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꿈을 꾸자; 유러피언 드림 by 젊은노인

유러피언 드림 - 제러미리프킨/이원기 - 민음사

 Dream은 꿈이다. 꿈에는 많은 뜻이 있다. 어젯밤에 자면서 꾼 꿈은 과거이다. 개인적이다. 커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장래희망이다. 미래이며 개인적이다. 유러피언 드림의 꿈은 이러한 개인적인 꿈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이상으로서의 꿈이다. 즉, 이 책에서 말하는 '드림'은 미래를 향한 것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의미의 이상이 아니다. '유러피언'으로 수식되면서 이 꿈은 특정한 담론이 된다. 유럽에서, 유럽인들이, 유럽적인, 유럽을 지향하는 바람들의 묶음이다. 이 책에서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심오한 놀이, 지속가능성,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지구상의 평화로 요약되는 바람들. 이것이 '유러피언 드림'이다.

 이 책의 제목은 미래를 향하고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은 과거를 향한다. 이 책은 역사책이다. 중세로부터 근대, 또 현대로 넘어오면서 어떻게 서구인들의 생각과 삶이 변화했는지, 아메리칸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이 어떻게/왜 다른지에 대해서 쭉 서술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역사책적인 성격은 '현대의 형성'이라는 장에서 두드러진다. 자본주의와 민족국가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설명하는 이 장이 그래서 나는 가장 재밌었다.

미국과 유럽을 가른 시기는 근대이다. 저자는 이 시기의 사상, 정치, 사회적 변화를 예민하게 바라보며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드러낸다. 우리는 흔히 미국의 근원이 유럽이기에 거의 비슷할 것으로 생각해버리지만 사실은 큰 차이를 갖고 있다. 물론 계몽주의, 르네상스, 근대, 산업, 자본주의, 시장, 효율이라는 근대의 사상을 같은 뿌리로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은 그 근대성이 순수하다. 유럽은 전근대적인 속성들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봉건주의의 잔재, 기존의 기득권, 길드, 중상주의와 같은 기존의 속성들이 모더니티와 충돌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냈다. 반면에 미국은 그 이전의 역사적 맥락이 거의 전무하다. 최초의 청교도 이주자들과 수많은 개척자들에 의해서 근대, 현대화의 산물을 거의 그대로 갖고 있는 미국은 사실상  순수한 '유러피언드림'이었다. 그런 점에서 유럽 근대 체제의 거대한 실험장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적절하게 다가온다.

따라서 이 책의 '유러피언 드림'은 순수한 근대, 현대의 유럽의 산물이 아니다. 그 이전의 드림들이 모두 버무려진 형태의 드림이다. 그것은 현재시점에서 EU라는 정치체제로 극적으로 나타난다. 글쓴이는 EU를 현존하는, 아니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체제들보다 훌륭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후반부를 이 EU를 그 예로 하여 유러피언 드림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시각은 사실 나의 생각과 비슷하다. 어릴적부터, 그리고 특히 한달밖에 안되는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나는 엄청나게 크고 풍부한 자원을 가진 미국보다는 작고 사람이 바글거리는(물론 한국보다 헐렁하지만 적어도 미국보다는..) 유럽을 모델로 한국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왜인지는 잘 몰랐지만 말이다.

홍세화 선생님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수>를 읽는 사람들 중에 프랑스가 그렇게 좋으면 프랑스에 가서 살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틀린 소리만은 아니다. 나 또한 한국에서 산다는 것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외국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곧잘 했었고 그 생각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채로 마음 한구석에 있으니 말이다. 유럽, 혹은 EU는 결코 우월한 체제라고 할수만은 없다. 유럽은 천국이 아니다. 유럽에도 여전히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홍세화 선생님이 파리에서 18년을 살았다지만 난민신분으로, 즉 어디까지나 외국인으로서 파리의 전부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한달간 관광객 신분으로 유럽에 갔던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남의 떡이 커보이게 마련이니 말이다. EU는 여전히 티격태격대고 있고 유럽인들도 이기적이기는 마찬가지이며 유럽의 국가들도 국익을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유럽은 이상향이 아니다. 마냥 부러워만 할 곳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유럽과 EU를 주목해야 한다. 또 부러워해야 한다.  우리가 부러워할 것은 그들의 현실이라기보다는 그들의 꿈과 이상이다. 위에서 얘기한 여러가지 소중한 가치들 즉, 연대, 환경, 인권등의 가치들은 사실 우리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가치들을 우리가 얼마나 사회적인 합의로, 정치적인 힘으로 표출해내었는가는 분명 돌아봐야 한다. 우리도 소중히 생각하는 환경을, 인권을, 연대를 그들은 실현하지 못했지만 공통의 추구 목표로 합의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국익도 여전히 유럽에서도 추구된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국가간에 국익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합의하고 실질적인 정치체제로 탄생해냈다. 물론 한국, 일본, 중국의 정상들도 서로의 앞에선, 언론의 앞에선 동아시아의 공존, 평화등을 얘기한다. 하지만 그뿐, 돌아서면 다시 무한한 이기심으로 무장한다. 환경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녹색성장'이라는 구호로 외치면서도 대형토목공사를 벌이고, 도로를 직선으로 뚫기 위해 산을 깎고, 건물을 세우기 위해 갯벌을 메우고, 아파트를 짓기 위해 그린벨트를 푼다. 인권을 얘기하면서도 국제적 합의로 되어있는 인권들을 무시하길 다반사다.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심오한 놀이, 지속가능성,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지구상의 평화라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또 이런 단어들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더라도 현 시기의 한국에 무언가 심화된 불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유럽의 꿈을 한번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데 우리보다 한 걸음 더 나가 있기 때문이다. EU가 어떻게 그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그 과정과 작은 열매들을 우리가 눈여겨봐야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도 이 좋은 꿈을 한번 꿔봤으면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이기도 했던  '유러피언 드림'을 말이다.
(이미 언론에 많이 나왔다시피 이 책은 노통이 퇴임후 즐겨 읽던 책이다)

책은 주를 제하고 500페이지 정도이다. 두께에 심히 압박을 느낄 수도 있으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했다는 E-light라는 용지 때문에 두꺼울뿐 보기보다 가볍고 잘 읽힌다. 다른 책의 반질반질한 종이에 비해 불빛 반사가 적어 읽기 편한듯 하다. 책의 편집이나 번역(정확성까지는 모르겠으나 매끄러움 면에서)도 흠잡을데가 많지 않은 느낌이다. 과학, 사회과학, 철학, 실생활등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저자의 폭넓은 지식덕분에 한장한장 흥미롭게 넘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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