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재앙의 장밋빛 미래. by 다름과틀림

"고난만이 단결을 가져올 수 있다."  
                                   - 베링턴 무어-

역사이후로 인류는 끊임없이 공동체 단위가 확장되어왔다. 원시시절의 부족에서 출발해 농경문명을 일궈냈고 도시국가 시절을 거쳐 현재의 근대국민국가에까지 이르렀다. 최근에는 유럽연합을 통해 대륙단위로까지 공동체가 확장되기 시작했으며 세계시민주의, 세계화라는 낯설지만은 않은 단어들을 통해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도 이제는 상상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시부족국가를 거쳐 군소국가들이 탄생했고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이라는 단일 국가가 한반도를 지배했다. 물론 지금은 남북한이 갈라져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우리나라 법이다. 우리는 지금 제주도와 부산과 서울이 모두 같은 나라인 것이 당연하게만 여겨지고 제주도의 소식, 서울의 소식, 광주의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예전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 또한 그랬을까? 고구려의 북쪽에 사는 사람이 과연 멀리 탐라국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것이며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또 같은 공동체라는 사고가 가능했을까? 경천동지할 사고의 확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각을 넓게 가져보자. 이른바 '제3세계'라고 일컬어지는 아프리카나 동남의 빈소국가들에서 어린아이들이 노동착취를 당하고 또 부족간의 전쟁으로 학살과 강간이 난무해도 우리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기가 힘들다. 물론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우리는 이러한 소식을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금새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에서의 느끼는 만큼의 분노와 관심을 국경밖으로까지 표출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우리의 관심의 문제이기도 하고 국경이라는 법적 한계에 의해서이기도 하다. 만약 콩고나 엘살바도르가 아닌 목포나 김천의 어린이들이 일당 5천원을 받아가며, 또 그중에 반을 점심값이라는 이름으로 떼여가며 일한다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된다면 과연 우리 사회가 가만히 있을수 있을까? 또 우리 정부가 수수방관할 수 있을까? 수많은 분야에서의 단위가 그 규모를 달리하겠지만 여전히 우리의 법체제와 또 공동체로서 가지는 인식은 국가라는 주체가 가장 주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이래로 계속해서 사고의 확장이 가능했던것은 교통,통신의 발달로 상상가능한 범위안에 들어온 것이 그 원동력일 것이다. 즉각적인 소식을 듣고, 대화할 수 있으며, 쉽게 왕래할 수 있다. 하지만 또 한가지 주요한 요인은 공동의 적의 존재일 것이다. 외부의 적이 있을때 내부의 단합은 공고해진다.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인류에게는 분쟁이 있어왔다. 하지만 그 분쟁의 범위는 역사가 진행되면서 넓어져왔다. 먹을것을 위해서 걸어다니면서 싸우던 사람들이 말을 타고 원정을 떠나더니 함대와 자동차, 기차는 세계대전이라는 전 지구적 분쟁까지 가져왔다. 비행기와 장거리 미사일이 지구의 하늘을 누비기까지 그 분쟁의 수단과 범위는 끊임없이 확장되어왔다. 그 확장은 단순히 물리적인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먹을것을 위해서 싸우던 사람들이, 영토, 민족, 종교, 사상 그리고 부와 권력을 위해 싸운다. 전세계적인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편을 갈라 복잡한 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그러한 갈등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서 다양한 대립관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가 사고의 확장을 가져와 공동체 단위를 키운다면 이러한 다양한 관계의 외부의 적들은 그 공동체 내부를 공고하게  단합시킨다. 외부의 적이 강할수록 내부의 공고함도 더해지는것은 당연한 법니다.

세계시민주의, 즉 세계의 모든 인류가 국가를 초월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써 보는 하나의 이상을 위해서는 개인의 사상이나 행동반경을 세계단위로 넓힐 수 있는 기술이나 법제체의 확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과연 이를 위해서, 또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하더라도) 세계 전체의 공동의 적이 설정된다면 수많은 갈래로 갈라져있는 인류가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공동의 적은 누구인가? 혹시 외계인이 지구에 오게 된다면 의외로 쉽게 인류는 단합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외계인의 출현을 마냥 상상하며 기다릴 수는 없는 법이다. 또 한가지 공동의 적이 있다면 아마도 환경재앙이 될것이다.

