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저하가 나쁜것인가? by 젊은노인

고민 시작.

나는 항상 출산율 저하,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출산율 저하가 나쁜 것이냐고 물었다.
 
인구감소는 인류에게 결코 부정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것이다. 또한 소위 '제3세계'라고 불리는 많은 국가들에선 아직도 출산율이 높으며 추측해 보건대 인류 전체의 출산율은 걱정스럽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출산율이 문제라면 다른 것보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것을 꺼리게 할 정도의 열악한 육아문제, 지옥이라 할 만한 교육문제, 여성의 직업문제 등이 원인 혹은 핵심이고 출산율저하는 그 결과일 뿐이다. 나는 이런정도의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녹색평론 9-10월 호에 발행인이 좋은 글을 써 놓았다. 조금 떠다 놓는다.

 <녹색평론> 2009년 9-10월 통권 198호 p.2-14
   민주주의를 위하여(2). 김종철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산업국가들에서 출산율이 낮은 것은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그 경향은 비상사태라고 할만큼 심각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그리 멀지도 않은 장래에 한국인이라는 종족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러한 인구감소 추세를 기반으로 해서는 복지국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도, 산업국가로서의 현상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좀더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출산율 저하를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생태적 수용능력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고려할 때, 인구감소 추세가 반드시 나쁜 것인가 하는 것은 좀더 철저히, 다각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테마이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와는 별도로,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의 배후에 있는 본질적으로 공리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인간관이다. 즉, 출산율 저하에 대한 우려가 주로 산업국가 내지 복지국가로서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인력―노동자, 병사, 소비자, 납세자, 연금불입자, 보험가입자―이 부족할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해 있다고 한다면, 이 논리에 우리가 선뜻 동의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한다면, 그리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는 개인 각자를 그 자체로 존엄한 인격적인 존재로 여긴다면, 이것은 쉽게 말하기도, 듣기도 거북한 논리이다. 따져보면, 이러한 논리 속에는 인간존재에 대한 심히 모멸적인 시선이 들어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누구든지 국가나 자본 혹은 복지체제에 이바지하기 위한 도구나 수단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람들은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발언 속에서 개인의 존재를 다분히 도구시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무례함과 몰이해를 드러내면서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인생까지도 비하(卑下)하는 기묘한 결과를 빚어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늘의 상황에서 출산율 저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좀더 깊이 헤아려보려는 자세이다. 사실, 관점에 따라서는 출산율 저하라는 현상 자체는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왜 출산율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게 바람직한 것이냐 않느냐를 떠나서 검토해볼만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갖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또 궁극적으로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지 국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시스템 속에서 어떠한 사적인 영역도 이 시스템의 영향이나 압력을 벗어나 있을 수는 없다. 저(低)출산 현상이라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청춘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을 하거나 않은 채, 아기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인생사업이지만, 그것은 시대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고, 표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오늘날 왜 결혼을 망설이며, 아기 낳기를 꺼려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했는가 하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들이 출산을 단념하는 무엇보다 큰 이유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 속에서는 아기를 안심하고 낳아 기르는 게 불가능하거나 감내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혹은 전통적인 인간관이나 윤리관에서 이탈한 젊은 세대의 감각으로는 이제 아기를 낳아 양육하는 것에 그다지 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는 핵가족이 주류가 된 한국사회에서, 안정된 직장, 소득, 집이라는 가족생활의 일차적 요건을 확보하는 일마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아기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점점 모험에 가까운 일이 되고 있다. 거기다가 아이들이 헤쳐나가야 할 극심한 교육지옥을 감안하면, 아기를 낳을 엄두를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책임한 범죄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아기를 낳고 기르는 부모나 어른의 입장에서 출산문제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이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 우리가 매일 듣고 있는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실로 기막힌 최근의 한 증언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작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진보성향’의 후보를 지원했다고 해서 국가공무원법과 선거법 위반으로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법정에서 행한 최후진술 가운데서 나온 증언이다. 이 재판에 피고인으로 나온 교사들 전원의 발언이 모두 경청해야 할 것들이지만, 그중에서 허 아무개 교사의 최후진술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했던 자원봉사 활동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 


얼마 전 10일짜리 자원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학생들의 농촌 체험 활동인데 교사로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런데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 학생이 개미들을 밟아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다가가서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왜 약한 개미들을 죽이냐고 물었다. 죽여도 된다고 대답한다. 너는 너보다 힘센 사람이 너를 괴롭혀도 좋으      냐라고 물었다. 그래도 좋단다. 여기까지도 많이 놀랐는데 더 놀라운 대답이 이어졌다. 힘센 니가 개미를 죽이듯이 너보다 힘센 사람이 너를 괴롭히면 너는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으냐라고 물으니 아이는 대답한다. “나는 죽어도 좋아요”라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학원을 안 가도 되잖아요.”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아이는 8살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학원을 다섯개를 다닌다       고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이렇다. 이런 교육을 바꾸자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이것이 죄인가? (〈오마이뉴스〉 2009년 8월 17일)


이것은 픽션이 아니라 한 교사의 실제 경험담이다. 이 경악할만한 이야기는 우리가 국가니 교육이니 하는 이름으로 현재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이 과연 윤리적으로 최소한이나마 정당화할 수 있는 체제인지, 심각하게 물어볼 것을 요구한다. 지금 이 나라의 권력자들과 유력 언론과 교육기관은 입만 열면 ‘선진화’를 운위하고, 끊임없이 ‘국가경쟁력’에 대해 말하면서도 아이들의 진짜 현실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그것은 “나는 죽어도 좋아요”라는 8살짜리 아이의 기막힌 항변이 명확히 입증하고 있다. 한 사회의 인간다운 존속을 위한 기초 중의 기초인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과연 어떤 ‘선진사회’ 건설이 가능할지 알 수 없지만, 문제는 아무 영문도 모르는 죄 없는 아이들이 언제까지 이 야만적인 시스템 속에 방치되어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재판에서 검찰은 교사들 전원에 대해 징역 6개월에서 2년 2개월까지의 실형을 구형했다. 이런 희극적인 사태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상적으로 끝없이 재연되고 있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후략)

출처 : 녹색평론 홈페이지
http://www.greenreview.co.kr/archive/108KimJongchul_pt.htm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