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힘 - 강상중 by 젊은노인

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출판사
나의 점수 : ★★





2009년 3월쯤 출간된 이 책은 꽤나 유명한 책이다. 일본에서 100만독자를 일으켜 세운책이라고 하는 설명은 제쳐두고서라도 한국에서도 상당히 많이 팔리고 칼럼등에서 많이 인용됐던 책이라 호기심을 갖고 있던 책이다. 남들 다 읽는 책은 이상하게 잘 손이 안가는 내 성격탓에 여러번 읽을까 말까 생각하다가 이제서야 들춰보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런 책이었다. 이런 책이 왜 그토록 인기가 있었을까?

필자는 요즘 시대에 고민이 부족하다며 고민할 것을 강조한다.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고 자신의 겪은 바와 느낀 바를 또 고민의 결과물들을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베버를 통하여 드러낸다. 사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 둘을 언급하는 것을 보고 또 앞으로 이 둘을 통하여 글을 전개할 것을 보고 심심찮은 기대감을 가졌으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물의 표면에서만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필자는 제일 교포 2세로 자신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한국이름을 사용하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겠다고 결정한 듯 한데 이러한 점에서 서경석선생과 비슷하다. 둘다 재일 조선인으로서 일본에서 소기의 학문적인 성과와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다. 하지만 둘의 글에서 느껴지는 태도는 매우 다르게 보인다. 서경식 선생의 책에는 아직도 계속되는 그의 고민들과 또 겸손한 태도 또 독선적이지 않은 태도가 엿보이는데 비해 이 강상중 교수의 책에서는 '고민하는 힘'이라는 제목과 달리 그렇게 큰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하지 않으며 또 나에게 고민을 던져주지 않는다.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성장한 사람 특유의 자신감과 확신이 깊게 배어나는 듯해서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제목 또한 '힘'이라는 말로 나에게는 좀 강한 느낌을 준다. 이 얇은 책 한권으로 그의 모든것을 판단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한것 같다.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 즉, 이 시대에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에는 깊이 공감하나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이나 저자의 나름대로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베스트셀러가 늘 그러하듯이 좋은 말과 아름다운 말들이 많고 쉽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쓰여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공허했고 나는 많이 졸았다. 중간 이상을 넘어가면서부터는 흥미를 크게 잃었지만 그래도 얇은 맛에 읽어낸 부담없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하여 나쓰메 소세키라는 사람을 알게된 것은 쏠쏠한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간만에 실망스런 책을 읽었다.

덧글

  • 지성의 전당 2019/01/16 22:18 #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고민하는 힘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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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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