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무관심이 문제가 아니다. by 다름과틀림

 20대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들 많이 한다. 심각한 문제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자연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20대에서는 정치에 관심 없는것이 일종의 매너이자 미덕이다. 친구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서 누구나 한두마디씩 대통령 욕을 마치 유행하는 개그마냥 하지만 그 이상 나가는 것은 분위기를 깨고 분란을 조장하는 무례일 뿐이다. 농담처럼 던지고 이내 서로의 취미얘기, 연애얘기, 드라마나 스포츠 얘기로 흘러가는게 자연스럽다. 쏘쿨(So-cool)한 젊은 이들은 자신은 정치같이 복잡하고 머리아프고 더러운 것에는 일말의 관심이 없다고 쿨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정치에 관심없는 것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이 살면서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은 정치 말고도 많다. 또한 토익 점수 올리고 스펙쌓고 드라마 챙겨보기에 바쁜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다.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1박 2일이나 찍고 주먹질을 하고 있는 마당에 약간의 관심을 가져봐야 변하는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제발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지금 이 글에서 강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중요한 것은 정치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다. 다른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젊은사람들은 더이상 신문을 보지 않는다. 뉴스도 잘 보지 않는다. 인터넷 뉴스가 있다고는 하나 선정적이거나 흥미위주, 아니면 돈이 되는 기사의 클릭수만 늘어간다. 사회를 어떤시각에서 바라보느냐, 어떤 철학과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 풍부한 상식이나 인문학적 소양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는 제쳐두고서라도 최소한 나와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조차도 사라진 것이다. 이미 우리 '모두'의 이익이나 '정의'라는 개념은 먼지나는 책속에만 쓰여져 있는 고대의 신화이자 전설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성공과 이익, 그리고 욕구만이 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점점 '함께'라는 미덕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학생회는 점점 와해되어가고 협동정신이 필요한 운동도 별로 하지 않는다. 동아리도 예전같지는 않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뭉친 '스터디'만이 번성할 뿐이다. 물론 시대가 변한다. 뭐든지 으쌰으쌰 해야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뭉쳐야 할 때와 사안은 있게 마련이다. 소위 말하는 '88만원 세대'는 뭉치는 것 자체에 장애를 나타낸다. 심지어는 그들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등록금에 있어서도 그렇다. 누군가는 해결해 주겠지 하거나, 어쩔 수 없지 않겠냐고 말하는게 대다수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또 운영되는지, 그러한 시스템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수동적이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협한다. 사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고민도 없고 기준도 없기에 죄책감이라든가 부채의식같은 것은 사라져 간다. 현실 추수주의는 이제 결고 비아냥이나 비판적 사상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기적이다. 또 개인적이다. 아무리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이라 해도 우리 모두는 어느정도의 이타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질문이 무색해질 만큼 사회는 철저한 이기심을 요한다. 신문을 보는 학생은 '딴짓'을 하는 학생이다. 고등학생이 소설 나부랭이를 읽으면 부모는 한숨을 내쉰다. 어떤 성격이든 불문하고 집회에 참여하면 심각한 문제아가 된다. 신문, 소설, 집회의 의미를 구구절절 읊을 생각은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의 처지와 입장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라져가고 부모와, 기업과, 국가와 사회는 또 그것을 원한다. 파편화는 시대정신인 것이다.

 이것이 비단 젊은이의 문제인가? 또 젊은이의 책임인가? 대한민국의 현재 젊은이가 어디 외계 행성에서 짠 하고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젊은이들만의 책임도 문제도 아닌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내가 굳이 젊은 이들에게 이러한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유는 그 결과가 우리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그런 세태를 심화하고 이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가 앞장서서 서로를 소외시키고 다른사람의 고통에 눈감으면 결국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창시자라는 애덤스미스도 당장 생계에 지장을 받지 않으며 쉽게 뭉칠수 있는 '소수'의 이익집단의 무서움을 역설한바 있다. 결국 그러한 '자유'안에서 피해보는 것은 능력이 부족하거나, 운이 없거나, 약한 다수의 사람들이다. 확률로 설명하자면 우리가 무능하거나 운이 없어서 가난하고 고통받을 확률은 80%이다.

 우리 모두가 개인의 이기심을 최대한 발현하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소박한 신앙을 아직도 갖고 있는 자가 있는가? 그러한 19세기의 믿음을 갖고 있기에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 아프지 않은가?

 노력하지 않는사람들의 낙오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현실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점점 삶의 가치와 현실을 맞바꾸는 가슴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 비율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현실이 점점 비참해진다면 현실적이라는 것이 바로 비참한 사상이 되는 것이다.

 긍정의 삶이라 한다. 안좋은 일이 있어도 긍정, 화나는 일이 있어도 긍정. 긍정적이란 것은 좋은 말이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부정적인 현상들을 앞에두고 또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를 눈앞에 두고 긍정의 삶만을 외치는 것은 자기최면일 뿐이다.

 상황이 아무리 악하고 어려울지라도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화를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 물론 우리는 노력해서 성공을 일궈낸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노력했으나 실패한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을 우리는 듣거나 본 바가 있는가?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거나 한때의 게으름으로 인해 평생을 저당잡히는 사람들에게 노력하지 않은 대가라고 쿨하게 말해주기에 나는 용기가 부족하다.

 소박한 믿음, 현실적감각 , 긍정의 최면, 노력의 신화를 난 믿지 않는다. 차라리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관심을 갖고 또 조금씩 가난해지고 불편해진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어릴적 동화를 붙잡고 살겠다.

덧글

  • 소쿠리 2009/08/03 15:00 #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대의 문제점을 잘 지적해 주셨네요. 문제는 20대 중 대다수들이 이런 지적을 보고도 오히려 발끈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글루 뉴스비평 밸리에 20대 관련 글들을 보니 좀 한심하더군요...
  • 정현 2010/04/08 11:09 # 삭제 답글

    좋은글 모셔갑니다^^
  • 젊은노인 2010/04/08 17:55 # 답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읽어봤는데 새롭네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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