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에 대해서 -다름과 틀림 by 젊은노인

로마서 14장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1-3)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12)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13-14)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21-23)




내가 술을 먹지 않는 것은 술을 마시는 것이 나 스스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시는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다고 바울은 말한다.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한다. 이는 술을 먹고 안먹고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듯하다. 문제는 나는 이미 술을 마시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술에 대해 "의심"하며 따라서 나의 이 믿음을 따라 하지 않는 것은 죄이다. 다른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비춰 나의 행동을 결정할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비추어봐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내면의 믿음은 '양심'이라고 표현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 나는 나의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대로 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해오던 의문, 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행동과 생각이 다양할까에 대한 답구절일 것이다. 언제나 말하지 않았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논쟁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나의 내면의 소리에 더 귀기울여야 할것이다.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는 것이다.



확장하자면 내가 스스로 결심한 것들,- 술, 담배, 과외, 주식, 투기, - 그리고 또한 고민하는 것들, - 군대, 채식, 결혼 - 등에 대해서도 나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나의 스스로의 믿음, 즉 양심에 비추어봐야 할것이다. 물론 난 이 '스스로'에 공부, 대화, 토론, 고민, 표현 등이 담겨있다고 본다. 인간은 결코 문자그대로인 '스스로'존재 할 수 없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시지 않았는가 말이다. 주의 뜻대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당연하게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가능은 포기라는 단어의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 믿음이 약한자는 저의 음식을 먹음에 가림이 있어야 한다. 나 스스로 이러한 '강한'결심들을 하는 이유는 나의 약함을 내어놓고 하나님께 그 부분을 맡기는 것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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