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 현상은 한국에만 있는 현상? by 다름과틀림

세계에서 가장 큰 10개의 교회중 일곱개 혹은 아홉개가 한국에 있다고 한다. 교회 크기를 어떤 기준이으로 매기는 지에 따라 그 순위가 오락가락 할테니 일곱개인지 아홉개인지 굳이 따지지는 않겠다. 중요한 것은 국민수로 보나 신자수로 보나 한국에 대형교회가 분명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국의 민족성과 특수성으로 비난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나 또한 한국인의 성향이나 신자유주의같은 생각으로 한국의 대형교회를 생각 해 왔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분명한 것은 현 시점에서 한국교회의 대형화현상이 세계에서 제일 심하다는 것이다. 그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에 대한 의견이 갈릴 뿐 그러한 상황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대를 넓게 보면 그것이 비단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각 도시에서 빠짐없이 관광 명소로 등록되어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어느 도시를 가나 그 도시의 구시가지(old town)의 가장 높고 화려한 건물은 교회인 경우가 많다. 특히나 더욱 화려하고 거대한 교회로 기억되는 도시가 생각해 보면 꽤 있다. 피렌체의 두오모, 쾰른 대성당, 밀라노의 대성당, 바르셀로나의 사그라 파밀리아 대성당등 교회가 그 도시의 상징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는 아주 작은 도시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중세시대의 유럽의 도시의 중심이 교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의 한국의 대형교회에 비하면 그 규모 면에서 비교적 작을 수도 있겠으나 당시의 기술력과 인구규모를 감안한다면 유럽의 대형교회 현상도 굉장했다. 유럽의 교회는 비단 규모뿐만이 아니라 그 건축 양식이나 위치, 영향력면에서 엄청났다. 교회들의 제각기의 건축 양식들은 당시 예술과 기술의 총체였고 어느 도시, 마을을 가든지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은 광장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관광지로서, 또 예술작품으로서 동경해 마지 않는 이러한 화려함 뒤에는 엄청난 돈과 권력이 필요했을 것이며 그에는 필연적으로 낮은자들의 고통이 수반되었음이 분명하다.

  비단 유럽의 교회 뿐만이 아니다. 예루살렘의 황금 사원을 시작으로 아랍지역의 수많은 모스크,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의 거대하고 화려한 불교 사원이나 불상,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영국의 스톤헨지 등은 모두 당시 기술과 문화의 총체이자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경주의 불국사만 해도 당시의 신라 백성들의 종교적 열망을 담은 대형 종교 건물이었다. 위의 수많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 상징물은 당대의 부와 권력의 중심이었으며 다른 어떤 성격의 단체나 건물보다도 더욱 대형화 된다는 것을 알 수있다. 오늘날의 한국의 대형교회현상이 대단히 유난스럽거나 독특한 현상이라고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한국의 대형교회현상을 다른 사례들과 같다고 볼 수만은 없다. 우선은 이러한 과거나 다른 종교의 사례는 권력에 의한 강제력을 통해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적어도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사업은 아니다.  과거의 제정일치 사회와 분리되어있는 현재의 체제가 다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형교회들의 상층부에 정치권이나 기업계의 큰 손들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고 교회 내에서 교역자의 의지와 권위가 매우 강력한 것이 현실이다. 자본이 권력을 장악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형교회의 건축과 유지에는 거대한 자본이 요구되며 또 규모의 경쟁에 의해 자연스럽게 선택현상이 일어나는 원리로 볼때 종교의 권력은 과거와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건축의 예술성에 있어서도 다르다. 위에서 든 많은 과거의 사례들은 매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각기 시대의 예술과 건축양식의 총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현재의 한국 교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어떠한 가치를 가질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예술과 건축양식을 대표 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크게 다른 점은 과거의 사원들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열린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접근성이 좋은 광장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서민들의 삶의 한 터전이었다. 각종 관혼상제는 물론이고 시계탑과 종을 통해 사회적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사회 전체를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차이점은 당대의 대형 사원들은 당대 사회의 대표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형교회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 을 하고 있으며 어느정도의 대표성을 띠고 있느냐 하는 질문이 남는다. 한국사회에서의 대형교회는 한국 인구의 20~30%만을 차지하는 기독교인들의 문제로만 대두되고 있지 않은가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대형화 현상이 유일무이한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여러가지 이유중 하나는 과거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서 이다. 그런 면에서 과거에 비춰볼때 한국교회의 대형화 현상은 결코 긍적적으로 볼 수 없다. 중세에 혹은 근대에 유럽의 기독교와 동양과 아랍의 많은 종교의 부흥은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되었다. 종교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점차점차 그 영향력이 커짐과 동시에 부패와 타락의 온상이 되었으며 세력이 커진 종교의 영향력의 확장에 대한 욕망과 부패한 권력의 내적인 에너지의 잘못된 발산으로 십자군 전쟁이나 종교전쟁등의 재앙을 낳았다. 9,11사태로 표상되는 우리 시대에 횡행하는 각종 테러들도 미국 기독교의 제국주의적 욕심이 큰 책임을 갖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현재 한국에서도 기독교 지도자들의 정치적 참여가 급증하고 있으며 부패와 타락의 징조가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대중들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심각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내의 자성의 목소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때 찬란한 기독교 문화를 꽃피웠던 유럽에서 기독교신자는 급감하고 있다. 처지가 뒤바껴 오히려 한국 교회들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권으로 선교를 가야 하는 실정에까지 이르게 된것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종교의 끝없는 욕심이 정작 대중들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전하라고 하신 것은 기독교가 갖고 있는 부와 권력도 아니고 탐욕의 마음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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