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도 조두순이 있다. by 젊은노인

내 안에도 조두순이 있다.

 한 어린아이를 성폭행하여 평생을 심각한 장애와 정신적 경제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만든 조두순이라는 사람이 요즘 장안의 화제다.  이른바 '나영이 사건'인데 '냄비근성'으로 유명한 한국 여론일지라도 이토록 달궈진 냄비는 참으로 오랜만인듯 하다. 그만큼 대중의 분노는 언론과 정치권의 기름부음과 더불어 그 어느때보다도 뜨겁다.

 감정적인, 배설적인 몇몇 의견들을 제외하면(그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쓰려는 글은 이성적이려고 노력하는 글이기에 소재로 삼지 않으려는 것 뿐이다) 대체로 비슷한 결론으로 수렴한다. 성범죄는 매우 흉악한 범죄이며 현행 처벌은 가볍다. 또 성범죄는 재범율이 높기에 화학적 거세(성호르몬을 조절하여 성욕을 없애는 것)나 전자발찌, 신상공개등으로 관리해야 한다. 혹은 사회로부터 더 길게, 심한 경우에는 영원히 격리해야 하다는 것이다. 모든 범죄를 개인의 책임으로 본다면 당연한 귀결이다. 되돌릴 수 없는 범죄에다가 앞으로 개선 될 여지가 없으므로 격리하는 것이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한 개인이 그가 속한 환경과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나의 고민은 시작된다.


개인이 그 환경과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범죄에는 개인의 책임과 사회적 결과라는 두가지 양극단의 시각이 존재하며 대체로 그 사이의 한 지점에 우리의 시각은 서있다. 어느쪽에 더 가까운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법에서는 우선은 개인의 책임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고의, 미필적 고의, 인식에 의한 과실, 과실등으로 책임의 정도를 나누며 피의자의 정신적,물리적 상태에 따라 책임의 정도 또한 구분된다. 하지만 그 완고한 법에도 사회적 책임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사회적 조건을 고려하는 것이다. 모든 개인들도 대부분 절충적 입장을 취하게 마련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구성하는 사회는 한 개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책임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 때문에 때로는 더 큰 분노와 증오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전후 독일에서 나타난 것 처럼 다수에 의해서 저질러진 잘못이 소수 특정인들에게 그 책임이 지워지고 거기에 동참했거나 묵인했던 사람들이 그 책임에 대한 비난에 가세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려는 현상같은 경우가 그렇다. 자신의 지분을 숨기고 부인하며 남에게 떠넘기는 행위이다. 하지만 적어도 개인의 완벽한 책임을 100% 주장하는 사람이 공론의 장에서 자기 의견을 표출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극단적인 식민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경우가 그런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많은 개인들의 행위의 원인을 모두 사회로만 돌릴 수도 없다. 엄연히 존재하는 범죄와 무질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개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되 그것이 사회적 합의에 따른 최소한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실제 재판에 임하는 판사나 검사들이 어떤 자세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인간은 인류가 진보하고 그 법체계를 발전시켜올 수록 또 범죄를 예방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정도가 확장돼 올수록 역사의 큰 흐름에서 그 처벌을 끊임없이 줄이려 노력해왔다. 최소한의 필요한 응징과 처벌을 하되 그들의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고 그들에게 결여된 사회성이나 공감능력을 키워주려는 노력, 다시말해서 그들이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교도'하는 것이 병행된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책임과 사회적 결과라는 양극 사이에서 범죄를 바라본다


