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리영희 논쟁의 먼지를 털며 by 다름과틀림

 해묵은 리영희 논쟁의 먼지를 털며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화’ 를 읽고.

 

 

최초의 철학자라 일컬어지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 삼척동자도 그 명제가 틀렸음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탈레스를 착각에 빠진 멍청한 늙은이라 하지 않고 인류 최초의 철학자로 교과서에 쓴다. 그 이유는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사유의 지평을 연 것이다.

 

유명한 고전들을 읽어보면 지금의 과학기술에 비춰볼 때 잘못된 부분이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부분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전을 읽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사상과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세계의 생각과 사유가 그들을 통해서 이룩되었으며 그 오류에 대한 반성과 수정으로 전진해왔기 때문이다. 그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세계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위대한가?라는 물음에는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생각이나 주장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 시대와 그 발언의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2006년에 리영희 논쟁이 한창 있었던 것 같다. 쟁점이 된 <전환시대의 논리. 1974>와 <우상과 이성.1977>이 출간된지 30년도 넘었을 때이다. 조선일보는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에 실린 마오쩌뚱과 문화대혁명에 대한 사실의 오류를 붙잡고 그가 말했던 진실이 허위였음이 드러났는데 시인하지 않는다며 리영희 선생의 이성을 운운하고 있다. 이에 한겨레의 권태선 논설위원은 리영희선생이 그의 후작을 통해 잘못을 시인 하였으며 나아가 문화혁명에 대한 조선일보의 주장또한 절대적인 진실이라 단정 할 수 없고 현재 중국에서도 문화혁명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반론했다.

 

내가 3년 전의 해묵은 논쟁을 꺼내는 것은 어떤 시사적인 의의를 가진다거나 새로운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제 완독한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리영희 선생님의 삶이 이런식으로 왜곡되어 평가절하되는 것이 개인적으로 안타깝고, 들여다 본 몇 개의 논쟁들이 나에게 약간은 미흡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억의 투쟁이라고 하지 않는가? 즉, 해묵은 논쟁의 먼지를 털어 나의 기억속에 그의 인생을 더욱 선명히 새기려는 노력이다.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어떤 사람의 과거의 주장은 그대로 현재에 대입하여 비판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일부분의 오류가 있다고 해서 전체를 부정하고 비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리영희 선생은 그 시절의 ‘의식화의 원흉’이었고 그의 집은 ‘진보의 성지’였다.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은 격동의 7080세대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의미있는 책이었고 의식있는 대학생들의 상징과도 같은 책이었다. 책의 의의는 그 시절에 그러한 책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수감생활을 하고, 그러한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혔던 안타까운 과거의 사실과 그 시대를 살았던 대학생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책으로 꼽힌 각종 설문조사에서 드러난다. 그러한 명성은 그가 단순히 ‘문화혁명’을 미화하고 마오를 찬양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리영희 선생은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반공주의(매카시즘)의 틀을 깨는 하나의 상징으로서의 인생을 살았다. 그를 사상가라고 칭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공주의가 무슨 사상이라도 된다면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반공주의는 사상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그저 금기였고 강요였고 하나의 강제적인 명령에 불과했다. 따라서 나는 그를 사상가라 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그러한 강요된 무거운 침묵과 족쇄 속에서 틀을 깨고 가장 앞장서서 다른 사고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지평을 연 것에서 그 선구자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미국, 독일, 일본에서 널리 인정받는 국제 분석가였고 그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정권관계자들에게도 존경받는 훌륭한 저널리스트였으며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교수였으며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추악함과 참전의 부당함을 알리며 베트남의 현실을 함께 슬퍼한 휴머니스트였다. 또한 엄청나게 독서하고 공부한 연구자였다. 숱한 베스트 셀러 저자라는 칭호는 그저 따라올 뿐이었다.

 

그의 삶에 있어서 일관된 자세는 그가 밝혔듯이 언제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또한 시대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는 언제나 ‘먼저’ 말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앞서 말해야 했기에, 또한 완전히 차단된 금단의 구역을 들여다 보려 했기에, 아무도 열지 않은 지평을 열어야 했기에, 숱한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야 했기에 그가 사실(fact)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었다. 그것이 없다면 그는 인간이 아닌 신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비판은 당대에 나왔어야 한다. 만약 당시에 이러한 '다름'을 억누르거나 막지 않고 어떤 공론의 장으로 끌어 내어 소통할 수 있었다면 7080의 시대가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는 언제나 진실을 추구하고 우상에 도전하려 최선을 다했으며 그의 최선은 곧 시대의 최선과 다름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공부와 연구 그리고 그가 쓴 논문, 기사, 저작들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고 그것은 세계적으로 보나 그 시대의 어느 사람들이 보나 최대한의 객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작 한 두개의 오류를 30년뒤에 끄집어 내 침소봉대하여 시대의 상징인 그의 인생 전체를 비난하려 하기에는 그가 쌓아놓은 금자탑이 너무도 눈부시지 않은가?

