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 신영복 by 젊은노인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나의 점수 : ★★★★


"나는 시적 관점은 왜곡된 삶의 실상을 드러내고 우리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적 관점은 우선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동서남북의 각각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춘하추동의 각각 다른 시간에서 그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결코 즉물적이지 않습니다. 시적 관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자유로운 관점은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한 관계망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를 읽고 시적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p.64-65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의 동양고전 독법을 강의형태로 풀어낸 책이다. 하지만 이것은 학술적인 고전 강독이라기 보단 감성적인 시적 관점을 소개하고 전달하는 책이라 하는게 더 적당할 듯 싶다.

 위의 인용문에서 시적관점이란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다르게 바라보고 사물간의 관계를 드러낼 수 있는 관점을 말한다. 책에서 저자는 시와 언, 주역, 공·맹·노·장·묵·순·한비(자)(법가) 등 제자백가를 대표하며 중국, 나아가 동양의 사상을 대표하는 여러 사상들을 넘나들며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중 어느것이 우월하다고 내세우지 않으며 각 사상들의 차이를 극명히 부각시켜 서로 다른 것으로 애써 분류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 사상들에서 세계를 보는 저마다의 다른 시각과 함께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관계론적 특징을 발견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서양의 존재론적 사고에 대비되는 동양적 특징이다. 

 공자, 맹자를 소개할 때는 유가의 사상에 맞장구를 치다가도 노장을 소개할 때는 또 고개를 끄덕인다. 잘 몰랐던 주역이나 묵자는 말할것도 없고 평소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순자나 법가등을 읽을 때도 나름의 매력에 빠져든다. 세상을 보고 사회를 보고 인간을 보는 시각이 다를 뿐 그들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관계이며 평화로운 세상이다.

 한문으로 구성된 문장들의 유려함에 감탄하고 노트에 베껴적기도 하고, 묵자의 결연함에 나 자신의 해이를 돌아보기도 하며, 노장의 초연함에 흘러가는 바람을 느끼곤 하다가 공자 맹자 편에서는 유교에 대한 나쁜 편견을 깨는 시원함을 느끼고, 순자 한비자 등의 법가계통의 사상가들의 몰랐던 매력들을 발견하다 보면 강의하듯 대화체로 쉽게 씌여진 500여페이지의 얇지 않은 책은 금새 마지막장을 넘기게 된다. 한국에 살면서도, 동양에 살면서도 서양철학에 비해 오히려 더 모르던 동양철학들을 아주 조금이나마 맛을 볼 수 있어서 입문서로써 좋은 것 같다.  이 책을 읽는동안 나는 쉽게 정리된 맹자를 같이 읽었으며(책세상) 앞으로 논어등의 주요 사상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이 생겼다. 따라서 이 책은 갈증을 해소해 준다기 보다는 모르고 있던 갈증을 일으키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딛고 있는 세상을 그 관계를 중심으로, 더불어 다양한 나름의 틀들을 기저에 깔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동양과 서양의 사상과 문화가 충돌하는 시점에 살고 있다. 우리 시대는 이들 동양의 옛 사람들이 살았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또한 방대하지만 이들이 제기했던 문제들과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부딪히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또 실천할 때 오랫동안 인류가 갖고 있던 여러 틀들을 다양하게 적용해 보면서 보다 풍요롭게 생각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펼친다면 보다 아름다운 사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철학에서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는 바람직한 관계와 평화가 있는 세계말이다. 바로 이책에서 말하는 '시적 관점'이 바로 그 원동력라고 저자는 수차례 강조한다. 저자는 이러한 시적 관점을 통해 동양고전을 넘어 우리의 문명을 들여다보려 한다. 이 책의 목적은 동양고전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동양고전을 틀로 해서 세상을 읽으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이 책의 부제는 '나의 동양고전 독법'보다는 '나의 자본주의 문명 독법'이 더 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옛 사람의 시를 외우고 옛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도 정작 그 옛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말이 되는가? 이 때문에 그 사람의 시대를 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과 벗하는 법니다"

- 맹자, 만장 -

주의해야 할 것은 오늘의 시대적 기준에 맞춰 옛 사람들을 재단하는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산업혁명·과학혁명이 무엇인지 상상도 하지 못할 시대를 살았다. 그것은 무지이기 이전에 자유로움이고 다듬어지기 이전의 원석과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이 강의를 통해 옛 사람의 시대를 논하며 옛 사람과 잠시 벗하며 그들에게 사숙하는 것이 어떠한가? 마침 가을 하늘이 높고 그 바람이 서늘하여 그 벗함에 수월하다.


덧글

  • 바른손 2009/09/21 14:55 # 답글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저는 주변 후배들에게 많이 추천해줬어요.
  • 지소낭자 2009/09/22 13:25 # 답글

    나는 프레시안에 연재될 때 아버지가 뽑아놓으신 걸 읽었는데 참 좋더라구.
    한문은 뜻글자이니만큼 정말 유려하지...한때는 그렇게 읽어보는 게 꿈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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