개인의 책임과 사회적 책임 그 중간에서 '나영이 사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또 성범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솔직히 말해서 내 안에도 어느 정도의 조두순이 있다. 나에게도 성욕이 있으며 폭력성이 있으며 욕심이 있으며 때때로 나의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게 되는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또한 다른 사람의 고통과 상처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또한 일부 사람들에게 이유있는 혹은 이유없는 거부감과 적개심을 느낄 때도 있다. 어렸을 적에는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여자라는 집단을 대할때 어려움을 느낀다. '사회성'이라 일컫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능력과 둥글둥글한 성격도 나는 갖고 있지 못하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일종의 정신병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그것이 현행법이 금지하는 선을 넘지는 않았을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 또한 대부분 그렇다고 '추측'하고 있지만 그것을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기대할 뿐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나에게도 혹은 우리에게도 부분적인 조두순이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의 '조두순'을 갖고 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왜 조두순이 되지 않았는가? 왜 나는 나의 충동을 억제할 수 있으며 허용가능한 선에서 그것을 표출하는가. 또한 사회성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나는 비교적 (사회성을 기르기에) 좋은  환경에서 자라났다. 부모와 형제가 함께 살았으며 친척들과 이웃들과 교류하며 비교적 평탄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오기까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마쳤다. 정규교육과정을 거치는 동안, 또 다섯번의 이사를 거치며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좋든 싫든 대화하고 사회적 교류를 형성하며 성장해왔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최저선과 권장되는 윤리 규범을 나는 직접/간접적으로 끊임없이 접하며 자라왔으며 자연스레 그 선을 체화했다. 또한 여러 부분들에 있어서 그 선을 넘나들며 상/벌을 적합하게 받아왔다. 또한 나의 사회성 부족을 자/타에 의해서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나와 처지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 문학작품이나 위인전기 등을 읽었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토론했다. 인권에 대한 공부와 활동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부족한 감성적 상상력을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체험해보려 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부족한 여성 부분에 대해서 이해해 보기 위해서 여권에 대한 독서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나는 사회성을 기르기에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자라왔다. 그렇다면 조두순은 어떠할까?

사실 나는 조두순의 개인사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성장과정, 삶의 과정에서 그의 사회성에 문제를 갖고 온 어떠한 결핍이나 상처,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성선설/성악설을 믿지 않는다. 루소가 말한 것처럼 나는 태초의 사람은 선악개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갖게 되는 특질들은 개인적 경험과 여러 사회적/환경적 변수로 인한 사회화의 총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나지 못했거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성적인 스트레스 혹은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이거나 병이 있었을 수 있다. 그 밖의 어떤 이유든 나는 그의 책임이 온전히 그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두순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고 살아왔다


우리는 성범죄자의 재범율을 논할때 그 사람이 다시 저지를 범죄만을 생각한다. 특히 30%가 넘는 유아성폭행 재범율을 보면 그 수치를 완전히 신뢰할 순 없지만 적어도 한두번 유아성폭행을 저지른 사람이 다시 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수치가 있다. 유아성폭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신의 유년기에 성폭행/성추행등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의 성적인 트라우마가 성가치관을 훼손한 것이다. 우리는 그의 가해 이전의 피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저 외면하기에는 가해자 또한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이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상식과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어려서 부모에게 폭력을 많이 당한 사람이 자신이 부모가 되서 자식에게 폭력을 가하기 쉽다는 일종의 상식이 그러하다. 엄하게 자란 자식은 또 그의 자식을 엄하게 키우게 마련이며 어려서 애정결핍을 심하게 겪은 사람들이 다른사람들에 대한 벽을 높이 세우고 자신의 세계에 갇히는 것,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주변사람에게 애정결핍을 주게 되는 것도 하나의 상식이다. 이러한 상식들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보면 유년기에 성폭행을 당하고(아마도 아무런 도움도 보상도 받지 못했으리라) 성가치관이 훼손된 사람들이 유아에게 성폭행충동을 가지는 것은 이해하고 공감할 순 없을지라도 그리 놀랄만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유아성범죄 가해자들은 또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모든 가해자를 봐주자는 것이냐'라고 당연히 나올 반문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대답했다. 우리는 엄연히 존재하는 범죄에 대해서 대응해야 하며 개인책임과 사회적 책임의 타협선상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조건 가해자를 응징하는 데에만 관심을 둘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그를 다시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 복귀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은 결코 우리의 선심이나 동정이 아닌 우리의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한국에서 운영되는 수감시설의 명칭도 그에 부합하여 '교도소'가 아닌가. 이 교도소(矯 바로잡을 교, 導 인도할 도)라는 곳은 원래는 처벌로서의 행형을 집행하는 형무소라는 명칭을 갖고 있었으나 1961년이라는 먼 옛날에 '교정주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가해자를 바로잡고 인도하자는 뜻에서 교도소라는 명칭으로 바꿔달게 된 것이다. 물론 그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의 사생활을 침해하며 사회의 일반적인 법 규범을 교육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인권을 완벽히 보호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생명을 뺏거나 고문을 가하는 등의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인권침해는 하지 않기로 우리는 대부분 합의했다.(사형제가 아직 제도상으로 존재하고 사형수도 있으나 이미 11년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한국은 실질적 사형폐지국가이며 세계적으로도 고문과 사형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합의되고 절충된 제한적인 인권침해를 통해 그를 교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격리하고 가두는 것으로 가해자는 교도될 수 있는가? 가둬두고 격리하는 곳을 우리가 교도소라 명칭한다면 그것은 거짓 이름이며 자기기만이다.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우리는 그를 처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를 교도해야 한다.

