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 존 스토트 by 젊은노인

오직 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 존 스토트

 

 

김대조
서울신학대학원, 영국 아버딘대학교를 거쳐 런던 바이블 칼리지에서 학위(Ph.D)를 마쳤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설교학을 강의하며, 사랑의교회를 섬기고 있다.

 


목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시대를 불문하고 반드시 확인하고 날마다 되물어야 할 중요한 물음입니다.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목사님은 이 물음에 대해“목회는 양떼를 돌보는 일”이며 또 그것이“개인의 목적을 위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패와 금권, 타락한 정치, 세대간 계층간 이념간의 갈등, 자기중심의 가치관, 극도의 개인주의가 팽배한 지금, 교회의 본질과 목회의 본질조차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목회자의 삶과 사역의 모습 속에도 때로 시대를 반영하는 혼돈과 갈등의 슬픈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현장인 목회, 결코 평신도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현장에 있는 목회자로서, 이러한 시대를 극복할 뿐 아니라 이 시대를 끌어안고 복음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그 대안은 무엇일까, 수없이 고민하면서 발견한 한 줄기 희망의 빛은 바로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좋은 목회자의 삶과 평신도 사역의 모델을 찾고 본받는 일입니다.


이제 열두 번에 걸쳐 그 모델 중 한 분이신, 이 시대의 리더로서 제 인생의 소중한 멘토 중 한 분이신, 평신도 같은 목사, 평신도를 사랑한 존스토트(John Stott) 목사님의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삶과 사랑을 담아내려고 합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80여 평생을 오직 한 길을 걸어오게 했는지, 오직 한 길을 걸어가는 스토트 목사님의 삶에 담긴 귀한 보물들의 일부분만이라도 캐내어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함께 그 발자취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오직 한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최근에 서점엘 들렀습니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제목과 낯익은 스토트 목사님의 얼굴 몇 컷의 사진으로 표지를 한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이미 쓰신 책을 수정해서 다른 제목으로 내셨나 보다’했으나,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2004년도 4월에 초판을 찍은“이것은 저의 이야기입니다”(This is my story)라는 부제가 달린 책으로서, 한평생 그로 하여금 오직 한 길을 걷게 했던 그의 인생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자신의 관계를 소박하게 그러나 복음에 대해 명쾌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벌써 84세의 고령임에도 여전히 이렇게 귀한 책들을 펴내실 수 있는 그 열정과 노력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분명히 밝혀두건대, 이 글은 스토트 목사님에 대한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필자가 영국에서 공부하며 목회를 하던 만 8년 동안 고민하며 찾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맡겨진 양들을 사랑하고 양육하며 오직 한 길을 걸어가고 계시는 영적 스승, 좋은 목회자요 학자, 마음 깊이 좋은 모델로 품고 연구하고 배우며, 만나고 대화하면서 경험한 스토트 목사님의 있는 그대로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스토트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10년 전이었습니다. 좋은 목회자, 좋은 설교자의 꿈을 가슴에 품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때입니다. 영국에 도착하자 늘 저의 마음속에 품고 책으로만 읽고 느끼던 스토트 목사님을 뵙기 위해 런던 중심의 옥스퍼드 거리에 있는 올 소울스 교회를 찾았습니다. 교회 안을 들어서자 따뜻한 분위기 속에, 강대상 뒤쪽 벽에는 십자가 대신 손에 쇠고랑을 차고 가시 면류관을 쓴 채 자색옷을 입고 계신 예수님, 그리고 제사장들과 군인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손가락질하고 있는 성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에 맞추어 찬양을 부르며 잔잔하면서도 힘있는 스토트 목사님의 첫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온화한 표정의 스토트 목사님은 문앞에 서서 일일이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를 보시더니만“Are you Korean?”하고 웃으시며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말하자“brother! 나는 한국을 잘 압니다”하며 허리를 숙여 한국식 인사로 반기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시작된 스토트 목사님과의 만남, 댁을 방문하고 교제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참으로 값진 인생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스토트 목사님을 뵈면서 제 마음에 새겨진 부분은 그분의 성경에 대한 학자적 예리함과 집중력,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토대로 한 뜨거운 복음에의 열정으로 균형 잡힌 삶입니다. 스토트 목사님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영국의 탁월한 복음주의자요 설교자로, 40여 권이 넘는 저서로 수많은 목회자, 신학자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쳐온 학자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1945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올 소울스 교회에서 5년간의 부목사와 25년의 담임목사, 은퇴 후 현재까지 30여 년 동안 명예담임목사로, 한 평생 한 교회를 그리스도 십자가의 비밀을 전하는 목자로 겸손하게 섬기며 살아가고 계신분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스토트 목사님의 서재에 들어갔을 때 그의 부모님과 가족사진이 책상머리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영향을 받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스토트 목사님은, 아버지가 다녔던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유명한 사립학교로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원칙을 가르치며, 신사다운 행동과 지적 능력을 추구하는 것을 이념으로 삼고 있는 럭비(Rugby School)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럭비축구를 처음 만든 학교) .


그의 아버지 아놀드 윔블레이 스토트는 캠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심장 전문의사로서 왕실주치의로서도 활동한 후에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은 유능한 의사였습니다. 의사로서의 박애정신과 과학적인 방법론과 분석적인 생각을 가진 분이었는데, 교회는 일년에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한 번씩 참석하는 정도의 신자였습니다. 스토트목사님의 자서전을 쓴 더들리 스미스 (Timothy Dudley-Smith)는 스토트의 아버지 아놀드 경을“지적인 위치는 과학적인 세속주의의 그것이었지만 그는 세속주의자라기보다는 박애주의자”였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사람들의 복지에 깊은 관심과 헌신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릴리라고 불리는 어머니는 헌신된 그리스도인 부모 아래서 루터교의 배경을 가지고 자란 분으로 깊은 영성을 소유한 경건한 부인이었습니다. 릴리는 독일어, 불어에 능통했기에 스토트를 영국 시민으로서뿐 아니라 세계의 한 시민으로서 국제적인 안목을 가지고 양육하셨습니다. 이렇게 스토트 목사님은 어머니로부터는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초교파적인 열린 사고들, 언어적인 감각과 국제적인 감각을, 아버지로부터는 지적인 예리한 분석력, 사회정의에 대한 감각과 사회적인 양심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 아놀드와 어머니 릴리 부인은 스토트 목사님이 이 시대를 정확히 진단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올바른 이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깊은 영성에 뿌리내린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오직 한 길을 걸어가는 그의 인생의 토대였습니다.

http://lw.kehc.org/files/200501/htm/614301.htm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