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by 젊은노인

류시화의 <지구별여행자> 서문 中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여행 도중에 만나는 기차와 별과 모래 사막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것이 내 생의 황금빛 시절이었다.

매순간을 춤추라.
그것이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생의 방식이었다.
바람을 춤추라, 온 존재로 매 순간을 느끼며 생을 춤추라.
자신이 내딛는 발걸음마다 춤을 추며 신에게로 가라.
학교는 내게 너무 작은 것들을 가르쳤다.
내가 다녀야 할 학교는 세상의 다른 곳에 있었다.
교실을 다른 장소에 있었다.

때로 삶으로부터 벗어나 또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명상이고 수행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 안이 소설책이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은 시집이었다.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책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것은 시간과 풍경으로 인쇄되고, 아름다움과 기쁨과 슬픔같은 것으로 제본된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그 책에 얼굴을 묻고 잠드는 것이 좋았다.

여행중에 나는 진정한 홀로있음을 알았고, 그 홀로있음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배웠다.
내가 언제나 부러워 마지않는 사람은 이제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새벽의 인도 공항에 도착하는 사람이다.
그의 눈이 곧 맞닥뜨리게 될 삶의 파노라마들,
꽃과 태양,
갠지스강과 시체들,
머리에 흰 터번을 두른 만년설의 산들과 신의 문양들,
그런 것들을 나는 미리 알고 가슴 두근거린다.
그는 버스 지붕에 올라 앉아 대륙을 가로지르기도 할 것이고,
기차의 차창 밖으로 물동이를 이고 멀어져가는 인도여인들의 자태에 매혹당하기도 할 것이다.
또한 길위에 떨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매 순간 어디로 갈 것인가 망설여야만 하리라.

여행은 언제나 좋았다.
여행의 길마다에서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니, 그것은 하찮은 자기 연민과는 또다른 것이었다.
나는 늘 나 자신을 향해 쓰러졌지만, 또한 나 자신으로부터 일어나곤 했다.
내 생의 증거는 언제나 여행에 있었다.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잘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곧 여행이었다.
여행중일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일 수가 있었다.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여행 도중에 만나는 버스 지붕과 길과 반짝이는 소금 사막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인도에 갔다, 머릿속에 불이났기에
류시화


(일부분은 내 마음대로 생략했음)

여행중에 바라나시에 짧게 머물렀다.
일행들이 먼저 바라나시에 가서 숙소를 잡았다.
나는 그냥 그 숙소로 갔다.
그 숙소는 우연히도 류시화씨가 항상 머무르는 숙소였다.
류시화를 형이라 부르는 한 사진 찍는 사람을 만났고
책에 등장하는 산제이네 가족들은 여전히 짜이를 만들고, 노를 젓고 살아갔다.
하루는 산제이네 가족의 초대를 받아 놀러갔다.
그들은 나에대한 질문만큼이나 류시화에 대한 질문과 이야기를 했다.
류시화의 목소리를 흉내냈고, 류시화에 대한 추억을 회상했다.
그렇게 난 한번도 본적없는 류시화의 자취와 만났다.

그들은 그가 쓴 책에 자기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며 읽어보라고 했다.
그 책이 <지구별 여행자>였고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제일 먼저 손에 들고 단숨에 읽어냈다.
책을 읽느라 리듬이 무너졌지만, 잠이야 매일 자는것.
나는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류시화의 책에 있는 인도, 아니 내가 본 인도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두달은 짧았다. 나는 초조했다.
이제는 초조하지 않다. 다시 갈 것이기에.
언제 갈 것이냐는 중요치 않다.

여행은 나에게도 책이었다.
여행중 잠시 책을 들었지만 이내 놓았다.
다른 어떠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글자로 되어있는 책보다
사람들과 풍경들과 동물들과 푸른 하늘이 더 재미있었다.
빛나는 햇살과 그 햇살이 닿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mp3를 가져갔었다.
몇번 틀어 들었지만 오래 듣지 못했다.
결국은 한국으로 보내버렸다.
녹음되어있는 소리보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밤새돌아가는 발전기소리,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 내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소리가 더 궁금했다.

사진기는 놓지 못했다.
내가 보는 풍경들, 사람들을 또 보고 싶었다.
그렇다 그것은 집착이었다.
과거와, 추억에 대한 집착을 아직 난 놓지 못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진을 위한 여행이기보다는 여행을 위한 사진이길,
아니 여행을 추억하기 위한 사진을 찍기를 바랐다.

다른 이들의 사진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구도며, 노출이며, 사진기술은 형편없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하다.
나의 또하나의 눈이었기에.
내 시선이 닿았던 모든 것을 난 추억한다.

어디에 있든
난 '그곳'에 있으려 했다.
하지만 난 지금 여기에 있지 못한다.
나의 마음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지구별여행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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