먹여살리지 않나. 삼성에 다니는 것도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겠나. 삼성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좀더 정확히 얘기하면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말하는 문제는 죄다 이건희와 그 아들딸과 그 측근들의 문제다. 삼성에 노조가 없는 것도, 그래서 노조를 만들려고 하는 자들을 감시하고 협박하고 추적하고 쫓아내고 편법으로 밀어내는 것도 이병철과 그 아들 이건희의 신념이 아니던가.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점은 이건희와 삼성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김용철은 삼성과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썼다고 한다. 그 의도와 목적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겠지만 삼성이 이건희의 사기업이 되지 않게 하고 현재 저지르는 문제점들을 고치는 것이 삼성과 대한민국에 좋은 것만은 분명하다.

다른 기업도 어느정도는 다 그렇지 않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양과 질적인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다른 기업이 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문제 삼아야 한다. 삼성은 특별한 케이스이다. 1등만 기억하는 사회에서 그들이 구축하는 악화는 단연코 일등이다.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 일등만 존경하는 사회에서 1등을 공격하고 문제삼는 것은 현실적인 비판 이상의 상징적인 힘이 있을 것이다. 삼성 문제에는 뿌리깊은 정경유착이 있고 언론의 사기업화가 있고 정치인, 법조인들의 부패와 비리가 있고, 자본의 언론탄압도 있고, 학벌문제, 지역문제, 하다못해 민족주의문제까지 사회의 온갖 문제가 다 담겨 있기에 가히 자본주의 악덕의 꽃이라 할만하다. 한두개 빼놨다. 노조가 없다는 전근대적인 문제와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 최근 문제시 되고 있는 백혈병문제라든가 비자금 문제 등등은 삼성을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하게 만드는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누가 소비를 이념으로 하냐고 신세계 회장이 그랬다고 한다. 나는 묻고 싶다. 누가 소비를 숫자로만 하냐고. 만약 고객이 보는 앞에서 사람들 두드려 패가면서 무언가를 만들어서 판다면 그 모습을 보면서도 값이 싸다는 이유로 구매할 사람이 되는지 나는 궁금하다. 고객이 보는 앞에서 소매치기를 해서 싼 가격에 장물을 판다면 그 범죄 현상을 목격하면서도 그 장물을 구매할 사람이 많을까? 그런 구매행위가 바람직할까? 삼성이 물론 우리가 보는 앞에서 소매치기를 하거나 폭력을 사용한 노동으로 물건을 생산하지 않는다. 다만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공장에서 백혈병이 걸리고, 좋은 이미지만 기억시키기 위해 언론에 엄청난 돈과 뇌물을 뿌리고, 삼성이라는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수많은 비자금을 만들고 법조계, 정치계, 정부를 썩게 만들며 탈세라는 도둑질을 상습적으로 하며, 노조를 폭력적으로 막는 그러한 모든 추한 점들이 또하나의 가족이라는, 대한민국을 먹여살린다는, 세계 최고의 1등 기업이라는 세련되고 따뜻한 이미지로 덮여 있을 뿐이다. 추악한 생산 과정을 거친 물건을, 서비스를 소비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념적이라면 난 소비를 이념적으로 한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으며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난 도대체 이 사회를, 이 현실을 분노와 슬픔없이 바라볼 수 없다. 오늘도 난 내 돈벌이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면서 어떻게 해야 이 거짓말 같은 현실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난 슬퍼서, 화나서 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다들 그렇지 않냐고 내가 이런다고 뭐가 바뀌냐고 하면서 이해하고 너그럽게 넘어갈 수가 없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를 먹었으면서도 둥글둥글해지지 못한 내 못난 심성으로는 삼성 제품을 사고 싶어도 역겨워서 살 수가 없다. 물론 난 토익 토플 몇점, 대기업 인턴, 이렇다할 특기도 없기에 삼성에서 뽑지도 않겠지만 삼성에서 수십억을 주고 와서 일하라고 해도 그들에게 침을 뱉을 지언정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내 또래들은 삼성을 욕하면서도 삼성을 부러워하며 삼성을 가고 싶어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삼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또한 그들을 부러워 하며, 또 이해하며 살아갈까. 대체 얼마나 너그럽기에, 얼마나 관대하기에 그들은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웃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오늘도 그 관대함에 질투를 느끼며 두통을 앓는다.

한국을 살아가는데, 범죄집단인 삼성을 동경하는 데에는 대체 얼마만큼의 관대함이 필요할까. 얼마나 더 분노해야 내 슬픔은 무뎌질까.

책 읽다 열받아서 끄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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