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싶은 책 2012 by 젊은노인

안에서 읽을 책들의 리스트. 100여권의 리스트를 만들 생각이다.
일단 만들기 시작하고 수정될 것이며, 몇권은 그 전에 읽을 것이다.

1. <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리프킨은 <유러피안 드림>, <육식의 종말> 등을 통해 나에게 영향을 줬다. 리프킨의 가장 최근 책인 <공감의 시대>는 비폭력대화센터에 쌓여있는 책이기도 하다. 내 화두이기도 한 공감. 뭣보다 이 책은 너무 두꺼워서 밖에서는 못읽을 것 같다.

2. <한국사 산책> 강준만
한번 쭉 읽고 싶긴 하다. 허나 엄두가 나지 않고 있는데... 이때쯤엔 한번쯤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3. <감시와 처벌>을 비롯한 푸코의 저작들.
푸코는 여기저기서 내가 쫓아가고 있는 다양한 생각들의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푸코를 독서하기엔 그 양과 무게가 만만치 않다. 예전에 감옥 안에서 감시와 처벌을 읽으면 쏙쏙 들어온다고 했었는데... 규율권력 메카니즘의 한가운데에서 감시와 처벌을 비롯해서 <안전, 영토, 인구>, <광기의 역사>, <성의 역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등을 쭉 따라가며 읽으면 좋을 듯 하다.


학교폭력, 참을 수 없는 군대의 그림자. by 젊은노인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그 소설은 우리 어른 세대도 공감했고 나도 공감했고 요새에도 적용될 것이다. 학교폭력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학창시절 겪었던 폭력의 경험, 폭력에의 공포, 폭력의 예감등은 누구든 할말이 있을 만큼 흔한 소재다. 그것이 요즈음 '뉴스'라고 나오고 있다.

나는 그래서 학교폭력이 있다는 사실보다 학교폭력이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아니 대놓고 노출돼서 누구나 알고 있던 문제가 '문제시'되는 상황에 주목하고자 한다. 어떤 계기들이, 어떤 사회 흐름이 누구나 시급하다고 느꼈던 학교폭력문제를 이제서야 대두시켰을까. 학생인권조례운동? 진보교육감들? 선거를 전후한 거대한 사회변화? 대학입시거부운동? 도가니? 등등. 앞서 언급한 것들의 연장선상에서, 교차점 어디에서 학교폭력은 뜨거운 감자가 됐다.


-나는 이 일련의 움직임들이 획일화, 군대화의 거부라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특히 학생인권조례는 국가/어른/사회/문화/학교/교사로부터의 일련의 획일화 압력에 대항하는 보호장치라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 나는 학생들의 '거부'가 당연하게도 징집으로서의 군대와 그로인한, 그 외의 모든 사회의 군사주의적 기획/압력/문화에 대한 거부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거부는 지속성과 근본성을 갖기 힘들다. 학생들은 몇년 안에 군대에 가고, 서열화/군사화된 대학과 직장과 사회로 나가게 된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현실'이다. 이 거부에는 대학거부, 병역거부, 양심선언, 파업 등이 모두 포함된다, 또한 청소년은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학교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정신적/사회적/물질적 토대/권력이 가장 적은 시기이기 때문에 청소년만의 문제인식과  해결방식으로 쉽게 해소될 수 없는 갈등원인을 갖고 있다.

- 군대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반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톱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람 자체가 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톱을 사용하는 것이여야 하는 것처럼 군대도 그렇다. 군대가 필요하다고 치더라도 사회 전체가 군대가 될 필요가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칼, 톱, 총 등 위험한 것일 수록 우리는 그것을 조심하고 그 부작용, 위험성등을 더욱 명확히 인식하고자 한다. 그것은 군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사회에서의 군대의 필요성과 사회의 군대화를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인간이 아닌 병사를 키우고 있다. 그것은 '스파르타식'이라는 일부 교사/학교/학원이 여전이 횡행하고 있고 오히려 그러한 방식의 교육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에서 드러난다. 스파르타가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 영화 300의 방식에서 보듯이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장애인을 비롯한 육체적 약자는  버려지고 배제된다.  강함은 약함의 끊임없는 도태로 이뤄진다. 소위 일진을 이루는 학생들과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 혹은 가해자/피해자, 혹은 모범생/문제아 라는 이분법적 구조는 끊임없는 도태를 생산하기 위한 구조이다. 강한 병사와 약한 병사가 인간으로서의 가치차이가 있다고 있기 힘들 듯이 우리는  학생들에게서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 하지만 학교는 선생님은 부모들은 사회들은, 그리고 학생들은 그러한 가치기준을 갖고 있고 학생들의 가해자/피해자 일진/왕따 모범생/문제아를 나누는 기준은 모두 같다.


- 끊임없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군대에서 끊임없이 관심사병이 만들어지고 자살하거나 다른 군인을 사살하는 군인이 나오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 학교 폭력을 학생간 폭력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폭력은 교사-학생간에도 일어나고 있으며 학생간 폭력의 정당성/기준/원인 제공은 분명 선생, 부모, 사회로부터 나온다. 학교폭력에서 교사/부모는 결코 제3자가 아니며 이것은 사실 모든 사회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폭력은 사회적 시선이 필요하다.

