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아닌 질문, 그리고 질문이 아닌 실천의 절실함 - 한겨레 시민포럼을 다녀와서(도정일 교수 발제) by 다름과틀림

'야만의 시대에 대해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으로 시작한 도정일 교수의 발제는 '해답은 여러분 스스로 찾으세요'로 끝났다.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이라는 이번 포럼의 주제를 보고 그 방법에 대한 답을 구하러 온 백여명 이상의 시민들은 결국 도정일 교수의 입에서 답을 듣지 못했고, 오히려 용산참사, 집회통제, 쌍용진압에 대한 야만의 보고서인 동영상과 또 오고간 여러 질문 속에서 더 많은 의문과 혼란을 느끼며 돌아갔을 법하다. 이정도면 낚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만큼 말이다. 종종 시민포럼을 찾았지만 초창기의 촛불정국때를 제외하면 그 어느때보다 많은 이들이 오늘 참여했다. 도정일교수, 홍세화 선생님의 개인적 명성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연이은 전 대통령의 서거와 곳곳에서 나타나는 오늘날의 현실을 '야만'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 해결책에 목말랐기 때문일 것이다.

야만이란 무엇인가. 야만의 사전적 정의는 '미개하고 문화적 수준이 낮음'이다. 도정일 교수가 예를 들 듯이 지금으로부터 4만 5천년 전 같은 미개한 시대를 야만적인 시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인간은 찬란한 문명을 피워냈고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첨단과학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시대를 야만이라 부르는가? 역사이래로 문명은 끊임없이 발전해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자본주의의 틀 속에서 우리의 행복은 '돈'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정의 내려진다. 사람은 돈만을 먹고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시대의 많은 이들은 돈이 없어서 굶고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돈이 없으면 불편해지고 불안해지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하고 나아가 돈을 모아야 한다. 한마디로 돈의 노예인 것이다. 이 돈이 없어서 세계 곳곳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며 고통속에 살아간다. 또한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왔다지만 인류의 역사에는 끊임없는 전쟁과 가난이 있어왔다.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인간은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이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또 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어쩔때는 노골적으로 돈과 자원이라는 이름으로 인해서 말이다. 야만은 우리시대에 결코 없어지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재포장되어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이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인류 문명의 발전은 끊임없이 도처에 불평등과 타락을 가져왔다고 하는 루소의 주장과 통한다. 우리사회에서 야만은 불평등의 다른 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도정일 교수는 루소의 주장과 그 궤를 같이 한다.(단적으로, 발제중에 젊은이들에게 '농촌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야만의 두번째 사전적 정의는 '교양없고 무례함이다' 그렇다. 우리는 무례한 시대, 즉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동영상에 나왔던 용산참사도 그 예외는 아니다. 많은 이들은 그것이 이명박정부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방적인 잘못이며 폭력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것은 피상적인 분석이다. 용산참사의 근본적 원인은 재개발에 있으며 그 재개발은 '뉴타운'이라는 장밋빛 희망에 포장되어서 서울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강요되었다.(4.19 총선에서 뉴타운을 공약으로 내세운 많은 이들이 당선되었다) 용산에서 살고/장사하고 있던 사람들의 철거를 강요한 것은 용역이나 경찰이 아니라 우리네 보통사람을의 욕망의 결집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 사람들의 욕망을 즉, 뉴타운을 실현하기 위해서 걸림돌이 되는 이들을 법과 국가, 그리고 공공의 이익이란 명분으로 용역과, 경찰의 얼굴로 몰아냈을 뿐이다. 즉 용산 참사는 다른 어떤이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야만적인, 욕망의 굴절된 자화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 야만은 인류문명의 필연적인것이며 그 극복가능성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도정일 교수는 인문학의 네가지 책임을 말했다. 역사, 문명,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책임이 그것이다. 그리고 인문학은 인류가, 지난 세월의 야만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정신적, 도덕적 '다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사실 어떤것이 야만적인가 알고 있다. 나치가 그러했고, 스탈린이 그러했고, 우리와 가까이로는 일본제국이 그러했다. 그러한 명백한 과거의 야만 외에도 우리 현실/주위에도 여전이 야만은 반복되고 있다. 다만 우리 가까이 있기에, 우리가 실제로 그 야만의 일부기에 명백하게 볼 수 없을 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야만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은 우리 사회에게이기도 하며, 우리 자신에게이기도 하며, 나아가 전 세계의 한 시민으로서의 개인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도정일 교수는 발제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자와 시민들의 질문에대해서도 결코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의도적이었던 의도적이지 않았던 결국 답은 우리 스스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여러 시민들의 질문에서도 있었듯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 의외로 잘 알고 있다. 자원을 낭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고,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고, 용산참사 분향소에 방문하고 여러 집회에 참여함으로서 행동해야 함을 알고 있고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타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실천하고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른사람들에 대하여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지 않고 야만적으로 살아간다고 비난하지만 정작 우리는 분통만 터트리고 실천하지 않고 있다. 도정일 교수는, 또 사회자인 홍세화 선생님은 말한다. 남의 잘못에 분통만 터트리지 말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실천해 나가고 가까운 이웃과, 친구와 가족들에게 그 실천을 전해나가자고. 그러한 실천이 또 그러한 운동이 비단 현 정부의 야만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야만을 극복하는 방법인 것이다.

