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by 다름과틀림

 권위주의 정권에서 집권 엘리트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밑으로부터의 불만과 도전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사회적 요구에 민감했던 것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저항의 계기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면서도, 다른 한편 위로부터 수동혁명적 개혁을 주기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방기하지 않았다.  요컨대 권위주의 시기의 지배 엘리트는 사회를 두려워했고 그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할 줄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국가와 정당체제는 이러한 역할을 상실해 가고 있다. 보수적 민주화의 조건위에 있는 정치 엘리트들의 관심은 우리사회의 일반 대중이 어떤 삶의 현실에 처해 있는지, 그들의 요구가 무엇이고 어떤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지, 정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는 류의 문제가 아니다. 마치 주식투자자들처럼 자신의 정치적 자산의 가치변동에만 관심이 있는 그들에게 민주주의라는 말은 내용이 빈약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p.244

 한국의 정당체제에서 정당이 대표하는 사회균열의 범위와 기반은 매우 협소한 반면, 정당간 갈등의 강도는 격렬할 정도로 강하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갈등의 강도가 높은 이유는 갈등의 범위가 매우 좁기 때문이다.  정당들의 이념적 기반이 매우 유사한 조건에서 정당간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재란, 내용은 없이 감정을 자극하고 적대적 열정을 동원하는 것 밖에 없다. 마키아벨리가 스파르타와 베니스의 예를 통해 강조했듯이, 정치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갈등의 범위를 억압하는 것만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 갈등의 표출을 확대하여 '갈등을 통해 갈등을 완화하는 것'만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당간 갈등의 사생결단적 강도를 적정한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갈등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 즉 정당체제의 보수독점적 폐쇄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요구를 폭넓게 반영할 수 있도록 대표체제가 개방되어야 한다. p.247

 일반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만드는 길은 그들의 이해관꼐에 영향을 미치는 갈등, 결국 우리 사회의 중심 균열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조직하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가 강조하듯이 갈등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엔진'인 것이다. p.253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회적 권리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민주주의는 공고화된다. 소득불평등과 고용불안정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사회적 문제들이 정당, 의회, 정부와 같은 민주적 제도 안에서 처리된다는 믿음을 갖지 못하는 한, 노동시장에서의 취약한 계층들이 투표에 참여할 인센티브를 갖기는 어렵다. p.255

 대의민주주의가 대중권력으로서 기능하려면 유권자의 투표행위가 정치엘리트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유권자 개인의 투표가 정치 엘리트로 하여금 책임성을 갖게 만드는 제도적 효과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대표의 범위가 넓어야 한다. 즉,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균열이 정치적으로 표출되고 조직되는 것이 억압되지 않아야 한다.
 둘째, 선거제도가 유권자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호의 표출을 억압하지 않아야 한다. 예컨대 한 유권자가 A라는 정당을 지지하는 동시에 C라는 정당의 집권을 피하고자 하는 두개의 선호를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특정의 제도적 상황으로 인해 A정당을 지지할 경우 C당이 집권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결국 B정당을 찍게 된다면 이 유권자의 선호는 충분히 실현된 것이 아니다.
 셋째, 개개인이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 모든 투표의 가치가 동등해야 한다. 다시 말해 유권자의 투표가 정당의 의석수에 균등하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p.258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기존의 보수독점적 양당체제를 해체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밖에 없다. p.262
 -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선 두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 다수의 직접 요구로 인한 관철. 그리고, 현재 의원의 대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보수 독점적 양당의 스스로의 결단. 결론적으로 대의제가 죽어야 대의제가 살고, 독점적 양당, 그중에서의 야당인 민주당이 죽음으로써 또한 民主당이 사는 길이다. 즉, 死卽生인 것이다.
제도적 장치 : 결선투표제 run off,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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