거대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의 시작에는 각국의 뉴스에서 재난을 보도하는 방송이 심심찮게 나온다. 또 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다국적의 과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댄다. 큰 자연재해 앞에서 사람들은 국적과 피부색과 언어에 상관없이 서로의 손을 붙잡으며 같은 인간임을 느낀다. 굳이 지진이나 태풍같은 자연재해가 아니더라도 전 지구적인 환경오염과 온난화는 이미 피부로 느껴질만큼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한 개인이, 또 개별국가가 극복하기에는 그 규모가 초국가적이다.

 중국에서 발생하는 황사가 한국,일본, 멀리 미국 사람들의 호흡기를 위협한다. 하지만 우리가 중국의 공장데 규제를 가할수는 없다. 아마존의 밀림이 사라져 간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우리가 어떠한 제제를 가할 수 없다. 온난화 현상으로 해수면이 상승하여 적도부근의 섬은 잠겨가지만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하기 어렵다. 하지만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누적된다면 서서히, 혹은 갑자기 이 문제들은 우리 모두의 또 자신의 문제가 될것이며 우리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

물론 UN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이러한 사안이 논의되고 있다. 반기문 UN총장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기후협약이다. 하지만 아직 환경오염이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전 지구의 환경보다 우선시하고 있는 듯하다. 선진국들은 선진국들대로, 또 개발도상국들은 개발도상국들대로 환경에 대한 위협을 말하면서도 그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간다면 인류의 미래는 뻔하다. 그것이 가까운 미래냐, 먼미래이냐만이 남았을 뿐이다.

환경오염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면 두가지의 극단적인 상황전개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가지는 최악의 결과인데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 의존해 부와 권력을 가진 계층만 생존할 가능성이다. 이미 물, 식량등의 품질에 따라 그 가격이 결정되고 이것은 부와 권력에 따른 환경분배가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무농약쌀, 빙하수, 유기농 과일등은 점점 더 비싸지고 있고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농약이 많이 들어간 곡식, 질이 떨어지는 물등을 먹는다. 수도나 전기등이 민영화 되면 그 경향은 더욱 심각해지고 의료민영화로 인해 보건까지도 양극화가 될 것이다. 환경오염 정도나 기후변화에 따라 주거지도 줄어들것이고 줄어드는 주거적정지는 역시 자본에 의해 분배될지도 모른다. 결국은 최악의 상황에서 인류가 멸망하겠지만 그것이 아주 급속한 속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과정 속에서 철저하게 환경은 분배의 양극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것은 부의 불평등이나 자유의 불평등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삶을 위협하는 비인간적인 불균형일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점점 더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을 인류 공동의 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위해 전 인류가 손을 맞잡는 것이다. 국제 기구등이 더욱 강력해져서 초국적인 규제를 통해 오염원인들을 줄여나가고 초국적인 과학기술 연구를 통해 원인들을 찾아내고 해결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화와 양보를 통한 협력으로 재난에 대한 대비와 구제를 동시에 해나가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함께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지금도 수사적으로는 동원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힘이 없다. 인류의 명운이 담긴일이니만큼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점점 공고해져나가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전 인류가 서로를 인간이라는 이름과 가치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실천이 과연 언제시작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인규가 파편화 되고 개별화 되서 무력하게 멸망할지도 모르고 환경오염이 더 심해져 인류가 연합한다 해도 그 시점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돼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인류의 이성을 믿는다. 더 늦기 전에 모든 갈등을 잠시 양보하고 인류의 생존이라는 화두 앞에서 만큼은 뭉칠 수 있었으면 한다. 환경재앙이라는 거대한 공동의 적과 싸움으로써 전 인류가 공동체 의식을 갖고 사고의 지평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또 더 나아가 존레논이 꿈꾸던대로 국경이 없는 세계가 열리리라는 장밋빛 미래를 나는 감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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