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관대한 사회 by 젊은노인

#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 - 2006년 한나라당 최연희의원

#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기운에 실수한 것 같다.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2003년 한나라당 정두언의원(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


# 술에 약한 사람이 술을 자기량에 넘치게 먹어서 정신을 잃었다가 곁에 있는 사람 손목을 잡아 보았다고 하면, 이것은 실수로 된다. 실수에는 사과가 있으면 용서를 하게 된다. 실수한 사람은 용서를 받게 된다. 이것이 순리다. 사람에 따라서 술을 이기지 못해서 실수하는 사람이 있다. 국회의원은 정치인이기에 보호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 경주최씨 다천공파 홈페이지 
술기운에 실수한 최연희에게 기회줘야  


술은 디오니소스(바커스)적이다. 아폴론(아폴로)이 이성의 신이라면 디오니소스는 이에 대응되는 감성/본능의 신이다. 사람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본능적인 욕구들이 술에 취하면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그리스 혹은 터키가 근원인 유럽의 신은 불교/유교/기독교가 주류인 한국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 아니, 한층 더 권위있게 군림한다. 바야흐르 주류(酒類)가 주류(主流)이다.

중고등학생때까지는 술에 대해 엄격하다. 학교에서 술과 연관되는 학생들은 대부분 문제아이다. 밤새 회식자리에서 신나게 술을 마셨으리라 추정되는 술냄새 진하게 풍기는 선생님도 학교에서는 술마시는 학생들을 처벌한다.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대학에 오면 거대한 반전이 일어난다. 새터라는 대학의 관문에는 신입생의 학구열이나 비전, 우정이나 사랑보다는 술에대한 거대한 기대와 공포가 새내기들을 압도한다. 소위 '죽을때'까지 술을 먹어야 하면 선배는 술을 주는 사람, 후배는 술을 받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대학마다 다른 문화가 있겠지만 또 이제 더 이상 강요하는 곳은 없다고 하지만 질서나 규율이 엄격한 집단일 수록 자부심과 권위가 센 집단일 수록 이러한 문화적인 압력은 여전하며 또 지배하고 있다.

미안해, 술기운에 실수했어. 술기운인데 봐줘. 술마시고 그럴수도 있지라는 말들은 굳이 정치인들의 변명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흔하다. 또 식상하지만 여전한 효력을 발휘한다. 지각을 해도 '어제 술을 과하게 해서'라고 하면 용납이 될 정도다. 모두가 술을 마시고 모두가 술을 권하고 모두가 술에 취하고 누구나 그러한 경험이 있기에 아마도 관대할 것이다.

'나영이사건'에 대한 관심의 열기가 대단하다. 인면수심의 치한에게 고작 12년의 형밖에 안때렸다고 한다. 분노의 물결은 짐승같은 가해자로 향했다가 그런 판결을 내린 인정없는, 또는 정의감이 없는 판사에게로 향했다가, 그런 짐승을 돈받고 변호한 변호사에게로 향했다가, 상고하지 않은 검사에게로 향했다가, 그런 짐승을 감경하도록, 또 더 심한 처벌을 내리지 못하게 되어있는 법체계로도 향한다. 분노의 물량이 워낙 커서 그 방향과 깊이의 파장이 어마어마할 정도이다.

12월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무려 10개월이나 늦은 10월 1일자 일면에 "'짐승'을 다스리지 못한 나라"라고 헤드라인으로 보도한 중앙일보에 이어(문화일보에서도 일면 헤드라인) 정치권도 반응을 보인다. "그런 범죄자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 회의가 든다" 며 "평생 격리해야 마땅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며 우리의 청렴한 이명박 대통령 각하까지도 말씀하셨다. 벌써부터 형량의 제한을 풀도록 형법 42조를 없에자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한나라당에서부터 감지된다. 문제가 문제이닌 만큼 국민들의 수요에 이렇게나 빨리 반응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이것이 단순히 형을 길게 때리면 되는 문제인가. 처벌을 강화하면 되는 문제인가. 미국처럼 3~400년 때리면 성범죄자들이 성욕을 제어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가해자가 그런 형량을 받으면 피해자는 정신적 보상을 받는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은 사실 원래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술에 의한 '심신미약'으로 인하여 감경할 수밖에 없었고 감경을 인정한 이상 12년정도(사람에 따라 15~17년 까지도 줄수 있었다고 하지만 12년이나 17년이나)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실 공식적으로 재판기록이 공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왜 심신미약을 줄 수 밖에 없었는지, 검찰은 왜 그에 항소하지 않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성범죄를 포함한 형사재판에서 술에 의해 인식/행동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감경하는 것이 일반적인 판례라고 한다. 이는 분명한 문제이다.

