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연기 by 젊은노인

얼마전에 입영통지서가 왔습니다. 입영일시는 6월 7일. 제 생일이 86년 6월이니 아마도 만 24세가 되는 달에 맞추어 나온 듯 합니다. 말투는 정중하지만 그 내용은 거칩니다. 이 통지서는 군대를 내가 선택해서 가겠다 가지 않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고 당신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잠시 미룰 수 있지만 이유 없이 입영하지 않을 때 받게 되는 처벌을 병역법 제 88조 운운하며 빨간 색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평화를 사랑한다거나 군대가 싫어서, 혹은 군대에 반대해서라는 이유는 포함될 수 없습니다.

 

오늘 문득 미루지 못한다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6월 7일에 입대하거나 아니면 그날에 맞춰서 병역거부를 하거나, 즉 병역법 위반을 하겠다고 통보하는 것 둘중에 하나이겠지요. 둘중에 어느 것 하나도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병역거부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년 이맘때만해도 올해쯤이면 병역거부를 하겠다 생각했는데 왜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요.

 

지난 2주간 서울에서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함께 했습니다. 저번주말엔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고 어제는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댁에 다녀왔습니다. 바쁘고 피곤했지만 제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고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그 관계속에서의 일임을 당연하게도 생각하게 되었죠. 비록 모든 사람이 입영통지서를 받으며 미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하며 막막한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혼자서 사는 것이라면 진작에 병역거부를 했을 겁니다. 마음의 결심은 섰고 필요한건 입영통지서에 기록된 날짜에 간단한 전화 한통입니다.  하지만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가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귀찮은 과정들을 거쳐, 또 힘든 시간을 각오하고도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유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군대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 그리고 평화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병역거부를 결심했다고 해서 이미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저의 결심과 병역거부의 선언 혹은 선택까지의 간극에는 제 가족과 친구와 모든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담겨 있을겁니다. 물론 저의 인생을 관통하는 목표에 대한 대차대조표도 들어갈 것입니다. 결심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군대를 가든 가지 않든 스스로 납득하고 선택하자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입영날짜를 연기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다녀왔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기를 신청했습니다. 동의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시한번 생각해 보길 바라는 거창한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저 자신을 포함해서 저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제가 병역거부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더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에게 입영 연기는 그러한 고민의 의미입니다.

 

5월 10일. 나뭇잎의 푸르름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5월의 태양임을 명백히 알게 해주는 눈부신 태양아래, 귀찮음을 무릅쓰고 여러가지 조치들을 취하며 오가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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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0/05/15 07:37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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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06 19:06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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