조두순은 지금 악명높은 청송교도소의 독방에 갇혀있다고 한다. 그가 그 차가운 방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을 것인가? 자신의 훼손됐던, 결핍됐던 사회성과 성가치관에 대해서 돌아보고 어떠한 각성을 하고 깨달음을 얻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자연스레 돌아올 것인가? 그의 형기는 12년인데 그 시간동안 그러한 깨달음은 과연 올것인가? 그 기간이 더 길다면 그런 깨달음이 올 확률이 높아지는가? 당신이 만약 이러한 질문들에 '그럴것이다' 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감히 당신을 이상주의자라 부르겠다. 오히려 지금 조두순은 그를 그렇게 격리시킨 사회에 대하여 증오하고 적개심을 가지며 자신을 고발하고 처벌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쉽게 반성하고 뉘우친다면 애초에 그런 일을 저지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는 그의 사회성과 성가치관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찌됐든 그는 12년이면 69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다시 사회로 돌아온다. 그를 교화시키는 것은 그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 그와 더불어 살아갈 우리를 위해서이기도 한것이다.


범죄자를 진정 교도하려는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성범죄, 특히 유아성범죄의 경우 그 치료가 매우 어렵다고들 한다. 우리는 때론 우리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가족들과도 심각한 가치관 대립을 겪으며 끊임없이 갈등을 겪는데 하물며 나이먹은 성인의 가치관을 바꾸고 그의 정신병을 치료하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하지만 어렵더라도 그것에 도전하고 우리는 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치료가 어렵다는 말에도 사실 난 의문이 든다. 우리(세계적의미에서의)는 다른 인종이라고 우리의 모든 것을 걸고 서로를 살상한지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았다. 또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정복하고 학살하는것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우리가 정신병을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격리의 대상이요 사형의 대상으로 삼은것도 그리 먼 일만은 아니다. 심지어 우리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불에 태워 특정 인물들을 죽이기도 했고,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이유들로 우리는 가까운 과거에 또는 여전히 그들을 교화시키기 보다는 격리하고 죽이려고 했/하는데 성범죄라는 누가 봐도 나쁜 짓은 과연 어떠한가. 성범죄자를 치료하고 교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도 인류역사에서 획기적이며 신선한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단지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개인의 성적취향에 대해서도 '정상'이라는 폭력적인 기준의 잣대로 타자를 벌하지 않았던가.

즉, 우리가 성범죄를 교화의 대상으로 치료의 대상으로 여긴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그것이 어렵다고 포기할 것인가? 우리가 그것을 위해 얼마나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왔는지 되물어야 한다. 물론 비극적인 결론으로 설사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없을지라 하더라도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된다. 범죄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순간 우리에게서 그들을 영원히 격리하고 죽여 없애는 선택지는 사라진다.

한국만 해도 그렇다. 나는 감옥에 간적은 없지만 감옥의 처지가 얼마나 열악한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교화시키려고 적극적으로/진정으로 노력한지 얼마나 되었는가? 지금은 과연 얼마나 진지한가? 그들을 단죄해야 할 대상, 응징해야할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시도조차도 안해보고 그들을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단정하고 확률에 의거하여 그들을 제한하고 억압할 권리가 우리에게 과연 있을까? 우선은 우리의 '교도'의지와 환경을 점검해보는 것이 급선무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개인사와 정신상태를 분석하고 함께 연구하며 그들의 사회성을 이끌어 내고 교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도 폭력의 일종이다. 하지만 비교적 '완화된' 폭력이며 어느정도의 '합의'되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정말 여성들과 더불어, 또한 어린이들과 더불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그들이 단지 성적 배설의 대상이거나 성욕의 해결창구가 아니라 비슷한 감정과 고통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여러가지 운동이나 창작, 여가 활동등을 통해 그러한 욕구들을 다른 경로로 배설하고 해소 하는 법도 가르쳐 줘야 한다.(혹자는 감옥이 무슨 파라다이스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동의 자유와 사생활의 자유 또 자유로운 인간관계의 자유가 없는 상태에서 이정도의 삶의 수준은 유지되어야 하며 만약 바깥 사회가 이러한 '최소한의' 삶의 수준에서 더 열악하다면 그것은 분명한 문제다. 즉 우리는 누구나가 대화하고 소통해서 사회적 교류를 하며 운동/여가/창작의 여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무절제한 욕구들을 조절해가며 진정 여성과 아이에 대한 감정을 공유하고 그 감정을 기반하여 그들의 성적가치관을 형성해 나간다면 그것이 전자 발찌나 신상공개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재범을 예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의해 우리는 또 한명의 나영이를 구할 수 있으며 사회에서 낙오됐던 또 한사람도 구할 수 있다. 



