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양심, 나의 의무 by 다름과틀림

- 기본적으로 저는 전쟁에 반대합니다. 저의 신앙인 기독교 정신에 따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정신에 따라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뺏는일을 반대합니다. 그것은 저의 신념이고 믿음입니다.

하지만 현재 국제적인 상황과 한국의 상황에서 당장 군대가 없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군축이라는 것도 쌍방의, 또는 다자간의 합의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므로 당장의 전격적인 군축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현실'이라는 배경 속에서의 저의 견해입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 당장 대한민국의 군대를 없앨것과 모든 국민의 국방의 의무를 부정할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저의 개인적인 신념과 양심으로는 실제로 살인을 하지 않는다면 무기 자체를 들거나 군사 훈련을 받는 것 자체는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거부감을 갖진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양심과 신념은 각기 다릅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또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총을 비롯한 무기를 소지하고 사용법을 배우는 것을 포함한 군사훈련을 받는 것 자체가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타자가 강제 할 수 없는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문제이며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비추어 정당합니다. 물론 헌법에 국방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만 이는 군대가 아닌 다른 방식(사회 봉사, 국위 선양, 비 전투 요원)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여성과, 장애인을 비롯한 많은 범위에서 이미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양심에 따른 군사훈련거부를 현재 한국은 사법처리 하여 전과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납세자이며 주민등록자이며 투표권이 있는 정당한 한국사회의 일원이고 또 법적으로 국가에 속한 국민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이름으로 이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저의 이름으로 처벌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국가는 엄격히 말해 계약관계에 의한 국민들의 직무대행자이며 이는 저의 직무대행자이기도 함을 뜻합니다. 저의 양심이 부딪히는 곳은 이 지점입니다. 저와 양심과 사상이 다른 이유로 다른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저의 양심과 신념에 현격히 어긋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 개인의 군 입대는 이러한 구조와 체제에 대한 동의와 동참을 뜻하며 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의 국방의 의무를 포기함으로써, 또 이에따라 감수해야 할 사회적, 법적 결과를 달게 받음으로서 저는 이러한 잘못된 구조와 현행 체제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만약 그렇게 봐주기 시작해서 모두가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들면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의견입니다. 실제로 대체복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많은 국가에서 '모두가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드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실제로 대체복무제가 실시된다고 하여도 시간적으로 더 긴, 사회적으로 더 불리한 대체복무제를 '총을 드는게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경우'에도 선택할 확률은 적습니다. 이는 해외에서 나타난 결과이며 여론조사로도 충분히 조사되어있는(혹시 자료가 없다면 조사 해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또한 현재 한국에서 전투병의 숫자는 과도하게 많습니다. 너무나 많은 전투병으로 인하여 사회적 인력 낭비가 이뤄지고 세금이 낭비됩니다. 또한 계속되는 군축 경향에 따라 군인의 숫자는 줄지 않고 복무 기간만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전투력 측면에서 보더라도 비효율적입니다. 개개인의 군 복무기간을 줄일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전투병의 숫자를 줄이고 소수를 정예화 하고 합리적인 대우와 인건비를 주는게 합리적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군축을 본격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대체복무제가 일부의 우려와 같이 대규모의 군입대 이탈을 낳지 않을 것이며 어느정도의 군 규모의 축소는 대체복무제가 아니더라도 실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상황에 오히려 부합함을 말하고자 합니다. 대체복무제, 군축등으로 발생하는 젊은 잉여 인력은 사회적인 봉사나 복지, 연구등 다양한 분야에 투입되어 기술개발, 복지향상 등의 유형적 이익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사회성 함양, 연대의식 상승등 무형적 자산또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의 것으로'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다소 비합리적이고 불의한 법이나 제도라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합의로 있는 한 따르는 것이 옳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분명히 밝힐 것은 제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법과 제도에 반대한다고 하여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는것은 아닙니다. 만약 제가 '가이샤의 것'을 따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면 저는 군대도 가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처벌을 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하여 살거나 평생토록 법의 집행을 거부하며 살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가이샤의 것을 따르는 수준에서 일부의 오류와 잘못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그 반대를 위한 위법행위에 대해서 사법처리와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아마도 진행될 검찰기소에 응하고 사법처리를 받을 것이며 교도소에 수감될 것입니다. 또한 전과자로서 여러가지 사회 활동에 제한을 받을 것이며 법제도 외의 많은 사회적 부분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감수는 제가 여전히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여론을 존중함을 전제하는 것이기에 예수님의 말씀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 현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어떠한 이득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숫자의 사회적 인력이 낭비되고 있으며 많은 갈등을 낳습니다. 일부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키우며 이러한 일부 국민들을 국가의 성원에서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대체복무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국가에 아무런 손해도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위에서 언급한 많은 효과들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굳이 처벌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요구이며 이 충성요구에 응하지 않는데에 대한 응징이며 괘씸죄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며 국가의 이름은 또한 국민 개개인의 이름의 총체로서 이는 곧 저의 이름이기도 하기에 저는 이러한 국가의 폭력에 동의/동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 우리 사회의 많은 '인권 문제'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하여 의문을 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양심'문제는 결코 급진적이거나 혁신적이고 부수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길게 보다 중세의 마녀재판때와 같은 종교의 자유도 양심문제로 볼 수 있으며 우리 사회에 횡행했던 20세기부터 계속되는 반공사상과도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집회 시위의 자유문제와도 긴밀히 닿아있다고 봅니다. 개인의 생각을 국가가 좌지우지 할 수 없음은 국가가 생긴 시기부터 근대적개인 모두의 가장 기본적이고 급박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분단이라는 상황 아래 우리 한국 사회에서 군대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외면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이러한 관심을 위해 주의 환기와 실천 운동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시민사회, 정당, 언론 등은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하고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운동과 반대 표명은 군입대 거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대 중반의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군입대를 앞두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이 문제와 대면하고 고민할 것을 요구받는 인생의 시점입니다. 저에게는 평균적으로 보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으며 이 선택을 통해 얻을 것보다는 잃어야 할 것이 더 많음은 명확합니다. 살아온 날이 짧고 지식의 수준이 미천하기에 제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선택을 통해 받아야 할 손해와 고통이 얼마나 될지도 감히 상상할 수 없으며 그것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불의한 것을 보며 그것이 저에게 감당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것이 소수라고 해서 그것을 외면하고 그 불의에 동참하는 것은 제 신념에 어긋납니다. 편안하고 안정적이고 다수의 신념에 맞게 평생을 살아갈지라도 그러한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또한 평생 저를 괴롭힐것입니다. 군입대를 갖다오지 않은 제 상황에서 군입대를 거부하는 것만이 그러한 가책과 죄의식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갖다오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저에게는 시급하며 절실한 현재의 문제로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고민됩니다. 이는 비단 이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경우에든지 다름을 용인하지 않고 국가의 이름으로, 혹은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자를 억압하고 피해를 외면하는 것을 저 개인적으로 외면하고 동의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제 자신의 강력한 다짐으로서의 의미도 갖습니다. 이는 연대와 정의에 대한 제 자신의 개인적인 실천적 요구이자 결단입니다.

