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낭의 안보를 위하여 by 젊은노인

내 배낭의 안보를 위하여

유대관계와 책임이 내면의 평화와 만족감을 위한 전제조건인 깊은 안정감을 제공한다.
- 헬레나 호지, <오래된 미래> 中


 "나마스떼~압셰 밀까르 바훗 꾸시 후이~!" 힌디어 (힌디어는 인도에서, 특히 내가 여행한 인도 북부에서 가장 넓게 통용되는 말로 식민시절의 영어와 달리 인도인들의 자부심을 표출하는 실질적인 국어역할을 한다) 로 "안녕하세요. 만나서 매우 반갑습니다"하는 말이다.  이 짧은 말이 두 달간의 인도네팔의 여행에서 나의 배낭의 안보를 지켜주는 마법의 주문이 돼 주었다.

 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인도 뭄바이에서 시작해서 네팔의 카트만두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나는 나름대로 여행을 했다. 그 시작은 인도의 아메다바드에서 열렸던 WRI 컨퍼런스(1/20-25)였고 나는 헝그리한 대학생답게 한번 간 김에 내가 가진 돈의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오래 머물렀다.(속된말로 뽕을 뽑았다) 때로는 함께, 때로는 혼자였다.

 배낭부터가 비쌌고, 나의 전재산이다시피 한 카메라 장비를 비롯해서 내가 가진 모든 짐들은 가난한 인도인들에게는 군침도는 물건이었다. 인도여행을 가본 자라면, 혹 가려고 생각해본 자라면 누구나 도난에 대한 경고와 주의를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 여행지라면 어디에서나 주의되는 사항이지만 그 목적지가 인도라면 그 공포감과 실질적인 확률은 꽤나 늘어난다. "당신의 물건은 전생에서 나의 것"이라든가,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든가, "처음부터 당신의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며 짐을 가져간다는 인도스러운 도둑들의 신화스러운 전설과 함께 말이다. 각종 인도여행 까페나 주변 지인들의 조언을 듣고 튼튼한 와이어 두 줄과 자물쇠를 두세 개 사들고 도둑을 당하지 않겠노라는 결연한 마음을 갖고  인도여행에 나섰다.

 드넓은 인도대륙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먼거리는 야간열차나 야간버스를 이용했다. 이는 내 배낭이 노출된 채로 잠이 들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이들은 배낭을 안고 잠이 들기도 하지만 내 몸만으로도 이미 좁은 공간에 내 덩치만큼이나 큰 배낭을 안고 몸을 구겨넣는 것은 비단 배낭의 안보뿐만 아니라 나의 허리와 목의 안보를 위협하는 짓이었으며 양자물리학적로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낮에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내가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안심이 되지도 않았다. 눈뜨고 있어도 코베어 가는 곳이 인도라 들었기에.

 처음 기차를 탈 때의 긴장감을 기억한다. 뭄바이에서 다망이라는 도시까지 네 시간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나는 2등석(인도에는 약 6~7개의 기차 등급이 있으며 등급에 따라 가격차이가 상당하다)에 탔다. 지정석이 있는(물론 입석으로 거의 꽉 차며 나도 입석표였다) 등급 중 가장 저렴한 칸이었는데 저렴한 만큼 타는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도 낮고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것은 도난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내 배낭보다도 폭이 좁은 짐받침대에 내 배낭을 올려놓고 난 두 가지 걱정에 시달렸다. 짐이 떨어지지 않을까. 또 짐이 없어지지 않을까. 기차 안을 가득 채운 (모두 똑같아 보이는)사람들은 모두 나를 주시했고 내 배낭은 너무 튀었다. 너무 좋아보였다. 내가 잠깐 고개를 돌리는 사이에 짐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과도한 긴장감을 느꼈다.

  이러한 긴장감으로는 여행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짐으로부터 멀어져서 내가 좋아하는 문쪽으로 갔다.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싶었다.(인도의 낮은 등급의 기차는 문이 열린채로 달린다) 하지만 여전히 난 짐에서 눈을 떼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거구의 황인종을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말이 하고 싶어졌다. 나는 비행기에서 조금 공부한 힌디어로 인사를 했다. "나마스떼, 압셰 밀까르 바훗 꾸시 후이~!" 그러자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놀라운, 기특한, 신기한, +ㅅ+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말을 걸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에서 본 짤막한 문장들을 몇 개 더 말하니 어떤 사람은 내가 힌디어를 유창하게 하는 줄 알고 블라블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준비한 말은 여기까지라는 표정을 짓고는 어설픈 영어를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내게 호의적으로 대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몇몇 사람들과 얕은 대화를 시작했고 내 긴장과 얼어붙은 태도는 상당히 풀렸다.

 변화의 물결은 놀라웠다. 내 주변에 탄 모든 사람들이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어느 도시에서 타서 어느 도시까지 가는지, 내가 몇 살이며 이름이 무어고 대학교에 다닌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몸을 움직이고자 할 때 먼저 살펴 자리를 비켜주었으며 내가 문가 난간에 안고자 하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배낭에 대한 과도한 긴장을 내려놓고 나는 그제서야 사람들과 밖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우디에서 일하다 오셨다는 아저씨와 나란히 기차 난간에 앉아서 나른한 인도의 들판을 바라보며 망고, 파파야, 바나나, 코코넛 나무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심지어 5루피(150원쯤)씩이나 하는 짜이(인도식 홍차)까지 얻어먹으며 말이다.