성범죄자를 교화하는 것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며, 포기해서도 안된다


위에서 얘기했던 것이 뜬구름 잡는 소리일 수도 있고 너무 먼 이상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엄연히 사회적으로 합의된 수준에서의 법과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의 절충이라는 범주내에서 얘기했으며 교도소라는  '우리 스스로가'붙인 명칭에 대한 정명을 요구했다. 이것은 아주 무리한 요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이에 대해 진지한가'에 대해서 돌아보고 조금 더 생각해보고 얘기해보자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인간 의식이 고양되고 기술이 발전되어 이러한 흉악 범죄들이 완벽히 예방되고 또 교화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조두순을 최대한으로 발현하지 않고 저마다의 다름을 평화롭게 드러내고 또 공존할때 우리 사회는 보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사회가 올것이라 확신한다. 그러한 상태를 지향하고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진심으로 수많은 나영이들을, 또 우리들을 위함이란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덧글

  • 그리고 2009/10/08 08:36 # 삭제 답글

    재범을 막는 게 중요하고 그 방법 또한 지혜롭게 선택해야 한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늘어놓으신 여러 근거에 따라) 사회성과 정상적인 성가치관과 행동규범 등을 범죄자가 되기 전에 심어주기 위한 노력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범죄자의 비뚤어진 성의식'만을 문제삼을 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만연해있는 왜곡된 성의식부터 바로잡아야겠지요. 지나칠 정도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대중 문화에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남성들은 일상적으로 강간, 폭행을 담은 영상물 또는 창작물들을 접하고 살면서, '정상인이라면 이 모든 게 허구라는 걸 알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라고들 믿더군요. 정상인(?)들만이 그런 것들에 접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걸름장치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사건 발생 이전으로, 우리 사회 전체로 시점을 옮겨서 봐야 근본적인 대책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젊은노인 2009/10/08 09:44 # 답글

    공감하는 바입니다. 제가 딴데서 죄인에 대한 형량에 대해서, 또 기본적으로 그 처벌이 개인에 책임을 묻는 징벌이냐 아니면 죄인의 교화를 위한 불가피한 격리냐에 대해서 토론하다가 그러한 맥락에서 글을 적어서 그쪽 방향으로 치우쳤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어떤 개인이 범죄자가 되기전에 사회 전체의 왜곡된 성의식/성문화를 바로잡는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에서 쓴대로라면 우리 모두 갖고 있는 조두순을 조금씩 줄여나간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범죄자에 대한 처벌 혹은 교화방식의 변화도 이러한 왜곡된 문화를 바꿔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성범죄자들이 여성과, 유아와 또 사회와 소통하면서 어떤방식으로라도 서로 영향을 끼치고 우리 사회 전체의 증오나 충동의 표현방식에 대해서 성찰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크고작은 사고를 치면서 우리의 단점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처럼사회에서도 이러한 범죄들의 발생을 치유하며 사회 전체의 치유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걸로 충분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요. 전체 사회적인 시점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보다 넓은 범위에서 고민해야 하겠죠. 댓글 감사드립니다.
  • 연이 2009/10/08 10:15 # 삭제 답글

    글쎄요... 전 성선설과 성악설을 믿는 쪽인데요
    정말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는데도 악인으로 성장한 경우가 적지 않죠.
    우리는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을 보면 틀림없이 그들에겐 무언가 아픈 상처나 어려운 환경이 있었을꺼라
    예상하지만 그런 예상이 어긋나는 경우가 수도없이 많습니다.
    저도 상담을 하면서 성에 관해서 아주 개방적이면서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학생을 본적이 있는데요.
    유치원 교사인 어머니와 은행원 아버지 밑에서 정말이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였습니다.
    공부도 곧잘 했구요. 그런데 어쩐지 성적인 부분만큼은 본인 스스로 제어가 잘 되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싸이코패쓰들은 보통의 인간들처럼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은 뇌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들 하죠.
    연쇄살인마 제프리다머에 대해서 들어본적이 있는지요?
    그는 비록 입양가정에서 자라긴 했지만 그의 부모님은 아주 평범한 소시민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타고난 살인마라 부르죠.
    키워진 살인마도 있을테지만 분명 천성이 악한 인간도 있습니다.
    절대로 교화될수 없는 인간들이죠.
  • 젊은노인 2009/10/08 11:21 #

    성악설이냐 성선설이냐에 대해서 제 주장을 강요하고픈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인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남들에게는 별 일 아닌 것이 정말 저에게는 엄청난 임팩트를 가지고 두고두고 기억되는 선연한 단편들이 저에게는 너무도 많거든요.

