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 by 젊은노인

어릴적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세상은 왜 이렇게 불합리할까. 하는 의문을 꽤 가지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신문을 즐겨 봤고 책도 즐겼다. 그렇다고 해서 어둡고 냉소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성격이 밝은 편이었고 비교적 원만한 교우관계를 가졌다.

젊음이라는 시절에 돌입하고서는 그러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인권으로 향했다. 그 중에서도 분쟁과 차별은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이었다. 역사와 전쟁에 대한 흥미가 있었던 나는 수많은 전쟁과 관련된 영화와 책 등의 자료를 보면서 전쟁에 대한 심한 거부감과 슬픔을 느꼈다. 이 전쟁이란 것이 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전쟁을 막지 못할까. 어떤 이들은 오히려 하려고 할까. 어찌 해야 이 전쟁이란 것을 없앨 수 있을까. 줄일 수 있을까. 나의 관심은 서서히 이쪽으로 향했고 어느덧 전쟁과 평화라는 단어는 내 삶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됐다. 인권과 평화에 관련 된 활동들을 직간접적으로 부족하게나마 해왔고 특히나 양심적 병역거부나 전쟁무기산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

그런 나에게 군대문제는 시급한 당면과제가 됐다. 시급한 당면과제라는 것은 당장 빨리 해치워버려야 한다는 뜻으로 쓴 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젊은 남자라면 흔히 겪는 군대라는 문제 앞에서 나의 선택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이 징병제라는 제도는 나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아니 강요했다. 어떻게 하면 이 전쟁과, 전쟁을 만들어내는 군사주의를 이겨내고 전쟁을 줄여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에게 군대는 단지 어떻게 하면 쉽게 해결할까,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의 문제가 아닌 옳고 그름을 놓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돈 것이다. 그리고 당면한 현실은 만약 군대가 옳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내 인생을 건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군대가 옳으냐 그르냐. 이 문제에 대해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답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평생을 걸고 이 문제와 씨름해도 이 문제에 대한 보편타당한 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며 설사 군대가 옳지 않다는 답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군대가 없어질 가능성은...글쎄 내 평생엔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건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빠른 시간 내에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선택이 없이는 그 이후의 삶을 언제까지고 미뤄둬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자라면 이러한 내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의 노력, 최선을 다한 고민과 나 스스로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거부를 한다면, 군대에 대한 내 소신을 바꾸는 것은 가능할 지 몰라도 거부를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평생 갖고 가야 할 족쇄이다. 거부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얻을 수 있는, 아니 잃지 않아도 되는 현실적 이익은 명백하다. 잃을 것이 너무나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눈 딱 감고 군복무를 선택할 수도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의 내면적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나는 나름대로 옳고 그름을 좋아하며 내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한 것은 반드시 하며 살았다. 앞으로도 되도록이면 타협하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일정부분 타협하고 누구나 옳지 않은 것을 할 수밖에 없다. 때론 눈 딱감고, 때론 너무 힘들어서, 때론 확신이 없어서, 때론 이익이 되기 때문에, 때론 먹고 살려고. 나 또한 이미 그래왔고 앞으로도 많은 타협을 하며 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선택 범위안에 들어와서 나에게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많은 시간과 권리를 줬을 때는 나의 가치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지 못했을 경우 나에게는 두고두고 자책이 따를 것이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줄어들 것이다. 한마디로 괴로울것이다. 몸의 자유냐 마음의 평안이냐. 난 몸 불편한건 참아도 마음이 불편한건 참지 못한다. 그렇다면 마음이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 나의 현실주의이다.

난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난 모법적인 사람도 아니고 사회통념에 비춰봤을때 도덕적인 사람도 아니며 대단히 똑똑한 사람도 못된다.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남성적인 폭력적인 면모들이 많이 있다. 난 또한 신실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완벽한 그리스도인도 되지 못한다. 그저 노력할 뿐이다. 나는 성공한 사람도 아니다. 나의 영향력은 미미하며 행동이 미치는 파장도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병역을 거부한다는 것은 나의 작은 실천의 시작이다. 이것은 이제부터 나 자신, 전쟁에 협조하는 어떠한 것에도 가능한 한 가담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내 평생에 전쟁을 줄이고 전쟁으로 인해 죽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양심의 직접적인 실현이다. 얼마 안되는 나의 아는것 과 행하는 것을 맞춰가려는 적극적인 실천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평화를 보잘 것 없는 내 삶으로나마 실천해 나가겠다는, 내 믿음과 내 삶을 일치시켜 나가고자 하는 나만의 신앙고백이다.

난 대규모 군대의 존재가, 또 그를 뒷받침하는 그에 뒷받침되는 군수산업전체가, 또 그를 떠받치는 그에 뒷받침되는 군사주의가 전쟁을 만들어내고 전쟁을 확대하며 확산시켜나간다고  셍각한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말이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데에는 많은 방법과 길이 있을것이고 적극적인 의지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방법이 무엇인지 지금 내가 정확히 내어놓을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군대와 군수산업, 군사주의가 그러한 다른 노력과 의지를 막으며 방해한다는 것은 확신한다. 난 그러한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군대를 거부하는 것은 그러한 노력의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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