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의 대한민국 이기주의에 실망을 금치 못하며 by 젊은노인

한겨레 신문을 오랜만에 사설까지 읽어보다 실망스러운 사설을 보았다.

바로  <신재생에너지로 ‘원자력 이후 시대’ 대비해야>라는 사설이다.

이번 원전수주건에 대해서 찬양조 일색인 언론에서 한겨레는 유일하게 비판적인 논조를 제기했다. 대부분이 국익과 국가적 자존심으로 환호를 지를때 환경적 측면, 경제적 측면에서 다양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했다. 이 사설 또한 원자력은 친환경적이거나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듯해 보여서 관심이 가는 사설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에는 저열한 자국민이기주이가 담겨있었다.


사설에 따르면 한국이 대규모의 원전을 수주함으로써 원전 기술을 수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한국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 오면서 "국민이 원전의 위험성을 감수한 대가로 건설과 운영의 노하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나라안에 원전을 짓는 것은 필연적으로 국민이 원전의 위험성을 감수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원전은 그 절대적 위험성 때문에 크나큰 우려와 공포를 낫는다. 그것은 비단 원전이 건설된 국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원전에서 체르노빌과 같은 사고가 난다면 일본과 북한, 중국등에도 밀접한 영향을 주는것이다. 우리는의 어린시절 학교에서 우리일도 아닌 체르노빌 원전 사건을 자세히 배운 바 있다. 이는 원자력 사고는 결국 국가를 초월하는 인류적 비극임을 의미한다.

여기까지는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결국 원자력이 인류의 대안이 될 수 없고 앞으로 대체에너지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부분 말이다. 그런데 이 사설은 수출과 국내 건립을 나눠서 생각하자고 한다. "이미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제 원전시장에 뛰어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국내 원전 추가 건립의 명분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땅엔 안되고 남의 땅에는 된다는 전형적인 님비가 아닐 수 없다. 원전을 국가내에 짓는 것 자체가 원전의 위험성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인식한 상태에서 나온 발상이라 더욱 무책임하다. 남이 우리 기술을 갖고 위험을 감수하든 말든 우리는 돈을 벌면 된다는 생각인가.

"우리 자녀들을 원전의 숲속에서 살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쪼개고 쪼개서 내자식만큼은 질나쁜 동네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김규항에 따르자면 우리안의 이명박) 오늘날의 한국의 교육환경을 만든 논리가 아닐까. 그렇다. 주권문제기에 남의 나라에 원전을 건설해라 마라는 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그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면 수출과 국내건립을 나눠서 생각하자는 이기적인 주장은 나오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국민이 원전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확보한 기술력이 아까워서라도 국제원전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생각일지 돌아보자.

내가 좋아하는 한겨레. 어쩌면 한겨레라는 제목 자체가 민족주의적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괴로워한적이 있었고 그것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가 뉴욕의 입장만 고려하는 신문이 아니듯이 그 신문의 제호가 가지는 배타성에 매몰되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한겨레가 추구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만의 이익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중동과 큰 맥락상에서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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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름과 틀림사이 : 2009년 내 이글루 결산 2010-01-01 20:2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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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인 2009/12/30 01:44 # 삭제 답글


    이명박 대통령의 원전수주에 관한 뉴스가 연일 보도가 되고 있는데, 그것의 원전수주의 본질이 진정 우리가 맘놓고 환호할만큼
    안전한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님의 블로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오늘자 한겨레 신문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님의 주장대로 '우리마을에 안되지만 다른마을에는 된다'라는 발상은 다분히 지역이기주의의 발전적 양상을 보이고 있군요.
    사설의 논조에 다소 실망스러운 느낌도 듭니다.

    저도 원자력 발전이 지속가능한 궁극적인 에너지가 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경제성과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태양력 풍력 지력 등이 궁극적인 대체에너지 역할을 해낼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논객들은 원전이 생각하는 만큼 위험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글을 써대고, 또 저쪽에서는 원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추가적인 원전설치를 반대하는 글들 사이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타협점은 찾을 수 없는 건지 고민이 되는 밤입니다.
  • 젊은노인 2010/01/03 20:29 #

    이 글의 논지를 '우리 마을에 안되지만 다른 마을에는 된다'고 거칠게 요약한 것은 저를 통한 왜곡의 과정이 있을 수 있기에 링크된 사설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국가단위로 나누는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경향이 있어서요.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해서, 타협점은 찾을 수 없다고 해서 고민을 포기하시지 않기 바랍니다. 식상한 말이지만 불가능에 대한 지향으로 인류는 전진해오지 않았을까요. 원전이 생각하는 만큼 위험하지 않음도 일면 맞는 부분이 있고 원전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측도 맞는 부분이 있을테지요. 문제는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균형이겠죠. 모두가 원전에 대한 찬양을 할때 원전이 위험성을 갖고 있음을, 또한 원전수주가 다른 문제들과 엮일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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