    제가 보기에 저 또학 악합니다. 선한 부분도 있지만요. 그래서 끊임없이 덜어내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다른 살인마이나 흉악범죄자들의 기사를 읽으며 분노하지만 한편으로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죄있는자를 벌하지 않아야한다고 주장할 순 없겠지만 '누구든지 죄있는 자 돌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한켠에 항상 새기려합니다. 저 또한 사람을 판단하고 나름의 호불호를 갖고 선입견을 갖게 되지만 제가 이해할 수 있고 따져볼 수 있는 폭이 너무나도 좁기에 항상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확정짓는것을 경계하려 합니다.
  • 참 논리 없다 2009/10/12 20:51 # 삭제 답글

    똑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나면서도 범죄자로 성장하는 인간들의 숫자는 소수이고, 그 중 마음 독하게 먹고 자수성가해서 잘먹고 잘사는 인간도 있는데, 그저 있어 보이려는 글로 밖에 안보이네요. 이런 걸 보고 관심이 부족하다고 하죠. 님 가만히 보니 사이트에 자신의 사진이 올라와있네요.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강하신 것 같네요. 이런 사람들 특징은 자신이 우월하고 특별하며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고집이 강하고 독선적이라는 특징이 있지요.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도달하지 못하면 관심을 호소하며 주위로부터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소 카운셀링이 필요하신 것 같네요.

    사람들이 님 같은 생각은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이 분노해야할 상황이 있고 분노하지 않아야 할 상황이 있습니다.

    아무리 환경에 좌우된다고는 하나 재범을 밥먹듯이 해온 이에게 감화나 어떠한 치료나 인정을 해주길 바란다면 그건 선의 탈을 쓴 위선이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님글을 보면 단 한가지 밖에 생각이 안납니다.

    님 마음 속에 강호순과 조두순이 있으니까.

    이럴때 필요한 말이.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나온 말이지요.

    "너나 잘하세요."
  • 젊은노인 2009/10/13 13:46 #

    네, 뭐 있어보이려고 쓴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진짜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환경속에서 자라날까요? 단 한사람도 똑같은 환경속에서 자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티끌하나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태어날때의 조건도 다르겠죠.

    관심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더욱 관심가지려고 합니다. 자존감, 강합니다. 그 자존감에 괴로워하고 또 그 자존감에 부응하려고 또 한편으로는 한없이 낮추려 노력합니다.


    네, 저나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요즘 주로 하는 말을 콕콕 찔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남겨주셨다면 더 좋았을텐데요. 아쉽군요.
  • No. 2009/11/22 14:35 # 삭제

    맞아요. 동의합니다. 뭐.. 이건뭐 옹호하는것 처럼 느껴지네.
    조두순은.. 사회고 뭐고 필요없어요. 그런것들 봐주다가 오히려 발등찍힘. 그런 놈들, 범죄자놈들은 이미 생각하는 구조 자체가 일반사람들하고 다름.
  • 고묘정 2009/10/13 23:33 # 삭제 답글

    님말데로 모든사람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기의 아픔 상처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것은 응석에 불과하지요.
    세상엔 나쁜사람보다 좋은사람들이 더 많이 존재합니다.
    자란 환경을 탓하는것은 자신의 잘못된행동에 대한 억지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동에 지나지않습니다.
    우리들은 하루하루 끊임없이 변할수있는 기회,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단지 자신의 환경만 탓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이들이있습니다.
    이번사건의 조두순씨도 그런 사람들중 한명이라고 생각되네요.
  • No. 2009/11/22 14:38 # 삭제

    환경탓하면서 두순이처럼 행동하면 ㅇㅇ ^^
    환경탓하면서 제멋대로 행동하면 ㅇㅇㅎㅎ
  • 젊은노인 2009/10/15 11:43 # 답글

    응석이라뇨......................................
  • 아르 2009/11/23 14:30 # 답글

    이 블로그는 익명 덧글이 왜 이리 많은 것일까.
  • 2010/07/08 02:0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 2010/11/17 22:32 # 삭제 답글


    그럼 조두순이나 유영철 처럼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아니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뭐가되는건지?