 야간열차를 처음 탈 때 난 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에 나쁜 소문도 많이 들었고 잠을 깊게 자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내 자리를 확인하고 배낭을 잘 잠궈서 침대 아래에 넣고 와이어를 꺼내 침대에 잘 묶고 자물쇠로 잠그느라 분주했는데 문득 날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빛을 느꼈다. 문득 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미안하다기보단 쑥쓰럽달까 어색하달까.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미묘한 감정을 말이다. 이 사람들은 짐을 잠그거나 하지 않는데 나는 왜 같은 칸에 누워 가면서 뭘 그렇게 꽁꽁 잠그고 묶을까. 행여 내가 이들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잠재적 도둑으로 보고 있는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바짝 붙어서 한동안 어색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며 앉아있으려니 조금 무안하더라. 그렇다고 방긋방긋 가식적인 웃음을 샤방하게 날려주는 것은도 내키지 않았다. 대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어설픈 힌디어를 구사했다. "나마스떼, 압셰밀까르 바훗 꾸시 후이." 그러자 나를 바라만 보고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까지 가는지. 이름은 무언지. 종교는 무엇인지. 인도에서의 첫 야간열차에서의 나의 대화상대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부부였다. 나 혼자 누워도 비좁은 침대에 부부가 꼭 안고 자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렇다. 비록 서로의 짧은 영어로 신자유주의나 진정한 평화에 대해서 심도있는 토론을 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경계심(특히 나의)을 무너뜨리고 친구라는 기분이 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미미하게나마 우리 사이에는 유대관계가 형성되었고 그것은 서로에게 신뢰를 주었다.

 여행을 거듭하며 나는 여전히 와이어로 배낭을 묶기도 했고 자물쇠로 잠글 때도 있었지만 점점 힌디어가 늘면서, 점점 기차의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풀려나가는 나의 긴장만큼 잠그고 묶는 작업을 줄이게 됐고, 보다 많은 이야기를 주변사람들과 나누려고 했다. 그저 내 가방을 지키기 위해서 힌디어 몇 줄을 읊조렸다기보다는 짧은 이동 중에서도 작은 관계를 형성하고 친구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에게 나는 숱하게 도움과 친절을 받았다. 얻어먹은 공짜 짜이만 해도 여러 잔이고 내가 혹여라도 바가지를 쓸까봐 열 댓명의 사람들이 내가 간식을 살 때 얼마를 내야하는지 알려주기도 했으며, 내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고 내가 자리가 없을 때, 추워할 때 이불을 빌려주거나 자리를 내주기도 했으며, 내가 가려는 도시에 대해 노파심을 갖고 주의사항들을 말해주기도 했고, 내 카메라를 바라보며 기꺼이 그들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힌디어 발음이 좋다고 박수갈채를 받을 때는 슈퍼스타가 된 기분까지 들었다. 그저 스쳐지나갔을 뿐이지만 나는 그들과 잠시나마 친구가 되었다고 믿는다. 나의 사진 속에 나의 수첩 속에 남겨진 사람들, 때로는 이름조차 기억 안나는 짧은 인연이었지만 여전히 가끔씩 그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나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물론 인도여행을 가는 이들에게 인도가 안전한 곳이라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내가 그저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내가 무섭게 생겨서 그들이 훔칠 엄두를 못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 딴에는 긴장을 풀었지만 나름의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히 짐을 잃어버릴 위험은 실질적이고 그에 대한 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 작은 배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주는 편안함이었다. 경계하고 의심하기보다는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잠그고 묶어서 지키기 보다는 그들과 친구가 되어 서로 지켜주었으면 했다. 그것이 나의, 내 배낭의 안보를 지켰고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을 주었다. 물론 힌디어를 사용한 것이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적이 아닌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영어보다도 어설픈 힌디어를 조금이나마 공부해 간 것, 그리고 여행 중에도 조금씩 힌디어를 배우고 사용했던 것은 그러한 내 노력의 작은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 짧은 몇 마디의 힌디어에 반응한 것은 그러한 내 마음을 느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여행하는 내내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한국에서 고작 아르바이트 몇 달을 해서 인도로 갔는데 그들에게 난 부자였다. 내 배낭에는 많은 사람들이 만져보지도 못했을 비싼 것들이 많았다. 내 지갑에는 그들의 몇 달치 월급이 들어있었다. 사실 그것이 내 배낭의 안보를 지켜야만 하는 불편함의 시작이었다. 잃을 것이 많다는 것. 그들은 나로부터 잃을 것이 없었다. 가진 것이 없기에. 그러나 줄 것은 많은. 언제쯤에야 내가 그들과 같이 홀가분한 기분으로 경계심 없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여권이 필요없고, 그들과 내가 가진 것이 비슷한 먼 훗날의 이야기일까. 여전히 난 내가 가진 것을 덜어내려 노력한다. 이것이 내가 그들에게 배운 평화의 비결이었다.  

압셰 밀까르 바훗 바훗 바훗 쿠시 후이~!(만나서 진짜 진짜 진짜 반갑습니다.)
피르 밀렝게~!(또 만나요)

 전쟁없는세상 28호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덧글

  • 지소낭자 2010/07/17 13:27 # 답글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을 것도 많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아직도 혼자 가는 여행은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걸.
    좋은 글이야 ^^
  • 혜정 2010/09/14 09:56 # 삭제 답글

    거구의 황인종이 바훗바훗바훗 하고 있으면 꽤나 귀여웠겠는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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