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무슨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by 다름과틀림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읽던중
해방 직후 미군 진주후 최초의 포고문을 발췌한 것을 읽고
전문(全文)을 찾아 보고 그에 대한 관련 자료들을 보강하여 참고하려고 글을 씁니다.
자료가 보강 되는대로 계속해서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 포고문

9월 2일 작성되어 9월 5일 서울 상공에  하지중장의 이름으로  뿌려졌다. (일본어)
* 참고로 인천상륙작전은 1945년 9월 8일 오후 1시였다. 

〈남한 민중 각위에게 고함〉

미군은 근일중 귀국에 상륙하게 되었다. 당군은 일본(本日) 동경에서 조인될 일본군항복에 기하여 연합국대표로서 상륙하는 것으로 귀국을 민주주의제도하에 있게 하고 국민의 질서유지를 도모함도 또한 금 동상륙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조직의 개변은 일조일석에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그 안녕질서에는 큰 혼란 及 유혈을 동반함을 명심할 것이다. 여하한 개혁도 서서히 진행되므로 그와 함께 민중에 있어서도 장래에 예비하여 각자 及 국가건설을 위하여 또한 민주주의하 생활의 유지를 도모하기에 각자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玆에 있어서 當軍은 상술 목적을 신속리에 수행하기 위하여 한국민중에 대해 좌기 제점을 포함하여 절실한 원조협력을 요망하는 바이다.  

민중에 대한 포고 及 제명령은 현존하는 제관청을 통해 발표되는 것으로 연합군총사령관으로부터의 명령은 제씨의 원조에 그 본의가 있는 것으로서 각위는 엄숙히 준수여행(遵守勵行)하며 불행히도 위반한 자는 처벌당할 것이다. 즉 각자는 通常과 여히 생업에 전념하고 이기주의로 날뛴다던가 일본인 및 미군상륙에 대한 반란행위, 재산 及 기설(旣設)기관파괴 등의 경거망동에 휩쓸린다던가 하는 행동은 이를 엄히 피하므로로써 평화를 유지하고 평시와 하등 변함없는 생활을 할 것이다. 이것은 국토건설에 박차를 가하며 또한 각자의 일상생활의 향상을 꾀하는 소이라 할 것이다. 미군당국에 있어서도 각자의 생활에 부자유를 초래할 명령을 발함과 같은 일을 극력 피하고자 하는 바인즉 각자의 충심에서의 협력을 절망하는 바이다.  

서기 1945년 9월 2일
재조선미군육군사령관
육군중장 죤 알 하지

출처 : 국가기록원  - 링크



# 여기에 대한 언급 및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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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기록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집필. 2006. 12. 01.>
  
- 그러나 한국인들을 40년간 지배했던 일본인들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태도에서 미·일간의 흥정과정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철저히 소외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맥아더의 포고는 군정 설립이라는 현실적 상황에 직면해 한국인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한 것이었다. 또한 이렇게 억압적인 내용들이 포고된 이면에는 일본의 공작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안정과 무사귀환을 바라는 일본이 미국과 진주 전에 접촉해 건준의 치안유지 노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공산주의자들 또는 ‘불량자’들의 발호로 “조선은 치안이 부재하므로 일본인에 대한 치안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것이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식의 고압적인 어투로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미국과 소련 연합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적국인 일본의 식민지였으므로 적국과 동등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미·소는 한국을 당연히 적국으로 간주했으며 모두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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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건호. 8·15의 민족사적 인식 - 해방전후사의 인식(1979) 中>
 
- 오키나와에서 한반도로 진주한 미 제 24군단장, 즉 주한미국사령관 하지는 무슨 까닭인지 한국민족을 해방민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1945년 9월 2일자로 서울 상공에 뿌린 최초의 비라도 해방에 들끓고 있는 한국민중에게 해방을 축하한다는 문구는 단 한 줄도 없고 다만 자기의 포고와 명령을 지켜야 하며 일본인과 미상륙군에 대한 반란행위, 재산과 각종 시설의 파괴행위는 처벌될 것이라는 경고부터 했다. 해방민족에 대한 첫 포고문치고는 놀랍게 냉랭하고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9월 9일 제 2포고문에서는 경솔 무분별한 행동, 즉 미 상륙군에 항의를 하면 "인민을 잃고 아름다운 국토가 황폐화될 것"이라고까지 경고했다. 

- 일부 시민들이 '해방군'인 미군을 환영하고자 외출했다가 경비구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일경의 총격을 받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한국인들의 항의에 미군당국은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살인 일경을 오히려 두둔했다.

- 백범이 서안에서 일본의 항복소식을 듣고 무릎을 치며 개탄, 앞날을 염려한 것은 바로 이런 사태가 올 것을 예견한 때문이었다.
 
- 주한미군사령관 하지는 서울에 진주하자 구총독관리인 일인(日人)들을 '행정고문'이라는 명칭으로 그냥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고 특히 당시 민중의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던 총독시대의 한국인 경찰관리들을 그대로 유임시킴으로써 민중의 원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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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덕규. 미군정의 정치사적 인식 - 해방전후사의 인식(1979) 中>
 
- 이상의 포고문을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성격으로서는 먼저 미군은 한국인이 기대하고 또 생각했던 것과 같은 해방군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보다는 오히려 점령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 미군의 한반도 진주 자체가 한국인의 자발적이고 자기 결정을 전제로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선택 가능성을 차단시켜버리고 어느 일방의 이데올로기에로 유입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의 이데올로기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식 민주주의였고, 그러한 성격의 정치질서가 당시의 한국인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한국사회가 그것의 수용과 발전을 위해 어떠한 조건들을 구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점검도 없이 일정한 이데올로기적 방향에로만 유도시켰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결국 한반도로 하여금 그 뒤의 이데올로기의 대결이라는 1950년대 냉전구조의 첨예화에로 조성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 미국정이 한반도에서 점령군적인 성격을 강하게 보여주는 표현 ①통상과 같이 생업에 전념하고, ②일본인 및 미상륙군에 대한 반란행위는 엄단하며, ③모든 점령과 시책은 일본식민지적 통치구조를 경유해서 실시한다.


참고할 만한 포스팅
 - 존 하지, 한국인을 적으로 간주한 미군
 - 바로 이 미국 포고문이 친일파들의 기득권 계속 유지의 근거가 되었다
 - 미군과 소련군은 해방군이냐 점령군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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