    이런 글은 어렵고힘들고 아픈환경속에서도 극복하고 열심히해서 잘사는사람들에 대한 모욕이지요

    생각없이 쓴글같네요




  • 구디 2013/10/10 03:04 # 삭제 답글

    모든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세상에는 사이코패스도 존재하고, 이미 교화가 불가능한 악인들, 정신병자들이 존재합니다. 해외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영원히 격리 수감하죠.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은 정신병원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감옥에 말입니다. 사회는 개인적 차원만 볼 수 없습니다. 잠재적 피해자들의 희생과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한 격리도 필요한 겁니다.

    불운한 환경 탓에 비뚤어지는 사람들이 안타깝고, 사회가 미연에 그러한 환경을 방지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전체적 요지에는 동감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회가 모든 이들의 유년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는 없죠. 교도에는 징벌적 의미와 선도의 의미가 함께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징벌의 위협은 선도의 의미 만큼 효과를 갖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조두순 같은 욕망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실제로 행위하는 것과 생각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어차피 커서 남자 성기를 볼텐데, 뭐 미리 보면 어때'라고 말하는 악질 성범죄자를 일반인의 관점에서 해석하신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이미 괴물이 되었고, 그들 모두에게 교화작용이 통할 확률은 지극히 낮습니다.
  • 새벽감성 2014/11/30 13:36 # 삭제 답글

    전 엄격한 결정론주의자로써 글에 공감하는 바입니다. 싸이코패스로 태어나서 제대로된 교육을 못받고 자란 사람이라면 의지에 상관없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겠죠. 가해자 역시 불쌍한 사람이라는 거 동의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의 많은 부분은 운이 차지합니다. 예를들어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도, 내 의도에 상관없는 교통사고를 당할 리스크 를 안고 다닌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중에서 아무 죄없이 당하는 사람이 있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 있듯이요.
    이것 말고도 가장 중요한 운은 선천적인 유전자부분과, 태어날 때 결정되는 부모님 역시 운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운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논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좋지않은 운을 타고 태어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수없습니다. 가해자때문에 피해자가 이미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피해자의 인권 역시 존중받아야 하므로, 조두순의 경우에는 거의 무기징역을 해야합니다. 그에 더해 일반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격리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예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돈이 전부이고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우리나라가 바뀌어야할 때가 다가오고있다고 생각하며, 참된 교육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ㅋ53535 2017/11/09 14:55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어요. 상당히 날카로운 화두네요.
    특히 우리 모두 일부분은 조두순이다. 라는 문장은 상당히 자극적이고 상징적이네요. (물론 전 생각이 다르지만 지향점은 같다고 봐요)

    글쓴이의 논리적 의견 개진에 많이 공감하고 유대합니다.
    오랜만에 철학적 깊이 있는 생각을 가진 분의 글을 읽게되어 반갑고 흥미로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이정우 2017/11/26 15:42 # 삭제 답글

    그런 안일한생각덕분에 우리의 딸 아들이 사이코패스적 범죄의 피해자가 됩니다. 교화론을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사람이란게 4살배기 어린이도 아닌데 어떻게 중년의 아저씨를 올바른사람으로 교화시킨다는건지.. 이상론 아닌가요?
    과연 우리가 분노하는이유가 값싼 선동이라고 느끼시는지? 동정을 그 어린이한테 베푸는게 맞는거지 범죄자한테 하는건 아니지요. 나영이는 평생 배변주머니차고 알아보는사람도있어서 인간관계도 다른사람보다 어려울텐데 우리 두순이만 사회에 잘 교화되어 산다고요? 그건 정의가 아니죠. 억울하지 않게 진상을 잘 파악하되 전혀 억울할것없이 명백히 죄를 지었다면 그건 죽여야 마땅하죠. 우리사회가 그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고요? 제도 조금 엄격하게 바꾼다고 그 사람에 대한 솔루션이 없는게 아닙니다. 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있는사람에게는 교화의 여지를 주어야하지만 이미 중범죄를 저지른사람의 사정따위 관심가지고싶지않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사람이 과연 범죄를 저지르지 말아야한다는 윤리를 몰랐겠어요? 알고도 저지른거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