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by 젊은노인

달리며 뛰다.(Jumping at Running)

 지쳐서, 더이상 달릴 수 없을 때까지 숨가쁘게 뛰고 싶었다. 오랜만에 집 앞 학교 운동장을 달렸다. 빙글뱅글.


 마음껏 달리다 올려다 본 하늘은 높았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힘껏 발돋움을 해서 뛰어도 어림도 없다. 그런데 왜 난 끊임없이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뛰어오를까. 아마도, 아주 조금이지만 다리로부터 느껴지는 땅에의한 속박에서 벗어나는 쾌감을 느끼기 때문 일것이다. 그것은 곧 자유의 향기이다.

 순간이 지나면 변함 없는 중력에 의해 돌아온다. 하늘에 닿을 수 없고 계속해서 뛰어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도약한다. 하늘이 어딘가 잠시 생각해 본다. 땅에서 10키로를 뛰어도 하늘이고 1키로를 뛰어도 하늘이며 땅에서 단 1센치만 떨어져도 그것은 또 어떤 의미로서의 하늘이다. 땅을 딛고 서 있는게 아니지 않는가. 설사 우리가 지향하는 하늘빛 하늘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온전히 우리의 두 다리로 딛어서 뛰지 않고 하늘에 가까워지면 우리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다.  현기증이나 고소고포증 같은 것들 말이다.
 
 분명 난 하늘을 꿈꾸고 지금의 난 도약하기 위해 발돋움을 하고 있다. 오늘 내가 맘속 깊은 곳으로부터 느낀 서늘한 두려움은 현기증인가 고소공포증인가.  자명한 것은 내가 꿈꾸는 하늘은 여전히 저 높은 곳에서 푸르게 빛나는 것이다. 바라만 봐도 가슴시리게 말이다.

 어릴 적, 난 바이킹을 타면 무서웠다. 떨어질 것만 같은, 땅으로 곤두박질 칠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럴 때 무서움을 떨치는 내 방법은 여전히 높은 하늘을 향해 시선을 주는 것이었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머릿속으로 이 바이킹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거듭 나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었음을.

 나는 '하늘'이라 쓰고 '이상'이라 읽는다.  또 '땅'이라 쓰고 '현실'이라 읽는다.  따라서 내가 느끼는 '현기증'은 '괴리감'이라 읽어야 할 것이다. 오늘 달리다 잠시 쉬러 미끄럼틀에 올랐다. 어릴 때는 그토록 높아서 아찔하게만 느껴지던 미끄럼틀 위가 오늘의 나에게는 편안한 것을 보니 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것도 하나의 성장통인가 보다.  자라날 수록 그 괴리가 좁혀지기 보다는 우리의 감각이  둔해지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사람이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높이는 수천미터, 수백미터가 아닌 8~11미터정도라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다. 중고등학교때 배운 하늘의 높이는 수~수십키로미터인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오늘 내가 느끼는 현기증이라는 것은 내가 땅에서 너무 먼 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내가 너무도 부족하기에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두려움인 것이다.

 푸른 하늘을 향해, 오늘도 난 뛴다. 내가 오늘 달리면서 본 밤 하늘은 푸르지 않았지만, 내일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여전히 하늘은 푸를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구름에 가려져 있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나의 믿음이다.

 

 지쳐서 터벅터벅 교문을 나오며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학교 운동장은 참 좁지만 하늘이 높기에 그 곳은 참으로 넓다. 난 그곳에서 꿈을 꾼다. 자주 가고 싶은데 자주 가지 못하게 되는 것 까지도 꾸고 싶다고 해서 마냥 꿀 수 없는 그 꿈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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