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시공간의 왜곡 by 젊은노인

가만히 누워/앉아 책을 보면 내 머릿속에서 세상이 바뀐다. 나의 가슴이 세상을 향해 뛰고, 또 심장의 고동이 내면의 깊숙한 곳을 울린다. 눈을 감고 뜨는 그 사소한 동작 사이에서도 순간순간 내가 보는 세상은 바뀐다. 좋은 책을 읽고 내 생각이 넓혀지고, 바뀌고, 다듬어지고, 풍부해지면 내가 느끼고 사고하고 바라보는 세상은 책을 읽기전과 다르다. 전혀 다르다. 그것은 왜곡하는 작업인가? 바로잡는 작업인가. 세상이란 것이 정해진 실체가 없다면 왜곡과 바로잡음은 굳이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작업이다. 내 안과 밖의 세상을 말이다. 그렇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마음을 바꾸는 것에 다름없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철수와 영희, 2007)을 요즘 읽고 있는데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에 와 닿는다. 물론 그 닿음이 어느정도인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어디까지인지는 아직 모호하지만.

병역거부자의 부모님이 쓴 편지를 보며 나의 부모는 어떨까 생각한다. 나이가 들며 나는 종종,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곤, 또 상상하곤 한다. 또 내가 어린시절 학교에 가있을때, 묵묵히 집에서 나를 기다리며 집안일을 하셨을 어머니의 모습을, 내가 본적 없지만 떠올리곤 한다. 나는 스스로 감성적으로 메마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문득 문득 생각나는 부모님의 묵묵한 모습은 날 슬프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펑펑 울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수업중에 교무실로 호출을 받았을때 나보다도 먼저 부모님이 와 계셨다. 그리고 담임선생님 입에서 떨어진 청천벽력. 성민이 전학가야겠습니다. 이 호출 앞뒤를 둘러싼 일련의 흐름들은 나에게도 급작스럽고 당황스러웠지만 직장에서 일하다가, 집에서 평화롭게 계시다가 전화받고 달려온 부모님들이야 오죽하랴. 담임의 그 말에, 부모의 당황한 낯빛에, 나는 펑펑 울었다.

나의 앞길은 과연 다를까? 나는 여전히 부모의 처진 어깨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크게만 보였던 부모의 작아짐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을 또 다시 울릴것이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날 떠올리며 한숨짓게 만들겠지. 우리 어머니도 수 많은 한숨이 쉬어졌을 법원 앞뜰을 거닐고, 우리 아버지도 구치소 앞 벤치에 앉아 곱게 다려진 정장바지를 입은 다리를 모아 누추하게 샌드위치를 드시겠지. 거기에 문득, 쓸쓸한 바람 한줄기 스치겠지. 나의 할머니는 또 어떠할까? 70이 넘은 할머니에게, 내가 감옥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의 말로, 그것은 가능한가?

잠이 오지 않아 슬프다고, 나를 위로한다. 감옥에서의 잠은 어떠할까. 또 그 슬픔은 어떠할까. 아직 그 막연함이 어떤 실상으로 와닿지 않는다. 꿈꾸는 듯 하다. 과연 나는 이 새벽에 깨어있는가?

새삼, 나 스스로와, 내가 믿는 하나님과, 또 나를 낳고 기른 가족과, 내가 의지하고 아끼는, 또 나를 아껴주는 벗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젊은 날의 결심이 가지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도,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진다.


이제, 오지 않는 잠을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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