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담담하고 유유한 한 양반의 삶 -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 by 다름과틀림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
문숙자 지음 / 너머북스
나의 점수 : ★★★★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보는 것은 흥미롭기 마련이다. 노상추라는 조선후기의 한 평범한 양반이 17세부터 84세까지 꾸준히 일기를 썼다.(1746 - 1829) 우리는 이 일기를 통해 우리가 잘 몰랐던 시대의 평범한 양반의 일생을 관조할 수 있다.

이책은 순전히 심심풀이로 읽었다. 그만큼 가볍고, 부담없게 읽었다. 책의 서술역시 담담하며 유유하다. 저자의 편집으로 상황별로, 시간순으로 적절히 엮인 그의 일기장은 크게 18개의 챕터와 각각의 챕터에 3~5개의 작은 주제별로 나눠져 있다. 밥먹으며, 공부하다 쉬며, 자기전에 짤막짤막하게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68년이라는 기나긴 세월동안 평생을 한집안의 장남으로(실질적으로는), 또 가장으로, 무관으로 치열하게 살아간 그의 삶을 이렇게 심심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역사의 잔인함이다.

우리는 나라를 중심으로, 왕을 중심으로, 영웅을 중심으로 역사를 배운다. 시대의 정점에 선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 역사를 보는 것이다. 이는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산을 보는 것과 같다. 하지만 산은 산꼭대기만, 또 꼭대기를 잇는 능선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의 꼭대기, 즉 봉우리가 있기 위해서는 그를 떠받치는 봉우리보다 훨씬 넓은 거대한 산자락이 존재한다. 하늘을 찌를듯한 산봉우리는 산을 정복하려는 등산가들만의 것이지만 그 아래의 세상을 품고 있는 무수히 많은 계곡과 산자락은 보통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며 또한 우리 생활의 작은 쉼이 되는 것이다. 이름 없는 양반의 일기를 통해 조선시대를 들여보는 것은 산기슭을 여유롭게 걷는 산보와 같은 것이었다.

물론 양반이라는 계급은 그 자체로 평범한 민중은 아니었을것이다. 적자였고, 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지낸 이 노상추라는 사람을 결코 평범한 백성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일기에서도 그러한 문제점들, 모순점들이 잘 드러난다. 신분차별의 문제, 적서차별의 문제, 남녀차별의 문제, 지역차별의 문제 등등.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그러한 성리학적 관습에 의한 많은 차별들이 한 양반의 일기장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차별이 그렇게 거부감이 들게 다가오지 않는다. 워낙 덤덤하고 유유한 저자의 서술방식때문이기도 할 것이겠지만, 그러한 분위기는 그 시대의 지배적 관념이었다. 노상추는 나름대로 균형잡힌 사고를 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의 일기의 많은 부분에서 그러한 부분이 드러난다. 또한 그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다. 적과 서의 인륜을 따져 구분하고 양반과 상인, 노비를 구분했지만 그 한편으로는 부모자식간의 정을 외면하지 않았고 농민을, 농업을 높이 평가한 자였다. 그 또한 지역차별(남인, 영남)의 피해의식이 있었고, 감옥살이도 잠시 하는 등 피해자의 입장에 서본적이 있었다(물론 어디까지나 양반이었기에 그 바닥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신념과 사고 방식은 당대의 사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신분과 성별과 지역의 차이가 당연한 것이었고 그것이 행위준거이자 도덕 규범이었기에 그는 그에 충실한 범위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시대의 모순에 대한 근원을 찾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우리시대의 도덕관점과 사고 기준에서 그 시대를 비판하는것은 바람직하지도 못하고 영향을 끼치지도 못할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을 통하여 단순하게 생각했던 남-녀, 적-서, 정부 - 첩, 반 - 상의 선악관계를 조금은 복잡하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한 시대적인 차이를 제외하면 그의 일상은 우리와 가깝다. 먹고, 살며 사랑하고, 성공과 권력을 꿈꾸며, 이웃/친척과 더불어 살고 다양한 갈등과 함께 치열한 삶을 살아내며 자손을 낳고 늙어가며 죽는다. 젊은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그의 행적과 고뇌가 담겨있는 그의 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의 삶을 바라보며 우리 삶을 또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보는 것은 나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이기에 그 거울로서의 독서의의를 갖는다.

우리는 항상 우리 시대가 최선의 시대라 생각하며 마땅히 그러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을 부정하지 않는 다면 우리는 결국 낡은 사고방식과 함께 퇴보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이 낯선이의 삶을 몇백년 뒤에 바라보듯 다른 어떤이들이 우리의 삶을 먼 훗날 지켜볼 것이다. 우리의 삶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또 우리의 고민과 갈등을 보편화 시킬 수 있게 조금이라도 여운이 우리 맘속에 번진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이 결코 낭비가 되진 않을 것이다.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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