포럼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질문을 드렸다. 책과 여러가지 정보의 홍수시대에서 어떤책을 읽어야 하고 어떤 지식을 쌓아야 하는지. 도정일 교수님은 고전을 얘기하셨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질문들은 우리시대에서 여전히 유효하며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선생님께서 우리로부터 수천년 전의 학자인 플라톤을 가장 열심히 보시는 이유일 것이다.

인류문명이 만들어낸 현시대의 최대의 오만중 하나인 우주비행체 개발, 오늘 대한민국은  그 문명의 열망의 꽃인 우주 비행체 발사에 실패했다. 국민으로서 매우 안타까운일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오늘의 이 실패에서 인간문명이 완전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문명발전을 해야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도정일 교수의 저서'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에서도 썼듯이 기술과 기능 자체보다 그 정당성과 사용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되지말고 돈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첨단 과학 기술 사회에서, 또 계속되는 야만의 시대에 발딛고 살아가는 우리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며, 또 다짐하고, 끊임없이 아는 것을 실천해나가야 하는 절실한 이유이다. 그런점에서 단순히 인문(人文)학자로서가 아닌 인문(引問:질문을 끌어내다)학자로서의 도정일 교수와, 또 우리시대의 인문학의 소중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노학자과 젊은이의 만남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나는 오늘 그를 보며 희망을 보았다. 인류 문명의 야만은 인간의 필연적인 것이 아니냐는 그 근본적인 회의에 70을 살아온 노학자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젊은이에게 희망이며 든든함이다. 아마도 도정일 교수가 살아있지 않을 2050년에도 우리가 다음 세대로 전해야 할 희망이다. 희망을 발견한 좋은 포럼이었다.


# 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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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포럼의 장점은 시민들의 활발한 질문과 답변으로 인한 소통인데 번번히 질문보다는 제안과 의견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이들이 질문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질문을 써서 내던가, 질문시간을 2~3분정도로 제한하던가 하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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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의 내용과 편집은 좋았습니다만 포럼의 도입으로서 조금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오늘의 주제가 야만이었고 오늘 날의 현실이 그 자체로서 야만적이긴 하지만 이어지는 긴 발제와 토론을 고려하면 조금더 간단하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만 띄우는 식으로요.


 시민포럼에 참가하는 시민들에게라도 한겨레 신문을 나눠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정적인 측면이 부담이 된다면 할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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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포럼이 끝나면 발제자의 발제문이 올라오던데 혹시 시민 포럼 하루 이틀 전에, 아니면 포럼진행 전 배부를 통해서 발제문을 나눠주는 것은 어떨지요. 가끔씩은 발제문을 청중들이 갖고 있다고 전제하고 발제를 하시는 분도 있으신 것 같고, 또 발제문을 참고하면서 발제를 듣는다면 전체적인 맥을 잡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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