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생각 by 젊은노인

대나무가 가늘고 길면서도 모진 바람에 꺽이지 않는 것은
속이 비었고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속이 빈 것은 욕심을 덜어내어 가슴을 비우라는 뜻이었다.
또한 사람마다 좌절, 갈등, 실수, 실패, 절망, 아픔, 병고, 이별 같은
마디가 없으면 우뚝 설수 없다는 뜻이었다.

- 김홍신, '인생사용 설명서'에서

 

내가 요즘 개인적인 추구대상으로 삼는 것이 대나무이다.

  대나무는 속이 비었다. 이는 속을, 내면의 욕심과 외적인 소유들을 줄여가려는/비워가려는 나의 태도의 지침이다.

  대나무는 빠르게 성장한다. 이는 속을 비우고 무럭무럭 성장하고 싶은 나의 욕심과 닮았다.

  대나무는 단단하다. 이는 외로움과 좌절에 굴하지 않고 또 아픔과 힘듬에 굴하지 않고 강해지고 싶은 나의 바람이다.

  대나무는 꽃을 거의 피우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고 또 자식을 만들지 않고 외로이 살아가고 싶은 나의 희망사항이다.

  대나무는 항상 푸르다. 추운 겨울에도 힘든 시절에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푸르고 싶다는 나의 꿈이다.

 

김훈은 산문 <악기의 숲, 무기의 숲>에서 대나무에 대한, 또 담양의 수북의 대나무 숲에 대한 글에서 이렇게 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나무는 상징체계와 더불어 자란다. ............맑음과 깨끗함의 완성태를 지향했던 저 은자들의 꿈은 현실에 대한 절망과 나란하였다.............내 마음의 수목원에서 대나무는 연금술사의 귤나무와 정반대의 위치에서 서식한다. 꽃도 열매도 없는 그 나무는 연금술이란 불가능하기에 앞서 불필요한 일이며, 한줄기 외로운 지향성만이 살아서 이루어내야 할 일의 전부라는 전언을 그 나무의 마디마디에 매달고 있다. 그 나무는 열매의 황홀 속에서 존재의 전이를 이루는 행복한 나무가 아니라 지향의 외로움으로 자신의 운명을 삼는 고통스런 나무다...........대숲의 속은 언제나 어둑시근하고 서늘하며 소슬하고 정갈하다.....

 
한 그루의 대나무를 들여다보는 인간의 시선은 분열되어 있다. 대나무는 비어있고 단단하고 곧다. 인간의 꿈과 욕망, 그리고 세계를 마주 대하는 인간의 자세의 양극단은 악기와 무기다. 인간은 악기를 만들수도 있고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의 시선이 대나무의 속 빔에 가 닿았을 때 인간은 거기에 구멍을 뚫어 피리를 만든다..............그러나 인간의 시선이 대나무의 단단함에 가 닿았을 때 인간은 대나무의 한쪽 끝을 예각으로 잘라내 죽창을 만든다.

 

피리 죽창, 악기와 무기는 꿈과 욕망의 양쪽 극한이다................악기의 꿈과 무기의 꿈은 결국 다르지 않다. 안중근의 총과 우륵의 가야금은 결국 같은 것이다. 그것들의 꿈은 세계의 구조와 시간의 내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악기는 시간의 내용을 변화시키고 무기는 세계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관여한다. 악기의 꿈은 무기속에서 완성되고 무기의 꿈은 악기속에서 완성된다.............악기는 비어있음의 소산이고 무기는 단단함의 소산이다.

 <김훈, 풍경과 상처 中. 문학동네, 1994>

 

이 글로 인하여 나는 대나무에 대해 풍부한 감상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김훈에 의해 제시된 일종의 주어진 감상으로 제한되어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느덧 대나무는 요즘의 나의 주된 상징체계가 되었다. 지향의 외로움으로 자신의 운명을 삼게 된것이다.

 
"악기와 무기는 꿈과 욕망의 양쪽 극한이다"라고 말한 그를 세상에 널리 알린 소설은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이다. 공교롭게도 그를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로서 우뚝 세운 그 연이은 '노래'들이 대나무에 대한 그의 극한적인 생각에 닿아있다. 언제부터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1994년부터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를 만든것은 대나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는 허무주의와 보수주의 소설가의 대명사이다(이문열은 보수도 아니라는 전제하에). 그가 말하는 '허무'와 '비움'은 닮았을까? 그는 허무감 가득한 단편들로 그의 글들을 채운다. 그는 비워가려는 사람일까 채워가려는 사람일까?

어찌됐든 나에게 이러한 생각을 던져준 김훈과 상관 없이 나는 끊임없이 비워가려 노력할 것이다.

대나무, 죽(竹)은 나의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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