 

문화혁명과 마오에 대한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리영희 선생이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 중국은 빨갱이의 나라였고 중국이 밥을 먹고 산다라는 아주 사소한 사실도 얘기할 수 없었다. 모택동은 김일성과 같은 독재자일 뿐이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이름을 말할수 없는 자'였던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그런 중국을 무조건 찬양하지는 않았다. 있는 사실을 있다고 했을 뿐이다. 마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사실 미국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었고 중국 인민이라면 대부분 공감했던 내용이다. 장개석이나 이승만, 김일성에 비하면 마오의 인간적 교양과 이상은 매우 훌륭한 것이 사실이었다. 또한 문화혁명의 결과에 대해서도 어떠한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 대부분 미국의 학자, 관료들의 자료를 이용해 그 취지와 의도에 대해 높이 평가 한 것이며 당시 중국 연구가들 사이의 전반적인 기조였다. 지금에 와서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문화혁명과 마오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권태선 기자의 칼럼에도 나와 있다. 그 당시 한국에서 금기시 됐던 중국에 대한 다른 시각과 이해를 갖고자 했던 그의 생각은 중국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물꼬를 튼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에서 한세대가 지났다. 그는 중국 연구에서 오래 전에 물러난 상태이다.  그리고 자신이 저질렀던 오류에 대해 인정하고 도의적 사과까지 했다. 이런 마당에 그가 연 지평을 확장하고 보다 정확하게, 보다 넓고 유연하게 연구하는 것이 후학들의 몫일 것이다. 막혀있던 입을 연 선배의 업적에 감사하며 그의 뜻을 이어받고 그의 오류를 수정해 나가며 연구를 계속하고 논의를 확장해 나가는 것 말이다. 거인의 어깨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30년도 더 된 때에 이르러 그 세부적인 오류에 대해 공격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그 책이 위대했는가에 대한 방증일 뿐이다.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꺾어서 시대와 타협한 이른바 '뉴라이트'들이 변하지 않고 빛나는 선생의 업적에 흠집을 내려는 열등감의 표현인 것이다. 이제는 노년생활을 보내고 계신 선생의 업적에 흠집을 굳이 내려고 하는 조선일보와 보수학자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노무현의 약점을 집요하게 캐내어 죽음으로 이르게 하였듯이 진보의 상징을 하나하나 무너뜨려 자신들의 승리를 확고히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리영희 선생은 한때 조선일보에 몸을 담았었다(김대중 주필이 수습기자로서 그에게 배웠다). 그를 부인함으로써 이제는 과거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한때 조선일보가 가장 빛났던 순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환시대의 논리' 이후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의 전환적인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이명박 시대를 맞아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림'으로 규정하는 현 시대에 억압에 저항하며 진실을 추구했던 그의 자세과 가치는 더욱 빛난다. 그의 인생에는 ‘문화혁명’에 대한 또 마오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신선했고, 또 그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업적이 많다. 단순히 한 부분 때문에 ‘의식화의 원흉’이자 ‘진보의 성자’로 기억될 뿐이라면 그의 자전적 대담집인 <대화>가 굳이 750페이지나 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1300페이지의 책으로 씌여진 괴벨스의 삶이 위대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반짝’하고 혜성처럼 지나간 한 순간의 스타가 아니라 언제나  선구자로서 같은 자리에서 고고히 밝게 빛나는 시대의 북극성이었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지는 못했지만 그의 삶의 끝자락에 나의 젊은 시절을 걸치고 그를 동경할 수 있음에, 문득 나는 그의 존재에 감격한다. 그저 그 자리에 있어 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관련 칼럼 링크

 

<다시 써야할 ‘전환시대의 논리’>박승준 2006.02.11. 조선일보

<리영희 교수와 ‘우상과 이성’>양상훈 2006.12.13. 조선일보

<리영희의 이성을 묻기 전에>권태선 2006.12.18.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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