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결국은 사마리아인 - 나쁜 사마리아인들 by 젊은노인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나의 점수 : ★★★

당신도 결국은 사마리아인

이 책은 아주 유명한 책이다. 경제서로 30만부가 팔려나가는 대단한 판매실적을 올렸고 2년 연속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고 적혀있다. 굳이 이러한 수사를 붙이지 않더라도 장하준이라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의 자부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며 국방부도 불온도서로 지정하여 맞장구를 쳐서 한국인이라면, 특히 중도 혹은 진보쪽이라면 대부분 장하준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을 법하다. 그 유명세에 걸맞게 이 책은 아주 명쾌하고 신선하며 풍부하고 재미있는, 그리고 의외의 예들과 통계들같은 근거를 갖고 있다.

이 책에서 일컫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IMF나 세계은행 그리고 WTO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개도국의 경제발전을 도와주려 한다는 명분하에, 또 공정한 경쟁(평평한 운동장)을 만든다는 명분하에 그들 자신이 성장할 때 누렸던 수단들과 과정들을 제재한다. 이른바 선진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동인 것이다. 그것이 의도 됐든 의도 되지 않았든 개발도상국들의 성장에 심각한 지장을 가져 오기에 개발경제학자인 장하준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왜곡되었던 여러 속설들과 주장들 편견들을 갖가지 면에서 깨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성공적이며 너무 쉬워 유쾌하게까지 느껴진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자들이 이 책의 성가를 높일 법 한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였다. 처음에는 번역상의 문제거나 필력의 문제 혹은 내 지식의 문제인줄 알았다. 읽는 속도가 안나고 몰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어나가다 보니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이해하는 데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 답답함의 근원은 관점의 폐쇄성에 있었던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저자도 책 곳곳에서 전제하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경제학적인, 경제발전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 그 일관된 관점 하에 많은 예들과 통계들을 적용하며 여러 나라들의 경제를 바라본다. 이를테면 국민소득이나 성장률과 같은 것들이 그 유용한 도구이다. 물론 경제학의 ㄱ자도 모르는 내가 저자의 경제학적 식견과 이론적 준거의 틀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나에겐 분명 답답하다.

세상 혹은 사회를 보는 틀은 다양하다. 사회학적 관점도 있을 수 있고 철학적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경제학적 관점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 관점을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가 갖는 권위와 명쾌함이 갖는 지나치게 큰 설득력이 안그래도 경제학적 관점에만 매몰되어있는 작금의 대한민국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이고 생산적이고 많이 벌며 성장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내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것은 방법론적인 비판이다. 그도 여전히 성장과 소득향상의 목표, 즉 선진국이라는 기치를 걸고 있는 개발 경제학자이다. 그의 주장들은 자본주의나 자유주의, 또 성장주의의 부분적 오류(물론 아주 큰 오류들일 수 있다)들을 수정할 뿐 근본적인 무언가에 대해 고민하거나 회의하지 않는다. IMF나 세계은행, WTO와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관점의 틀을 가지며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저자인 장하준 교수도 결국은 '사마리아인'인 것이다. 명쾌함과 풍부한 근거들이 빛나는 이 책은 세계화의 오류를 고쳐 그 정당성을 강화한다. 이러한 강화는 결국 다른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또 꿈을 꿀 수 있는 상상력을 제한할 것이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모든 해석과 분석의 단위로서 국가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각 국가는 그 틀 안에서 하나의 통일된 단위로서 존재할 뿐 그 안에서의 경제적 격차나 실질적인 삶의 질, 문화적 측면이 고려되지 못했다. 나는 경제학자로서 그의 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그러한 상세한 분석을 하지 못 했다기보다는 안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시각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적어도 이 책에서의 주장의 일관성을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저자의 다른 연구들과 관심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경제살리기'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하는 이를 대통령으로 갖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 책이 갖고 있는 경제적 관점의 힘은 대단하다. 나 또한 이러한 사회에서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하나의 관점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경제적 관점에만 매몰된 사회에서 이러한 관점을 강화하기 보다는 보완하는 또 극복하는 다른 관점들의 필요가 절실하다. 또한  나는 아직 배우는 학생이며 꿈을 꾸는 젊은이이다. 이러한 나에게는 보다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들이 고프기 마련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제학적 관점만을 고수했으며 이러한 답답함은 주를 제하고도 3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나서도 가시지 않은 허기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 쏟아지는 찬사들이 일개 독자로서 결코 반갑지 않은 이유이다. 우리는 '사마리아'인의 숙명을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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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지소낭자 2009/10/01 09:51 # 답글

    확실히 이 책은 국가를 하나의 단위로 취급하고 그 안에서의 다양성은 논의하질 않았지.
    하지만 이건 국가 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봐. 선진국은 이미 사회적 기반을 확립한 소위 상류층, 나머지 중산층은 지금의 한국에 해당되는 국가들이 될 테고, 개발도상국과 극빈국도 그대로 사회 계층과 1:1 대응이 될 수 있으니까.
    사회 계층간 분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에서 저 윗분들이 한번쯤은 읽고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_-;
  • 명상 2009/10/09 21:32 # 답글

    음...지나가는 경제학도입니다. 다소 오해하시는 분이 있으신거 같아서 미숙한 댓글 달아봅니다.
    우선 저자가 [나쁜 사마리아인]이라고 주장하는 존재들은, 신자유주의를 역사적인 근거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호도하고, 자신들이 실제 성장의 동력으로 사용해온 방법들을 마치 자신의 옛모습과같은
    현재의 개도국에는 [그것 틀렸어!]라고 주장하는 부자나라들입니다.