-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사랑과 용서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원리이고 신앙입니다. 다른 이를 정죄 할 수 없으며 돌을 던져 처벌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를 어떠한 이유로라도 살상하고, 다른이와 무력투쟁하는 것을 기독교는 용인 할 수 있습니까? 예수는 그것이 설사 귀신들린 자일지라 할지라도 폭력과 처벌로서 제한 한 적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즉 믿음과 기도로서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사실 양심과 사상의 자유을 용인하지 않음으로 인한 인류역사상 최고의 희생자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그는 그러한 양심, 사상 문제로 십자가형을 받았으며 그 일은 인류 역사 세세토록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의 전파시기에서 이러한 양심과 사상에 대한 핍박의 가장 큰 희생자 또한 기독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시대의 수많은 순교자들이 아니었다면 또 목숨을 건 전도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초창기 선교사들의 순교와 목숨을 건 전도로 오늘날의 부흥을 이뤘음을 어렸을적 부터 저는 교회에서 배워왔습니다. 우리가 아무런 위협과 손해를 감수하지 않고 자유롭게 우리의 종교를 믿게된 것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싸워온 수많은 인류의, 또 기독교인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굳이 십자군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오늘날 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전쟁과 살상, 폭력은 얼마나 많은가요. 저는 감히 묻습니다. 이러한 폭력과 전쟁에 예수님은 과연 동의하셨을까 하고말입니다. 동의하지 않으실 거라고 개인적으로 정답을 얘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다른 이를 정죄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라면 이러한 질문에 개인적인 양심과 또 신앙에 호소하여 진지하게 스스로 답해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태복음 5장 38-39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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