법체계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기에 함부로 말하기에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나의 상식에 비춰볼 때 음주상태에서의 범죄는 더 위험하면 위험했지 결코 감경할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다른 성격의 문제이긴 하지만 음주운전사고의 경우에는 절대 감경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음주운전은 설사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도, 또 사고가 약하게 발생했다 하더라도 더 위험한 더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 우려되며 그 피해가 단지 그 본인 뿐만 아니라 아무 관련 없는 사람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그래도 살인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선이 있기에(물론 맨정신에도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생명에 위협을 줄정도의 폭력이나 강간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술에 취하면 어디가 급소인지, 주변환경이 어떠한지에 대한 판단 없이 실수나 본능에 의해 감히 상상도 못할정도의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 따라서 술로인한 판단/인식 부족 상황에서는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할 일이지 절대 감경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두에서 술의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술을 싫어하고 멀리하려 애쓰지만 그렇다고 술을 없에거나 술을 아예 마시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개인적인 희망사항이긴 하다). 내 주변엔 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충분히 존경하고 아끼는 사람이 많다. 뭐든지 마찬가지겠지만 어느정도 적당한 선까지 즐기면 좋은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술김에 저지른 짓을, 예를들면 술먹고 지각한다든지, 술먹고 무례를 범한다든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 모두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술로 인한 유대감이나 유연성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그 지인들 뿐만이 아닌 낯선 사람, 즉 불특정한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 적어도 술마시고 저지른 죄들에 대해서 떳떳하거나 당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위의 정치인들의 경우에도 그들이 성추행을 저지르고 그 죄의 삯을 술로 돌리는 것은 그래도 술김에 그랬다면 어느정도의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술마시고 그런 일을 저지른 경우에 오히려 더 부끄럽고 더 심각한 사안으로 이해된다면 절대 그렇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조모씨는 법정에서 아마도 자신은 술에취해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의 변호인도 그렇게 주장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술에 취해 심신 미약이 인정된다면 형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친 음주로 인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감경이 아닌 가중이 된다면 그들이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사회적으로 술에 그렇게 관대한 문화가 아니라면 그들이 이렇게 주장했을 것인가? 법을 바꿔야 한다면 단순히 형을 늘리고 처벌을 세게 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법을 잘 모르는)강하게 든다.

폭발하는 여론과 그에 부응하는 언론과 정치권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이번 사건은 아주 많은 문제를 두루 담고 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성범죄에 대한 예방과 처벌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가 드러났으며 언론과 정치권의 무책임한 감정적인 보도와 대응들이 드러나며 기독교라는 특정 범죄에 대한 반감도 강하게 나타났다(범행장소가 교회라는 점. 범인이 목사라는 소문, 교회에서 처벌에 반대한다는 소문). 또 검사를 비롯한 법조계의 문제(양형기준에 대한 고찰과 일반인들의 법감정과의 괴리문제, 검찰과 경찰의 조사초점문제 - 노무현을 수사한 열정과 성의의 반이라도 보인다면 또 촛불집회 참여자들의 색출과 처벌에 들이는 공의 반만 들인다면 성범죄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만연한 술문화와 음란문화의 부정적인 면의 극단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또한 대중들의 일시적인 분노가 어떤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고질적인 '냄비'문제까지도 이어진다.

나영이 문제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보다 합리적인 여론/법/정치/언론 문화가 성숙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정말 일어나서는 안되는 성폭행, 특히 어린아이에 대한 성폭행에 대해서 더 큰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갖고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면 한다. 법을 비롯한 제도적인 정비도 필요할 것이고 예방에 대한 기술적인/의식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제도나 기술만으로 모든것을 해결 할 수 없는 것 만큼 우리 사회 전체의 의식과 문화의 변화도 요구된다. 강호순이나 조씨가 뚱딴지처럼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개인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범죄들은 결국은 우리 사회의 왜곡되고 일그러진 자화상의 한 파편이라 생각한다. 모두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뜨겁지만 차분하게 보다 생산적인 화를 냈으면 한다.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화말이다.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의 나경원 의원같은 사람들이 이런데 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법조계출신이며 여성이고 장애가 있는 딸을 가진 사람으로서 적합하다. 미디어법이나 악플처벌같은데보다 이러한 국민의 관심이 쏠린 중요한 사안에 말이다. 잘못했으니 무조건 엄하게 처벌이라는 단순한 대응이 아닌 구조적인, 문화적인 모순점들에 대해서 여론과 호흡해가며 합리적으로 그렇지만 진정성을 갖고 변화를 이끌어냈으면 좋겠다. 바랄데다 바라야 하나?

p.s.술을 꺼리는 내 편견이 잔뜩 들어간 글이다. 이 사건 때문에, 또 이사건에 대한 일련의 경과(여론, 언론, 정치권등의 반응)들 때문에 며칠간 매우 불편하다. 술을 좋아하는 분들께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내생각을 아주 잘 반영하는 카툰이 있어서 퍼온다.
http://happybug.textcube.com/40



덧글

  • INtothe水 2009/10/01 16:23 # 답글

    저도 이렇게 논의되고 회자되어 옳은방향으로 진행되길 빌고있습니다만,
    인민재판과 인권유린을 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것 같아서 불안하긴 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술을 좋아하는, 술이 주는 기쁨을 누릴줄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술에 먹히지 않습니다.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미안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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