    저자가 비유하듯, [보호무역]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경제성장]이라는 지붕위에 올라선 부자나라들이
    이제 후발주자로 [보호무역]이라는 사다리를 타려는 개도국을 방해하고 있다라는게 책의 요지입니다.
    따라서 쓰신부분에

    [이 책의 저자인 장하준 교수도 결국은 '사마리아인'인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앞에 "나쁜"이라는 단어가 빠진게 맞다면, 약간 오독을 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경제발전에만 치우쳤다, 라고 하셨는데 이건 경제학의 학문적인 단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전공자들에게 경제학은 흔히 Dismal 한 학문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는 심지어 경제학자들 자신들도
    인정하는 부분이죠. 삶의 풍요, 정신적 기쁨, 사랑 등등의 모든 감정들에서 마저도 "비용"을 계산하고
    "효용"을 계산하여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학문입니다.
    요컨데, 경제적인 발전만을 사회의 가치로 치부했다 라고 생각하셨다면 그건 정답입니다.
    경제학은 그런 학문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국가내부의 부의 격차나, 문화적 삶의 질에 관한 이야기는 이책에서 논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부의 격차같은 문제는 경제학의 주요한 쟁점이지만, 이 책의 논점은 선진국의 개도국에 대한 일종의 행패를
    고발하는 것이지, 부의 격차 문제가 주제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이 책에서 기대하신바가 다소 다르기에 책의 내용에 만족하지 못하신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컨데, 수박껍데기를 보고 붉은 색의 속살을 기대했는데 푸른색이 나오니 기분이 묘한게 당연할테죠.

    그럼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경제학을 전공하려는 J양에게 ]라는 글을 읽어보시면
    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느낌을 아실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젊은노인 2009/10/10 18:51 # 답글

    부족한 글에 긴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가지 해명을 드리자면 제가 이 책에 쓴 짤막한 글로 그 책을 쓰신분이나 그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시라면 기분나쁘거나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글에도 언급했듯이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글을 씁니다. 어쩌면 그것이 경제학의 목적이며 전제일테죠. 말씀하셨듯이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이 책은 정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제학도도 아니고 경제학적인 관점에 한국사회가 너무 매몰됐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그 관점을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러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주는 책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관점들을 조금씩 알아가려는 노력이죠. 철저하게 저의 이러한 목적에 비춰볼때 이 책이 저에게 주는 효용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결코 저자의 잘못이나 책의 부족함이 아니며 그 간극은 저에게서 비롯한 것입니다.

    관점문제와 더불어 부의 격차같은 문제까지 언급한것은 사실 연목구어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 한가지 사마리아인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쁜'은 실수로 뺀것이거나 생략한 것이 아니라 나쁜 사마리아인이나 선한 사마리아인이나 똑같이 사마리아인들이라는 것에 대한 저의 비유입니다.

    "신자유주의를 역사적인 근거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호도하고, 자신들이 실제 성장의 동력으로 사용해온 방법들을 마치 자신의 옛모습과같은 현재의 개도국에는 [그것 틀렸어!]라고 주장하는 부자나라들"이 나쁜 사마리아 인들이라고 하며 그들을 비판하지만 저에게는 어찌됐든 선진국들이 후발국들에게 '경제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이러저러한 방법들을 일러주며 개입하려고 하는 모습 자체가 탐탁치 않거든요. 설사 그것이 선한의도라 하더라도, 또한 그것이 후발국들에게 경제성장을 실제로 일으킨다 하더라도 결국은 '사마리아'인에 다름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제성장이 답이 아니며 오히려 무분별한 경제성장은 대부분의 국가와 사회에 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저의 이러한 생각은 망상이며 꿈에 불과 하겠지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만 그래도 부탄이나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들에 대해 조금더 관심을 갖고 무언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답글 감사드리고 혹시 제가 설명한 부분에 저의 실수가 있거나 댓글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말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오독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일 수 있으니까요.^^
  • 명상 2009/10/10 22:41 #

    답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공부는 별로 안했지만) 얼마나 경제학적인 사고방식에 심취해있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된거 같습니다.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으시는 분들에겐 "그들만의 리그" 로 보일수도 있었겠군요. 어찌되었던, 경제의 성장이
    최고의 선善이라는게 경제학이니까요.

    하지만 경제학 내부에서도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패배한 역사를 지닌 공산주의 사상가인 맑스는 이미 수십년전에 "자본"이라는 이름하에 짓밟히고 유린당할
    인간성을 걱정한바가 있으니 말이죠. 현재의 자본주의 진영에서도 작금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패배한 이론들"에게서
    교훈을 얻으려는 움직임도 많기도 하구요.

    아무튼, 덕분에 좋은 블로그에서 이야기를 나눠서 기뻤습니다.
    책에 관한 리뷰가 많으신데 다른것들도 읽어보고 싶네요.
  • 젊은노인 2009/10/13 13:50 #

    우리 모두는 우리들만의 리그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저는 그래도 아무 리그에도 깊이 발 담그지 못하고 이런저런 리그를 전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상상력 어쩌고 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을 비롯한 실제의 삶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부분이 경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제를 공부하시는 분들의 어깨가 조금 더 무겁겠죠. 작은 응원과 선의의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맑스라는 이름이 경제학에서 언제나 패배하는 이름이 아닌 버젓이 한 축을 이루는 이름이 되길 바랍니다.

    책을 열심히 읽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주 찾아오셔서 많이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Josh 2017/02/16 22:31 # 답글

    관점이 폐쇄적이라는 부분에서 공감합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고, 반론을 이용한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는 별로 하지않더군요. 무엇보다 초반의 결론적인 내용이 중,후반 부에 반복해서 서술되더군요. 저는 작가의 주장은 공감합니다만, 책을 쓰는 방식은 수용 못하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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