모바일 선거는 과대대표? by 젊은노인

조선일보는 민주통합당의 모바일 선거 시스템이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를 배제하고 젊은층의 의견이 과대대표되는 부작용이 있을거라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현장투표방식은 과연 과대대표가 아니었는가. 자발성 때문이든, 구조적 문제이든 과거 선거의 투표율은 젊은층에서 현저히 적게 나타났었다. 그리고 조중동과 거대 방송사에 의해서, 또 집전화를 이용한 여론조사에서 기성세대의 의견들이 과대대표되어왔지 않았을까. 모바일 투표는 어찌됐건 투표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손쉽게 투표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고 기존으 현장투표방식도 유지되고 있다.

뭣보다 선거 본선에서는 모바일 방식이 아니므로 과대대표가 됐었다면 보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물론 진짜 선거도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을 확장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있어야겠지.

나는 50만명이 넘는 이번 민주통합당의 대표단 선거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나또한 투표를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투표/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은 바뀌고 있고 운동이든 정치든 언론이든 어떤식으로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바뀌지 않냐고 답답해하던 세상은 눈깜짝할 사이에 꽤 바뀐것 같다. 이건 그런 변화가 좋다 싫다를 떠나서 그냥 그렇다는 현상 인식이다.


힘든 한주 by 젊은노인

종강을 하면서, 2011년을 뒤로 넘겨보내면서
난 정말 내가 한가한 백수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2주간은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 저런 회의에 참여하고, 이런 저런 작업들을 하며
난 정신이 없다.

여유있게 책도 보고, 집안 일도 하고, 가게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씩 보면서
가끔씩 사람을 만나고 조금씩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자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소중한 사람들을 너무 잊고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는 집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설이 지나고는, 2월이 되면
이제는 정말 조금은 더 침전해야겠다.

몇개의 고정일정이 생기면
거기에 맞춰 내 여유시간도 고정해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텅 빌것 같다.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괜찮은데
말을 하면 감기기운이 올라온다.
쉬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이번주 일정은 다찼다. 힘든 한주가 될 듯.


월 : 가게오픈/전없세운영회의/무기제로회의/빈고운영회의
화 : 수감자우편물/지수만남/녹평모임
수 : 은지만남/환대의 식탁/공부집세미나
목 : 워크샵 회의/인권읽기
금 : 가게


전쟁 - 한국과 일본 by 젊은노인

지리산을 읽고 있다. 제목만 보면 태백산맥과 비슷한 내용일 것 같은데 작품의 초반부에 비교적 자세하게 해방 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마도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 될 사람들의 성장기인데, 이들의 학창시절의 사건이나 생각들을 굉장히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나 일본 유학생이 접하는 일본 사람들의 분위기, 추축국의 분위기를 자세히 전하고 있다.

해방 후 한국의 이념충돌 문제나 친일감정등을 이 때의 연장선상에서 보려는 소설의 관점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한국사람들의 심리를 살필 때 일본과 절대 동떨어져서 볼 수 없는 점들이 많이 보일것이기에 그러하다.

원전문제, 헌법9조문제, 자위대와 한국의 군대, 두 나라의 정치, 북한과의 관계, 조총련, 독도문제 등 현재 굵직한 이슈들이 한일이라는 양 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근데 읽는 책이 그래서 그런지 문체가 왜이리 고풍스러운지)


나는 그들의 나약한 행동(월급이 나오면 집창촌에 탕진하는)의 원인이 내년이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자면 그들은 군대에 갈 날을 죽음을 기다리는 공포감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뛰쳐나와 우유 배달을 하는 것은 장남이 아닌 처지도 있었지만, 군대에 가기까지의 한동안을 마음대로 지내야겠다는 속셈 탓도 있는 것 같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천황 폐하를 위해 희생한다."
라고 흔하게 쓰이는 말들이 얼마나 공소하고 허무한가를 나는 그 청년들의 행동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중략

자기 자신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하자는 자각도 목적도 없이 전쟁터에 죽으러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지금 일본이란 국가가 국민에게 엄청난 악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나라를 위해서, 라는 말은 사실은 자신의 피해와 고생, 상처를 위로하는 말이다. 우리가 그 위로를 비웃을 때, 즉 나라는 허상이야, 개고생이야 라는 말을 하면 그 위로는 분해되고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나게 하는 말이다. 그 믿음이, 우리가 비록 그것이 공허하다고 믿을 지라도, 쉽게 직설적으로 파괴 할 만한 성질의 것인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러한 믿음에 기반해 모든것이 허용될 수는 없는 노릇. 개인들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사회적으로 그 상처를 드러내서 논의될 수 있게 하는 것.

사실 학술 논문들의 딱딱한 말투, 무미건조한 말투가 편치 않은 건 사실이지만 위의 상처와 관련해서는 어느정도 감정을 배제하는데 (적어도 즉각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이건, 엘리트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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